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니클의 소년들 [도서]

선감학원 아이들에 대하여
글 입력 2022.09.1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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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여름, 학원비를 아끼려 대부도로 운전면허를 배우러 다니던 난 우연히 셔틀버스 기사님으로부터 ‘선감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셔틀 차는 바다 풍경이 사이사이 펼쳐진 캠핑장을 지나 이제 막 산속으로 들어가던 차였다. 운전연습장으로 가는 동안 대부도 근처에 있는 명물과 역사 등을 설명해 주시던 기사님은 금방 스쳐 지나온 무료 식물원에 대해 설명하시다 곧 우리에게 왼쪽을 보라 말씀하셨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린 난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 있는 풍경과 풍경 안쪽으로 향하는 입구처럼 보이는 흙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방금 지나온 그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소년 감화원으로 운영되었던 ‘선감학원’이 있었던 자리였다. 이 근처 공무원 열 명을 붙잡고 물어봐도 아홉은 모른다고 할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다 말씀하신 게 이해가 갈 정도로 ‘선감학원’에는 그 어떤 특별한 표시나 눈에 띄는 특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건물들이 나무에 가려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 부지가 좁지는 않아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 ‘선감학원’을 검색했다. 소년들을 감화시킨다는 일제의 목적으로 거리 아이들은 선감학원에 수용되었다. 1923년 어린 불량소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설치된 영흥 학교가 이 일들의 시초였으나 이내 선감학원은 어린 소년들을 전쟁에 참전 시키거나 강제 노역에 사용하는 등 그 목적을 잃었다. 그들은 소년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고, 탈출한 아이를 잡기 위해 실제로 수색에 나가기까지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수많은 소년들이 구타 당하며 굶어 죽었던 안타까운 역사가 담긴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결코 상상해 보지 못했다. TV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나온 ‘형제복지원’과 비슷한 곳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첫 번째 충격과 함께 ‘선감학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다룬 책과 자료들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이 두 번째 충격이었다.

 

그들은 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니클의 소년들> 같이 선감학원 소년들 역시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지지 않는 한 여태껏 그래왔듯 서서히 잊힐 것이 자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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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들은 죽어서도 골칫덩이였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장편소설 <니클의 소년들>은 과거 남학교에서 일어났던 폭행과 성적 학대로 인한 실세 사망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미국 플로리다주 탤러해시의 니클 캠퍼스에서 발견된 의문의 묘지와 유골을 시작으로 ‘니클 감화원’에서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평범했던 소년, 그러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평범함을 상쇄시킬 수 있을 만큼 인종차별이 심각했던 그 당시 누구보다 성실하고 총명했던 엘우드는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강제적으로 니클 감화원에 들어가게 된다. 대학을 목표로 할 만큼 똑똑했던 엘우드의 수준에 크게 떨어지는 수업과 영문도 모른 채 가족과 멀리 떨어져 생사 확인조차 불분명한 상황들에 엘우드는 좌절하고야 만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는 그곳에서 만난 친구 터너와 함께 마틴 루서 킹의 연설문에서 얻었던 희망을 찾아나간다.

 

무차별적인 폭력과 학대에 쉴 새 없이 죽는 아이들, 흑인 소년들에게 더 심하게 가해지는 가혹한 처벌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묻힌 채 모두에게서 잊힌 소년들을 콜슨 화이트헤드는 깊은 땅속에서부터 끄집어 낸다. 소설 속 소년들의 유골이 세상 밖으로 드러났듯이 숨겨왔던 진실들을 모두에게 밝혀낸 것이다.

 

*

 

언젠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선감학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낫듯 진실이 또 다른 진실을 가져올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내 마음대로 믿었다.

 

물론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한 줄의 글만은 적어 내려가고 싶었다. 엄청난 고통과 악행 속에서도 부조리에 맞서 싸울 용기를 낸 엘우드와 터너를 기억하면 나의 행동은 그저 보잘 것 없는 일일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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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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