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구에게나 방공호가 필요하다 [공간]

지친 일상을 달래주는 나의 방공호 <이디엄스토어&브라운프런트도어>
글 입력 2022.09.1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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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마감인 과제를 한 줄도 쓰지 못했습니다. 이사 갈 집도 알아보아야 합니다. 와중에 애인은 반나절 째 부재중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망쳐버리고만 싶습니다.


세상에는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밤 동안 눈꺼풀에는 내일 할 일들이 무겁게 쌓여서 아침이 되면 눈을 뜨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도 눈을 떠야합니다. 나는 아직 해보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에, 그것들을 하려면 마땅히 거쳐 가야 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하루하루 피곤해지면서도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을 때가 분명히 옵니다. 방 한 켠에 작은 문이 있어,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도 나를 모르는 세상이 나오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는, 맛있는 드립 커피와 소금빵을 먹는 일 밖에 없어서, 그 세상을 세 시간쯤만 즐기고 싶은 기분이 들 때. 눈앞에 가득 쌓인 할 일들을 온몸으로 외면하고 싶을 때.


그럴 때 방공호는 필요합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세상은 아닐지라도. 머물다보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그저 즐거워지는, 그런 방공호가 누구에게나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도 방공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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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의 어느 골목에, 온화한 갈색으로 가득 찬 가게가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소한 커피 냄새가 콧속으로 흘러듭니다.


“어서오세요!”


기분 좋은 인사가 날아옵니다. 다정한 환영에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왼쪽을 보면 다양한 옷들이, 오른쪽을 보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멋있는 옷과 맛있는 커피를 한번에 즐길 수 있는 그 곳이,

 

나의 방공호인 이디엄스토어&브라운프런트도어입니다.


전역 후 적금을 깨서 커피 공부를 했을 정도로 커피를 좋아합니다. 각종 브랜드의 룩북이나 패션필름을 보느라 휴일을 몽땅 쓸 정도로 옷도 좋아합니다. 이디엄스토어&브라운프런트도어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옷, 두 가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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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왼쪽은 이디엄스토어입니다. 멋있는 국내 브랜드들의 옷을 소개하고 판매합니다.


이디엄스토어의 옷들은 ‘super casual’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상의 어느 장면에서나 입을 수 있는 편한 옷을 추구합니다. 그렇지만 후줄근하지는 않습니다. 편함에서 나오는 여유와 멋,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디엄의 옷들입니다.


나를 편하게 하는 것은 옷뿐만이 아닙니다.

 

옷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짚어주는 친절한 설명은 물론, 옷에 어울리는 신발까지 신어볼 수 있도록 비치한 피팅룸 속 신발 몇 켤레, 구매한 상품의 실밥 하나까지 꼼꼼하게 검수하는 매의 눈까지. 세심하게 고객을 생각하는 태도가 나를 편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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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오른쪽에 위치한 브라운프런트도어는 특이한 카페입니다.


흔히 볼 수 없는 사이폰, 융 드립 커피를 맛볼 수 있습니다. 사이폰 기구에 불을 붙이면 플라스크에 들어있던 물이 커피가 됩니다. 융 드립을 주문하면 허리를 숙인 채 포트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집중하는 대표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문한 커피는 빈티지 파이어킹에 담겨져 나옵니다. 컵이 오묘한 초록빛을 띄는 것 말고는 특이할 게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파이어킹은 특유의 두께감으로 인해 입술에 닿을 때의 촉감이 남다른 컵입니다.


음료를 마시는 사람의 촉감까지 생각하는 세심한 마음이 브라운 프런트 도어에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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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엄스토어와 브라운 프런트 도어, 나는 두 공간을 오고 갑니다. 마시던 커피를 놓고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피팅했던 옷을 벗어두고 다시 자리에 앉아 커피를 즐기기도 합니다.

 

옷을 입어보고 커피를 마시는 것 말고도,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가져간 책을 읽기도 합니다. 이 공간에서 나는 할 일들과 지친 하루를 잊어버립니다. 대신 좋아하는 옷들과 커피, 책과 음악으로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찬 공간을 즐기고 향유하는 것이야말로 온전한 휴식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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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망원동에 다녀왔습니다. 커피를 마셨고 <포스트맨을 벨을 두 번 울린다>를 다 읽었습니다. 가을 옷을 한 벌 사기도 했습니다. 내일까지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괜찮습니다. 지쳤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쉬는 것입니다. 하루를 방공호에서 보냈으니 내일부터는 마음을 다잡고 전쟁을 치러야 하겠습니다.

 

당신에게도 언젠가 지친 하루가 찾아올 것임을 압니다.

 

그때를 위해서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방공호를 마련해야 합니다.


책, 식물, 달콤한 디저트, 햇볕이 반만 들어오는 정오의 블라인드. 우디 향.


당신의 취향이 어느 것이든, 마음껏 숨을 수 있는 공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또 망원동에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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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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