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욕망이라는 이름의 파멸 - 테레즈 라캥

글 입력 2022.10.1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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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포스터.jpg

 

 

<테레즈 라캥>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2022.10.08

테레즈: 오소연

로랑: 동현

카미유: 곽다인

라캥 부인: 오진영

 

 

 

욕망이라는 이름의 파멸



여기 평범하게 욕망을 가진 이들과 파멸로 가는 욕망을 가진 이들이 있다. 라캥 부인과 그의 카미유, 카미유의 사촌동생 테레즈, 그리고 카미유의 친구 로랑.


라캥 부인은 자신의 이상적인 가족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테레즈를 억압한다. 테레즈가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음을 무심하게 이야기하고 카미유와의 결혼을 종용한다.


어린 시절부터 병약했던 카미유는 타인에게 의지하는 삶이 자연스럽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 때문인지 욕망을 가지고 있으나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고모의 집에 맡겨진 테레즈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다. 고모와 함께 카미유를 돌보며 자라 카미유와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탈출구 없는 인생.


로랑은 파리에서 우연히 친구 카미유와 재회한다. 카미유의 집에 초대받은 로랑의 눈에 보이는 것은 좋은 집과 아름다운 여자.

 

*


극은 권태로운 일상에 빠진 테레즈와 함께 시작이 된다. 그리고 테레즈를 억압하는 라캥 부인과 테레즈를 향한 마음을 수동적으로 표현하는 카미유가 연이어 등장한다. 


"키스해달라고 말해 봐"


테레즈는 어린 시절 고모인 라캥 부인에게 맡겨져서 시키는 일만 하면서 살아왔다. 돌아갈 곳을 그리워했으나 아버지의 부고 소식과 함께 테레즈는 밖으로 나가는 문을 잃어버렸다. 갈 곳을 잃은 테레즈는 자연스럽게 카미유와 결혼하게 된다. 라캥 부인이 그러기를 원했고 카미유도 테레즈를 본인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테레즈의 의사를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그런 테레즈의 일상에 카미유의 어린 시절 친구인 로랑이 등장한다.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카미유가 아닌,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림을 그리는 근사한 남자. 로랑은 좋은 집에서 엄마와 아내와 함께하는 카미유를 부러워하고, 카미유는 제 몫을 해내며 사는 로랑에게 시기와 질투를 느낀다.


로랑은 테레즈에게 지긋지긋한 일상을 벗어나게 하는 자극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그래서 테레즈는 로랑을 통해 탈출을 본다. 로랑이 마치 열쇠를 쥐고 있는 구원자인 것처럼.


"이 지옥에서 제발 날 구해줘"


카미유와 라캥 부인뿐인 삶을 벗어나고 싶은 테레즈와 좋은 집과 아름다운 여인이 탐났던 로랑은 카미유를 죽이기로 한다. 카미유만 없으면 테레즈는 자유와 욕망을 찾을 수 있고 로랑은 자신에겐 없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고작 그런 이유로 카미유는 죽었다.


두 사람의 가벼운 살인 동기. 애초에 사람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카미유가 없어도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테레즈는 환청을 듣고 로랑은 카미유만 사라진 집에서 환상통을 느낀다. 살인으로 자유를 얻을 수 없는 것인지 테레즈는 집을 떠나지 못하고, 로랑은 친구를 죽여서 얻어낸 좋은 집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갑자기 아들을 잃은 라캥 부인은 어느 날 쓰러져 불구가 되고 만다. 사라진 건 카미유만이 아니었다.


"나는 지옥으로 가고있어"


욕망의 끝은 파멸로 향했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행복은 손끝조차 스치지 못했다. 그래서 둘은 소풍을 계획했다. 카미유를 죽인 강가에 나갈 용기조차 없는 둘은 집안에서 소풍을 준비한다. 테레즈의 손에는 칼이, 로랑의 손에는 약을 탄 포도주가 있었다.

 

*

 

줄거리를 알고 갔음에도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그런데 줄거리를 알고 있음에도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아름다운 여성과 근사한 남성의 만남이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극이 전개되었다. 책의 축약본을 뮤지컬화한 것과 같은 약간의 불친절함이 있었다. 아트인사이트의 초대가 있기 전에 이 공연을 예매해두었는데, 두 번 보고 나서야 카미유의 집에서 테레즈를 보고 멈칫하는 로랑과 로랑 앞에서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 테레즈가 보였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주인공’이 분명한 극이기 때문에 관객도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간다. 하지만 이 극은 관객이 주인공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테레즈가 수호천사가 되어야 하는 카미유는 멋있지 않고 근사한 로랑은 테레즈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줬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카미유를 죽일 이유가 되지 않는다. 카미유가 살해당할 만큼 잘못한 사람인가를 따져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라캥 부인이 테레즈를 억압했다고 해서 그게 카미유의 죽음과 그 충격으로 인한 신체적 장애로 이어질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죽을죄가 없는 사람을 죽이고 행복해지려고 하는 테레즈와 로랑의 행동이 경악스러울 뿐이었다.

 

손쉽게 살인을 선택한 두 사람인데 빠르게 죄책감에 고통받기 시작한다. 죽이는 건 쉬웠으나 죽음 이후는 어려웠다. 뒷일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두 사람은 욕망만 보고 달렸다. 그들이 추구한 욕망의 끝에는 죄책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소화할 수 없는 욕망의 종착지는 파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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