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악일 때 가장 빛나는 사람을 어떻게 미워하나요 [영화]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글 입력 2022.09.0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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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스틸사진

 

 

 

프롤로그 : 시작


 

오슬로의 한 파티장 야외에서 율리에는 노을 앞에 담배를 피우며 꼿꼿하게 서 있다. 신나는 파티장의 분위기와 다르게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다. 묘하게 씁쓸해 보인다.

 

영화는 사랑 이야기, 아니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의 구성은 프롤로그, 12개의 챕터, 에필로그까지 한 권의 책 같다.


각 장의 길이는 율리에의 성격처럼 제각각 다르다. 프롤로그에서 율리에는 의대를 공부하다 그만두고 심리학을 공부하고 다시 사진작가로 바꾼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기면 바로 도전한다. 브레이크가 없는 롤러코스터처럼 질주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악셀과 에이빈드를 만난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남한테 인정도 받고 싶다. 명제를 완벽하게 완성하기 위한 연애를 만나기 쉽지 않다. 율리에에게 악셀은 후자를 충족시켜주고, 에이빈드는 전자를 충족시켜준다. 한 쪽의 균형을 잃은 연애는 끝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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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스틸사진

 

 

 

율리에와 악셀의 관계


 

브레이크 없는 율리에가 브레이크를 거는 악셀에게 빠졌다. 첫날 밤을 보내고 당신과 사랑에 빠질 것 같아서 그냥 보내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는 신중함과 안정감에, 율리에는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그에게 키스한다.

 

악셀과 율리에의 나이 차이는 10살 이상이다. 악셀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지만 율리에는 그런 삶에 전혀 관심이 없다.


 

“난 내 삶의 구경꾼인 기분이야.

내 인생인데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지만, 악셀은 성공한 픽션 만화가다. 빛나는 악셀 옆에서 가끔 그녀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율리에가 씁쓸해 보였던 이유다. 악셀이 율리에보다 성숙한 사람은 맞지만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여성 혐오적인 내용이 있는 성인 만화 <밥캣>의 작가고 공영 라디오방송에서 성차별적인 발언을 당당하게 말한다.

 

어떻게 보면 평등하기 어려운 관계 속에서 그는 여전히 다정하고 율리에의 페미니즘의 글의 반짝임도 발견하고 인정해준다. 하지만 관계가 묘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시소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때, 율리에의 얼굴에 생기가 사라진다.

 

율리에는 악셀의 파티 날 밤에 조연인 기분에 이기지 못해 혼자 집으로 걸어간다. 아무도 모르는 파티에 홀연히 들어간다. 그녀는 서점에서 일하는데 의사라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우연히 에이빈드와 이야기한다. 둘 다 연인이 있는데 술김에, 혹은 분위기 때문에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다. 그들은 신체적 바람은 피우지 않았지만, 정신적 바람을 피웠다.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그냥 헤어진다. 우연히 율리에가 일하는 서점에서 그를 다시 만난다.

 

다음 날 아침, 율리에는 일어나 악셀이 있는 부엌의 불을 켠다. 그때 마법이 시작한다. 세상이 멈춘다. 커피를 따르던 악셀이 그대로 정지해있고,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도 멈춰 있다. 율리에는 힘차게 어디론가 향해 떠난다. 바로 에이빈드가 일하는 바코드 구역의 베이커리다. 자동차, 사람 등 멈춰 있고, 사랑에 빠진 둘만 유일하게 움직인다. 율리에는 그렇게 악셀을 떠난다.

 

(마법같은 장면이 재밌는 점은, 오슬로에서 CG로 사람들을 멈춘 게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멈추는 연기를 했다. 감독이 말하길, 처음에는 엑스트라로만 촬영했는데 촬영 시간이 길어져서 오슬로 주민들이 창문 밖을 내다보고 멈추는 연기에 함께 했다. 코로나가 익숙해질 무렵 사람들이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걸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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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스틸사진

 

 

 

율리에와 에이빈드의 관계


 

에이빈드는 악셀에 비해 배려가 뛰어난 사람이다. 삶에 그렇게 큰 욕심이 없어 보인다.

 

전 여자친구가 정체성을 찾고 부족의 내림을 받고 요가를 하는 등의 급작스런 변화를 함께 묵묵히 해주는 사람이다. 환각버섯을 먹고 몽롱한 상태인 율리에를 위해 아침에 커피를 사 오고, 자신은 저녁을 먹고 왔지만 율리에에게 파스타를 만들어줄까? 물어보는 사람이다. 율리에는 에이빈드와 함께 살면서 이렇게 말한다.

 

 
“너랑 함께 있으면 완전한 내가 돼.”
 

 

율리에는 에이빈드와 함께 있으면 자신이 주인공처럼 느껴지지만, 그의 칭찬이 달갑지 않다. 자신의 글을 칭찬하는 에이빈드에게 마지막 책을 읽은 게 언제냐고 잔인하게 되묻는다.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깊이 있는 대화가 어렵다. 율리에는 (예상못한) 임신을 에이빈드가 아니라 악셀에게 처음 알렸다, 악셀에게 자신이 괜찮은 사람인지 묻는다. 에이빈드는 불안한 율리에를 정서적으로 지켜줄 수 없는 사람이다. 율리에가 그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아이를 유산한다. 그리고 에이빈드와 관계도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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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스틸 사진

 

 

 

최악일 때 가장 빛나는 사람을 어떻게 미워하나요.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떠난다. 눈앞의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로 스스로 던진다. 악셀에게 “당신을 사랑해, 그리고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하고 아이를 유산했을 때도, 악셀이 죽고 난 뒤 보는 일출에도 그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미한 미소를 띤다. 최악일 때마다 그녀는 오히려 빛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영어 제목은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다. 직역하면 ‘세상에서 가장 최악인 사람’이다. 그녀는 정말 최악일까? 최악이 맞다면, 악셀과 에이빈드에게 최악인 사람일까? 아니면 자신에게 최악인 사람일까?

 

이별은 상처를 남긴다. 먼저 떠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떠나는 사람도 상처받지 않는 건 아니다. 스스로에게도 최악인 걸 알면서도, 그녀는 안전하다고 느낄 때마다 불안함 속에 몸을 내던진다. 최악이지만 (그녀에게) 최선의 선택을 주저 없이 선택한다. 넘쳐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서 환각버섯을 먹고,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향해 피 묻은 탐폰을 던진다. 보는 사람이 썩 유쾌하지 않지만, 그녀의 진심이 담긴 은은한 미소를 보면 차마 응원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행복할 수 있다면, 아니 당신이 온전할 수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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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스틸사진

 

 

 

에필로그 : 자기만의 방을 찾는 여정


 

율리에는 아이를 유산한 후, 에이빈드와 헤어지고 영화 현장의 스틸 기사로 일한다. (율리에보다 어려 보이는) 여자 배우가 우는 장면을 연기한다. 그녀는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라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스스로 자책한다. 율리에는 담담하게 그녀를 쳐다보고 불안한 감정을 사진으로 그대로 담는다.


 

한 개인이 최소한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과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 버지니아 울프

 

 

그때 느꼈다. 율리에가 성장했구나. 자신의 불안함을 그대로 바라보기 힘들어서 충동적인 행동을 하던 그녀가, 있는 그대로 불안을 지켜보는 용기가 생겼다. 일을 마치고 율리에는 혼자 사는 “자기만의 방”에 들어간다.

 

대학생 때까지는 엄마의 집, 연애할 때는 애인의 집에 함께 살았던 의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율리에가 스스로 돈을 벌고 사유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 속에서 편안하게 일을 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한 여자가 사랑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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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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