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사랑과 저항의 시 - 엘뤼아르 시 선집

글 입력 2022.10.09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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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영감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프랑스의 시인 폴 엘뤼아르는 이렇게 말했다.

 

낯선 이름이지만 바다를 건너 수많은 이에게 영감을 준 사람. 프랑수아즈 사강은 엘뤼아르의 영향을 받아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썼고, 최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또한 엘뤼에르의 시 『모퉁이』의 전문에서 제목을 따왔다.

 

예술가의 예술가 엘뤼아르다.



[꾸미기]엘뤼아르.jpg

 

 

엘뤼아르는 사랑과 저항,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두 주제를 아울렀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저항 시인으로 알려진 그였다.

 

그 배경엔 그가 살아간 시대의 잔상이 담겨 있었다. 익숙하고 고정된 모든 것을 뒤흔든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몸소 겪으며, 격동하는 시대와 개인의 변화가 그의 시 세계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의 시집을 넘기기 전, 궁금증이 들었다. 미술의 역사에서 초현실주의는 익숙한 주제였으나, 시를 이제 접하기 시작한 나에게 초현실주의 시는 낯선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가 그려낸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처럼, 시에서도 익숙한 문법을 탈피한 꿈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 호기심을 안고 엘뤼아르의 시를 하나씩 만나보기로 했다.

 

 

 

“사랑의 노랫말”


 

 

나는 너를 노래한다는 큰 기쁨을 노래하네,

 

너를 갖거나 너를 갖지 않는 큰 기쁨을,

너를 기다리는 순진함을, 너를 알아보는 무구함을,

오 망각과 희망과 무지를 지우는 그대,

부재를 지우는 그리고 나를 세상에 탄생시킨 그대여,

나는 노래하기 위해 노래하네, 나는 노래하기 위해 너를 사랑하네

사랑이 나를 낳고 자유롭게 하는 신비로움을.


너는 순수해, 너는 여전히 나 자신보다 더 순수해.

 

- '언제나 함께 있는, 전부인 그녀' 中

 

 

시대 순으로 엘뤼아르의 시를 엮은 책에서, 초반부 1920년대와 30년대엔 사랑하는 이를 그린 시가 많았다.

 

사랑하는 갈라를 만나 함께 하지만, 그녀는 살바도르 달리에게로 떠나가고 만다. 이후 뉘슈와 만나 다시 사랑을 하지만, 뉘슈는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마지막으로 도미니크를 만나 세 번째 결혼을 한 엘뤼아르였다.


엘뤼아르가 사랑한 사람들은 그의 시에 가장 큰 영감을 주었다. 순수하고 거대한 사랑이 감싸는 가운데 그가 느낀 다채로운 감정과 세밀하게 변화하는 시선 끝을 따라가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나도 알고 있는 다른 이에게, 먼 세상으로 떠나보낼 때의 마음을 상상하게 된다.


엘뤼아르의 시에선 같은 구조의 반복, 유사하지만 다른 감각을 건드는 소재를 끝없이 나열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위에 소개한 ‘언제나 함께 있는, 전부인 그녀’ 시에서 ‘너를 기다리는 순진함을, 너를 알아보는 무구함을’ 표현처럼 말이다.

 

이렇게 비슷한 구조로 이야기를 강조하고, 안정감을 주면서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서술법을 좋아하는 터라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자유를 말하기 위해 태어난 우리”


 

 

밤의 경이로움 위에

나날의 흰 빵 위에

약혼 시절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새벽이 내뿜는 모든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산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불 켜진 램프 위에

불 꺼진 램프 위에

모인 내 가족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되찾은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생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너를 알기 위해 태어났다

네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자유여.

 

- '자유' 中

 


시대가 흘러가면서 엘뤼아르의 시 세계는 확장된다.

 

전쟁과 사회의 변화를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며 시에 자연스레 녹아들고, 이야기가 한층 다채로워진다. 전쟁의 잔혹함과 고통, 인간 본연의 고독과 슬픔, 그 속에서 더 강렬하게 빛나는 자유와 사랑을 시를 통해 들려준다.


이번에도 엘뤼아르는 같은 시구를 반복했다. 무언가 위에 무언가를 쓴다는 같은 구조 속에는 어린 시절의 책상부터 광대한 자연, 가족과 연인, 수많은 대상이 반복되며 쌓인다.

 

이렇게 되풀이되는 가운데 엘뤼아르가 무엇을 써 내려가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커지고, 그 대상의 크기 또한 점점 커진다. 마지막 단락에 이르러 마침내 그것은 다름 아닌, 자유였음을 말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는지, 그 방법에 따라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엘뤼아르의 시를 읽으면서 글의 구조와 흐름에 따라 더 선명하게 분명한 윤곽을 지니고, 혹은 부드럽게 물들 듯 다가오는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얼어붙듯 차가워지는 계절에, 조용한 음악 곁에서 차 한 잔을 내리고, 읽어보기 좋은 ‘엘뤼아르 시 선집’이었다. 수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친 엘뤼아르의 시를 만나며 계절을 계절답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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