[Review] 세상밖으로 뛰쳐나온 불편한 진실들 - 기울어진 미술관

예술은 규정된 틀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글 입력 2022.10.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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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시험문제처럼 이게 맞고 틀리다는 정답은 없기에 예술가들은 느껴지는 것을 상상하며 생각하고 포착하고 그린다. 그러나 실제로 입시 과정에서 배우는 미술은 암기과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때까지 미술 과목은 해설과 작가 작품을 연계해 달달 외우면 그만이다. 이건 다른 과목도 매한가지다. 당시 내가 왜라는 질문을 할 때면 선생님께서는 "대표 과목 이외의 것들은 이해하기보다는 외우면 그만"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른이 된 지금 기울어진 미술관이란 책을 통해 오래전 마주했던 몇몇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머리로 기억하던 작품들의 시대 상황과 함께 불편한 진실들과 맞닥뜨렸다. 그 안에는 여성, 흑인, 장애인 등 타자로 분류되는 수많은 마이너 한 계층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때론 불편하고 힘들지만 작품을 통해 그 시선과 마주하려는 화가들, 작품을 통해 권력자들의 현 모습을 고발하기도 이겨내고 싶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당대 화가들의 그림과 함께 책을 읽어나가며 수수께끼를 풀 듯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들이 가슴에 와닿았다.

 

 

 

답은 없지만 진실도 없다

답은 없지만 진실도 없는 것이 예술이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남성 제자 공동체 안에서 '왕따' 신세였다. 특히 베드로는 막달라 마리아를 드러내놓고 적대했다. 이렇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으니, 예수의 죽음 이후 막달라 마리아가 철저히 배제된 건 당연한 수순 아니었을까.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 되어 교회 제도를 이루고, 부활에 의심을 품었던 사도들마저도 교회 주류 전통 속에서 왕좌에 올랐을 때, 예수의 가장 신실한 사도였던 막달라 마리아는 열두 제자에도 포함되지 못한 채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다.

 

기울어진 미술관 책 본문 중 20p~21p


 

쥘 르페브르 《 동굴 속의 막달라 마리아 》 속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가 부활한 것을 지켜본 첫 증인이었음에도 베드로의 시기 질투 대상으로 전락해 제도권에서 밀려났다. 졸지에 막달라 마리아는 죄지은 여자, 회개한 창녀의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막달라 마리아는 애초에 무형의 빈 공간의 이미지였기에 얼룩덜룩한 이미지로 더럽혀진 것이다.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 올랭피아 作》은 성매매 여성 올랭피아를 노골적으로 그렸다. 이 작품은 당시 부르주아 남성들의 고귀함과 위선에 가려진 도덕성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올랭피아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흑인 하녀를 함께 배치하며 색채대비, 대조적인 시선도 함께 그려내고 있다.

 

이 밖에도 당대 상황들과 마주한 마이너 한 사람들, 그리고 그림 속 이야기들은 다양한 형태로 화폭에 그려진다. 아름다운 여성들 중 장애가 있는 여성은 사회가 소화할 수 있는 편안하고 안전한 이미지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또 멕시코에서는 다모증처럼 남들과 조금 다른 모습의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로 보여주거나 애완용으로 거래되었다.

 

 

 

깨어나기 위한 외침

캔버스 밖으로 나가는 화가들 


 

 

예술이 돈과 권력을 떠나 독립하기는 너무나 힘들다. 예로부터 화가가 자신을 후원해주는 권력자와 그림을 구입해주는 재력가들의 도움을 외면한다는 것은, 직업 화가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순수한 취미로서의 회화가 등장한 근대 이전에는 그림이란, 주문자가 있어야만 비로소 그려지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화가들은 대체로 권력과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

 

기울어진 미술관 책 본문 중 7p~8p

 

 

예술은 돈과 권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화가 최북은 권력자가 자신에게 그리기 싫은 그림을 요구했을 때 스스로 눈을 찌르며 저항했다. 자신의 예술 지론이 있었던 소신 있는 사람이었고, 훗날 누군가가 이를 알아줄 것임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권력과 돈에 굴복하지 않듯 다른 이들의 시선에 과감하게 맞서는 이들도 있었다.

 

기울어진 미술관 책 표지 作이기도 한 게르다 베게너의 《하트의 여왕》은 생물학적 남자인 릴리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당시 1900년도 초반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사람들에게 정신질환처럼 보였을 것이다.

릴리의 모습은 캔버스 속 매우 편안해 보인다.

무심하게 시선을 던지는 그는 진정 하트의 여왕 같다. 날렵한 눈썹, 탐스러운 붉은 입술, 당당한 표정과 대담한 자세, 이게 진짜 나야 내 모습이야라고 말해주고 있다.

  

작가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아름다움이 진실이 아님을 알았을 때, 독자들에게도 '낯설게 보기'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건 그동안의 예술 세계가 한곳에 기울어져 있었다는 또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

왜? 이 사람은, 왜 이래야만 했을까?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요즘 들어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한다. 아무런 퀘스천 없이 주입식 교육에 의해 외워지고, 입력되었던 것들에 의문을 품고 이유를 찾아가 보려고 한다. 세상 모든 것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것들에 엄마가 있듯이. 자라난 모든 잎들에게 처음이 있을 것이다. 모든 작품 속 보이지 않는, 묵인돼왔던 희생들과 불평등 속 이데올로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정면으로 보지만 말고 가끔은 옆으로 고개도 돌려보고 빠르게 뛰어도 보자, 물구나무도 서보자. 내가 앞으로 바라보게 될 시선에 조금은 힘이 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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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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