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쟤는 분명 지옥에 갈 거야. 우릴 슬프게 했으니까. [도서/문학]

이소호 시집, 『캣콜링』
글 입력 2022.09.17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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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분명 지옥에 갈 거야. 우릴 슬프게 했으니까.” 시집은 마치 결단처럼 읽히는 시인의 말로 시작된다.

 

캣콜링,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거리에서 지나가는 불특정 여성에게 말을 거는 노상 성희롱’을 뜻한다. 강렬하고 짧은 제목에 걸맞게 문자 그대로를 전시하는 것만으로 한눈에 통쾌함을 선사하는 시도 있지만, 이소호의 『캣콜링』 안에서 읽을 수 있는 메시지는 여자들의 관계에 보다 집중되어 있다.


시집을 관통하는 인물은 역시 “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이”이다. 총 5부로 이루어진 시집 안에서 경진이는 가족 안에서, 관계 안에서, 이를 아우르는 사회 속에서 “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이”로 구조화된다.


태어날 때부터 비좁음을 겪은 경진이(「동거」), 벨벳 거미처럼 할머니를 잡아먹고 자라난 엄마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경진이(「경진이네-거미집」), 남자들과의 관계를 겪는 경진이, “지는얼마나깨끗하다고유난이야못생긴주제에기어서라도집에갔어야지”(「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이의 탄생」), 수많은 여성들로 대변되는 경진이(4부, 경진 현대 미술관)…

 

 

"언니야 우리 둘이 살자 엄마 아빠랑은 전화도 하지마 가끔 죽는 시늉은 정말 멋진 것 같아 이래야 니가 나를 보잖아 의사가 그러는데 폭력은 좋은거래 폭력은 내가 아프지 않다는 증거래 봐 봐 몸 무좀이 생겼어 화가 분출되는 중이어서 이렇게 빨갛대 나는 말야

...

엊그제 내가 프라이팬으로 네 머릴 친 건 사랑하니까 그런거야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제 알겠지 언니는 맞아야 말귀를 알아 듣는 거 같아 같이 살 수 없다면 같이 없어지는 게 좋겠어 한날한시에 죽자

...

어떻게 너 같은 게 대학에 갔는지 모르겠어 이렇게 멍청한데 때려야만 말을 듣는 개새끼처럼"

 

우리는 낯선 사람의 눈빛이 무서워 서로가 서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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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집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을 때, 강하게 느껴지는 거부감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을 읽어내려는 마음이 공존했다.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또다시 읽어내면서 감히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수많은 여성들에 대해 생각했다.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고, 서로를 향해 칼을 들고, 그러면서도 같은 곳으로 향하는 여성들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들끓었던 분노는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들을 모이게 했다. 각자의 기치가 다르더라도 결국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몇 년 새 담론은 끊임없이 확장했지만 담론의 확장과는 별개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안전하지 못하다.

 

지난 14일 신당역 동료 역무원을 살해한 스토킹 살해범의 뉴스와 더불어 시의회 시정 질문 중 살해범이 안타깝다며 가해자의 편을 든 한 국회의원의 발언은 정말 세상은 변하지 않는 걸까 싶은 좌절감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피해자는 2019년 11월 경부터 가해자의 스토킹에 시달렸으며, 작년 10월 가해자를 불법 촬영 및 협박 혐의로 고소했지만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서 가해자는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는 중이었다. 명백한 스토킹 범죄의 방관이다.


빨간 표지에 적힌 “캣콜링”이라는 세 글자를 마주했을 때, 홀린 듯 책을 집어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문학평론가 장은정은 작품 해설의 말미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시간은 언제”냐 묻는다.

 

발간된 지 약 4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작동되는 이소호의 문장을 곱씹으며, 더 이상 곱씹지 않아도 될 사회를 꿈꾼다.

 

 

[김윤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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