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채의 움직임 한 번 만으로도 - 판소리 뮤지컬 '적벽'

판소리와 춤의 화려한 대전, 적벽
글 입력 2022.09.0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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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적벽 (8.20-9.29) 포스터.jpg

 

 

객석 내 주의사항 안내가 끝나고, 객석의 불이 서서히 꺼지면서 악기들이 조율을 시작했다. 이제까지 공연장에서 들어온 오케스트라의 조율 소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순간 들린 아쟁 소리. 판소리 공연을 보러 왔다는 실감이 났다.


이날 나는 판소리 뮤지컬 '적벽'을 보기 위해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로 향했다. '적벽'은 지난 2017년 초연 이후 다섯 번째 공연되는 국립정동극장의 대표 레퍼토리로, 네 번째 공연까지는 정동극장에서 공연되었으나, 이번 공연에서는 더 넓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로 무대를 옮겼다.


'적벽'은 우리나라의 판소리 '적벽가'를 판소리 뮤지컬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적벽가'가 어렸을 때 교과서나 만화책으로도 접한 경험이 있을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을 소재로 하고 있는 만큼, 공연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뮤지컬이라는 특성을 살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신선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판소리 뮤지컬은 물론이고, 판소리 공연 자체가 처음이었다. 음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판소리 음악 몇 곡을 알게 되어 들어본 적이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판소리는 고전적이고, 예스러워서 어딘가 지루하지는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나도 모르게 고정관념으로 진입장벽을 세워두고 있었던 것이다.

 

 

2022 적벽 (1).jpg


 

이 고정관념과 진입장벽을 모두 깨부순 공연이 바로 '적벽'이었다.

 

전통악기인 타악, 고수, 대금, 피리, 아쟁으로 구성된 라이브 밴드는 판소리의 장단을 맞추어 예측 가능한 소리를 내면서도 어느 순간 현대적인 락의 리듬을 연주했다. 생경한 조합이 내는 익숙하고 현대적인 소리와 리듬을 들은 순간, 손가락으로 톡톡대며 리듬을 타지 않을 수 없었다.

 

'적벽'이 새로웠던 부분은 라이브 밴드뿐만 아니라 가창에도 있었다. 판소리를 독창에서 나아가 합창으로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도창'은 안정적으로 무대를 이끌다가도, 금세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냈다.

 

때로는 한 명이서, 때로는 함께 곡의 흐름을 주고받다가 하나로 연결되는 과정을 보는 것이 큰 재미로 다가왔다.


 

2022 적벽 (2).jpg


 

또한 '적벽'을 대표하는 문구가 '판소리와 춤의 화려한 대전'이듯, '적벽'에서 현대무용은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요소이다.

 

배우들이 가창을 하며 끊임없이 대형을 바꾸고, 서로에게 올라타면서 현대적인 춤을 춘다. 판소리라고 하면 정적이게 움직일 것 같다는 기존 생각이 뒤집히면서, 과거와 현대의 조화를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이다.

 

특히 '적벽'에서는 '판소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채'를 펼치고, 접고, 던지며 끊임없이 새로운 물결을 보여준다. 공연에서 배우들이 공중제비를 돌고 스트릿 댄스를 추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움직임에 맞추어 주름이 펼쳐지고 은은하게 살랑이는 배우들의 의상 역시 하나의 큰 부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화려한 음악과 안무를 만날 수 있지만, 그 직전까지는 상당히 절제된 공연처럼 보인다. 무대는 양쪽의 경사와 복층 구조였고, 별다른 소품 없이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을 뿐이었다.

 

의상 역시 하얀색과 검은색, 그리고 붉은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물론 레이저와 강렬한 조명이 있기는 했지만, 다른 공연과 비교했을 때의 스케일은 작은 편이었다.

 

최소한의 무대, 그리고 최소한의 의상으로 화려함을 뽐내는 공연을 보며 직접 보이는 색이 다채롭지 않고도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22 적벽 (5).jpg


 

음악과 춤, 전반적인 무대까지 이야기했으니, 이젠 마지막으로 '적벽'의 젠더 프리 캐스팅을 짚을 차례다. '적벽가'의 원작인 「삼국지연의」의 인물 중 공명과 조자룡, 주유와 서서는 남성이지만 공연에서는 여성 배우가 그 역할을 맡았다.

 

또한 지난 시즌에서 '도창'을 맡은 정지혜 배우가 이번에는 장비 역할이고, 공명의 임지수 배우는 2017년 첫 시즌부터 공명을 맡고 있었다고 하니, 매 시즌마다 중심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계속해서 흐름에 맞추어 변화하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소리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 무용, 그리고 캐스팅까지 모든 영역에 걸쳐 익숙함과 신선함을 한 번에 경험하도록 만드는 공연이었다. 판소리의 진입장벽을 부채의 움직임 한 번 만으로 무너뜨린 적벽을, 꼭 한 번 접해보기를 바란다.


내용을 모르고 접해도 충분히 눈과 귀가 즐거운 공연일 것이다. 하지만 100분의 공연시간을 100% 이상 즐기기 위해서는 적벽가의 내용이나 시놉시스를 읽고 공연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무대와 대사, 그리고 음악이 훨씬 더 많이 보이고 들릴 테니.

 

위, 한, 오 삼국이 분립하고 황금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난무한 한나라 말엽. 유비, 관우, 장비는 도원결의로 형제의 의를 맺고 권좌를 차지한 조조에 대항할 계략을 찾기 위해 제갈공명을 찾아가 삼고초려 한다. 한편 오나라 주유는 조조를 멸하게 할 화공(火攻)을 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데, 때마침 그를 찾아온 책사 공명이 놀랍게도 동남풍을 불어오게 한다. 이를 빌어 주유는 화공으로 조조군에 맹공을 퍼붓고, 조조는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한 채 적벽에서 크게 패하고 만다. 백만군을 잃고 도망가는 조조를 가로막는 것은... - <시놉시스>

 

 

 

류지수 (1).jpg

 

 

[류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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