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군가의 사랑을 이용한다는 것 [영화]

우리에게는 낯선 틴더
글 입력 2022.10.1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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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려고 마음만 먹고 미루고 미루다 보게 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 오히려 미루고 보기를 잘했다고 느낀게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가기 전에 봤더라면 애초에 틴더를 안 하면 되지 않나? 라는 마음으로 봐서 이해를 못했을 것 같다.


스페인인, 노르웨이인이었던 룸메이트들과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연애 얘기도 나왔다. 스페인인 룸메이트는 겹지인을 통해 알게 됐다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고 했고, 노르웨이인 룸메이트는 틴더로 지금 애인을 만나서 거의 1년째 연애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화를 나눌 당시에는 내가 스페인에 온 지 겨우 한 달 밖에 안된 시점이라 아직 그곳의 개방적인 문화가 낯설 때였다. 그래서 노르웨이인 룸메이트가 틴더로 만났다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자동반사적으로 틴더?!라는 큰 반응을 보였다.


내 반응을 신기해하며 그럼 너네 나라에서는 틴더로 데이트 잘 안 해?라고 묻길래 너네도 알다시피 한국은 동양이고 동양은 보수적이다, 우리나라에서 틴더는 데이트 앱보다는 원나잇 상대를 구하는 앱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대답했다. 듣던 두 룸메이트가 데이트 상대를 구하든, 원나잇 상대를 구하든 간에 여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틴더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애인이 있어도 새로운 사람과 친구를 하고 싶어서 틴더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이 말이 과장은 아니라고 느낀 게 이 대화를 하고 몇 달 뒤에 스페인인 룸메이트가 틴더에서 알게 된 이성과 그냥 친구로 연락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자기랑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나.


내가 틴더를 안 한다고 하니 그럼 너희는 어떻게 데이트 상대를 만나냐고 물을 만큼 서양에서 틴더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다 궁금해져서 나중에는 틴더를 깔고 몇 명과 연락까지 해봤지만 차마 실제로 만나지는 못하겠어서 거기서 멈췄지만.


틴더를 해보고 느낀 건 데이트 앱임에도 불구하고 사칭이 너무나도 쉬운 구조라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올린 사진과 앱에서 요구하는 포즈를 따라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본인 인증을 했다는 파란색 마크를 유저 이름 옆에 표시하는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절반 정도는 이름 옆에 파란색 마크가 없다. 그리고 나이, 직업에 대한 인증을 요구하지 않아 이 사람에 대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 다큐멘터리는 틴더에서의 사칭 범죄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범죄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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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큐멘터리로 돌아가자면, 틴더 사기꾼 사이먼 레비예프는 다이아몬드 회사 회장의 아들로 억만장자에 전용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온 몸에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남자다. 동화 같은 사랑에 대한 로망을 가진 사람에게 이런 남자는 꿈만 같다. 이런 사람을 누가 마다할까. 첫 번째로 등장한 피해자 세실리에는 사이먼을 보고 오른쪽으로 넘기고 바로 매칭이 된다.

 

매칭이 되고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왓츠앱으로 연락을 하게 된 둘은 빠르게 진도를 나간다. 런던에서 살고 있는 세실리에에게 자신과 함께 전용기로 출장에 따라가지 않겠느냐, 품에 다 안기지도 않는 꽃다발을 선물하고 같이 살자며 아파트를 알아보라는 둥 사랑에 푹 빠져 물심양면으로 퍼주기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먼은 자신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며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경호원의 사진을 세실리에에게 보낸다. 그리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당분간은 카드를 쓸 수 없을 것 같다며 세실리에에게 상황이 안전해지면 갚는다는 말과 함께 카드를 비롯한 현금을 부탁한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부탁했던 사이먼은 쓸 수 있는 돈이 없어지자 세실리에에게 대출이라도 받아서 돈을 만들어올 것을 독촉하며 다른 사람처럼 변한다. 이상함을 느꼈을 때 세실리에는 이미 9군데에서 대출을 받은 상태였다.


두 번째 피해자 페르닐라는 마찬가지로 틴더에서 사이먼을 만났지만 연인이 아닌 친구 사이로 남았다. 어느 날 사이먼이 페르닐라를 그리스로 초대했고 사이먼의 또 다른 여자친구와 함께 호화로운 휴가를 즐긴다. 좋은 친구라고 느끼게 만든 다음에는 세실리에에게 썼던 똑같은 수법으로 돈을 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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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의 협박 음성 메시지 중에서

 

 

사이먼을 아예 차단한 세실리에는 고향인 노르웨이로 돌아가 엄마랑 함께 지내다 집으로 걸려온 사이먼의 협박이 담긴 음성 메시지를 듣고 두려움을 느껴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직접 움직이기로 결심한 세실리에는 노르웨이의 최대 신문사에 제보를 한다.


노르웨이라면 재깍 반응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관심조차 없었다는 노르웨이 경찰의 미적지근한 반응은 조금 충격이었다. 그리고 상반된 신문사의 반응. 제보를 받은 신문사 기자들은 사이먼 레비예프를 수소문하기 위해 히브리어가 가능한 기자를 동반하여 이스라엘로 가서 현지 경찰에게 사이먼에 대해 물어 사이먼의 본명, 주소지를 알아낸다.


기자들은 페르닐라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사이먼의 범죄 이력과 함께 그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아직 페르닐라가 자신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 사이먼을 이용하기로 한 페르닐라와 기자는 작전을 짠다.


세 번째 피해자는 아일린으로, 아일린은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자신의 남자친구 자신을 보고 글을 눌렀더니 마주한 것은 틴더 사기꾼이라는 글자였다. 아일린은 기사를 다 읽고도 여전히 사이먼의 편인 척하며 그를 감옥에 보내려고 한다. 사귀는 동안에 아일린에게 돈을 여러 차례 빌려 이미 갚아야 할 돈이 많으면서도 자기 얼굴이 뉴스에 도배가 됐다며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 적으로부터 도망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얼굴도 다 팔리고 사기꾼이라는 것이 들통났으니 더 이상 틴더로 만난 여성들에게 돈을 달라고 할 수도 없어 억만장자에서 한순간에 빈털터리가 된 사이먼은 아직까지 유일한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아일린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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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이 아일린에게 보낸 메시지 중

 

 

명품 의류계 종사 중인 아일린은 사이먼에게 니가 가진 명품 옷들을 팔고 그 돈을 보내주겠다고 하며 이베이에 옷을 올려 팔고 돈을 챙기면서도 사이먼의 연락은 계속 무시한다. 그러자 사이먼은 음성 메시지를 보내는데 어떤 음성 메시지는 분노에 가득 차서 악에 받쳐 말하고 어떤 음성 메시지는 예전처럼 부드럽게 말한다.


비행기 티켓을 살 돈이 없다며 정말 니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 사이먼이 갑자기 연락이 끊긴다. 왓츠앱은 통신 문제로 상대방이 메시지 수신을 할 수 없을 때는 말풍선 옆에 체크 표시가 하나만 뜬다. 이걸 본 아일린은 사이먼이 비행기를 탔다는 것을 알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


기사까지 난 유명 틴더 사기꾼은 자신의 신분까지 세탁한 위조 여권으로 인해 인터폴에 수배된 상태라 바로 잡히게 된다. 이제 모든 고발 다큐멘터리가 그렇듯 재판을 받는 장면 사진과 어떻게 이 사기꾼이 감옥에서 고통받을 건지에 대해 나와야 할 때가 됐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전 세계를 들쑤시고 다니면서 만들어낸 피해자만 해도 수 십 명이 넘어갈 텐데 이스라엘에서만 저지른 범죄로 징역 15개월이라니. 그마저도 보석금을 주고 5개월 만에 풀려났다. 그리고 석방 후에는 한 타임에 311 달러나 받고 비즈니스를 강연을 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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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피해자들도 잘 살고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사이먼의 근황 바로 뒤에 ‘세실리에, 페르닐라와 아일린은 여전히 빚을 갚고 있다’는 문구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제 자유인 신분이 된 사이먼에게 피해자들의 빚을 다 갚으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기사까지 나고 공공연하게 사기꾼으로 낙인이 찍혔는데 그걸 이렇게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거라고?


피해자만 평생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기는 해도 이건 너무 잔인했다. 사랑하던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당한 것도 모자라 감당할 수 없는 빚까지 떠안고 살아가야 한다니. 여기서 다큐멘터리가 끝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뒤에 뭔가 그 후에 대한 이야기가 쿠키로 있을 것만 같고 이런 역경이 있었지만 피해자들은 결국 잘 살게 됐다는 그런 시원한 결말을 원했다.


그리고 여기나 저기나 피해자들을 욕하는 건 똑같구나 싶었다. 똑같이 틴더로 데이트 상대를 구한 거고 금전적인 피해는 여성들이 입었는데 기사에는 여성들을 향해 꽃뱀이라고 비난하고 순진하다며 조롱하는 댓글이 달렸다. 착하고 동정심이 많아도 저렇게 욕을 먹어야 한다니.


사이먼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이름을 인스타그램에 쳐보니 계정이 나왔다. 사이먼은 무슨 정신으로 아직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자신의 계정 뒤에 official이라는 단어를 붙인 걸 보니 보통 나르시시스트가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계정을 들어가 보니 다큐멘터리에서 제일 최근 여자친구라고 알려진 인물과 다른 여성과 사귀는 듯했다.


피해자들은 다행히도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이 다큐멘터리로 영화제 여기저기에 참석하는 듯했다. 세실리에는 셀럽 연애 리얼리티에 출연하게 된 것 같았고, 페르닐라는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고 좋은 파트너를 만나 아이까지 가졌다. 사이먼에게 피해를 받았다는 공통점으로 알게 됐지만 아직 우정을 유지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는 셋의 모습은 좋아 보여 아이러니했다.

 

누군가의 사랑, 호의, 간절함을 이용한 범죄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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