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텍스트 뷔페, 골라 먹는 타인의 세계 [미술/전시]

공간空刊잡지
글 입력 2022.09.2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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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수건과 화환’에서 전시 <텍스트 뷔페>가 진행되고 있다.

 

<텍스트 뷔페>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원고 단위 작업물을 뷔페의 형식으로 진열한 텍스트 전시다. 관람객은 독자로서 글을 발굴하고 수집ㆍ정렬하며 글을 읽는 행위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난 겨울에 <텍스트 뷔페 VOL. 1>을 마치고 두 번째로 진행되는 이 전시는, 부제로 ‘공간空刊잡지’라는 말을 사용한다. ‘빈 곳에 새겨지는 꾸준한 출판물’. ‘공간空刊잡지’는 부제로서 전시 자체를 표현하는 말인 동시에 전시의 방식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텍스트 뷔페>의 전시 대상이 ‘텍스트’인 동시에 ‘텍스트를 다루는 새로운 방식’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번 <텍스트 뷔페 VOL. 2>에는 총 10팀(곽수아 작가ㆍ기예림 작가ㆍ김연재 작가ㆍ박동수 영화평론가ㆍ오혁진 만화평론가ㆍ이다의 작가ㆍ장가영 기획자ㆍ정지영 디자이너ㆍAcult-제종현 작가ㆍ플랫폼 공간주의)이 작가로 참여했다.

 

나는 지난 9월 17일 토요일, 저녁 7시에 입장료 10,000원을 지불하고 관람객으로서 참여했다. 제시받은 관람 방식은 아래와 같다.


 

텍스트 뷔페 관람 안내

 

1. 트레이에는 읽을 수 있는 만큼의 텍스트만 챙겨주세요.

 

2. 수집된 텍스트들은 전시장 안쪽에 마련된 독서 공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3. 텍스트는 외부로 가지고 나갈 수 없습니다. 공간에서만 온전히 읽어주세요.

 

4. 관람 시간이 완료되기 15분 전에 종료 알림이 울릴 예정입니다.

 

5. 관람 종료 후 수집된 다발을 두고 가시면, 그 순서 그대로 기록의 형태로 보존됩니다.

 

(공간空刊잡지의 형태로 연재될 다음 텍스트 뷔페에서 계속해서 수집해나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쟁반을 가지고 있다는 점, 기호에 맞게 그 쟁반을 채운다는 점, 독서 공간과 진열대를 오가며 계속 소화할 거리를 추가할 수 있다는 점, 포장이 불가능하다는 점 등에서 ‘뷔페’라는 속성이 엿보인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관람 방식에서 좀 더 중요한 것은 ‘메모장’이었다. ‘텍스트 뷔페는 관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글을 쓰는 작가와 독자가 적극적으로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관람객이 쟁반과 함께 받은 필기구로 메모장에 글을 남기면, 작가에게 그 글이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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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총 97편의 원고가 있었고, 나는 그중 12편 정도를 읽었다.

 

수집된 텍스트를 ‘내가 생각하기에 알맞은 순서’로 정리하고 짧은 감상을 남기며 나의 취향과 관심사가 얼마나 뚜렷하게 드러나는지를 체감했다. 뷔페에서 새우 요리만 죽어라 먹는 손님 같았다.

 

그러한 특성은 다른 관람객의 쟁반과 함께 볼 때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함께 방문한 친구가 수집한 원고의 묶음은 한두 편을 제외하고 내 것과 겹치는 것이 없었다.

 

97편이라는 한정된 숫자 속에서도 나와 친구의 세계는 이렇게나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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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텍스트가 곧 나의 세계라고 믿는다. 우리는 ‘생각’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를 할 때조차 텍스트를 빌려야 하고, 타인에게 그것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텍스트가 필요하다.

 

이미지나 몸짓 역시 드러내거나 소화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라는 단계를 필연적으로 거쳐야 한다. 우리는 각자의 텍스트를 가지고 있고, 세계를 가진 텍스트만큼 읽을 수 있으며, 또 가진 텍스트만큼 표현할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작성하거나 수집한 복수의 텍스트를 마주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세계 일부를 보는 것과 같다. 내가 에디터로서 남긴 글의 묶음을 읽으며 나를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텍스트 뷔페>에서 우리는 작가들이 작성한 세계를 읽고, 그중 나와 통하는 것을 선택하여 나의 세계를 새기고 올 수 있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고.

 

<텍스트 뷔페>는 9월 30일까지 이어지며, 예약제로 운영된다. 더욱 자세한 정보는 수건과 화환의 인스타그램(@wreathandtowel)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면에 실린 텍스트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불규칙하고 무질서하게 배열된 도서관에서 책을 찾기 위해 끝없이 선반을 오르내리는 행위들이 ‘이곳’에 있다. 무질서함이 조합되어지고, 각각의 무의미한 좌표들이 밤하늘을 올려보게 만들어 형체를 가지고, 서사를 품고, 방향을 말해준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눈을 들어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 곳에 문장과 엮어지며 새로운 지평으로 안내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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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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