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풍경과 사색의 추상화 - 제22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티벌 [영화]

로이스 파티뇨 특별전 IV: 풍경&간격
글 입력 2022.09.0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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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포스터_네마프2022.jpg

 


하나, 뉴미디어의 주인은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합니다.

두울, 모든 사람이 뉴미디어로 놀이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세엣, 각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세계를 꿈꿉니다.

네엣, 획일적인 예술보다 다양성의 예술을 지향합니다.

다섯, 편견으로 차별받는 세상을, 모두가 존중받는 세상으로 바꾸어나가고자 합니다.

 

 

올해로 제22회를 맞이한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티벌, 이하 네마프(NeMaF)는 영화와 전시를 동시에 즐기는 국내 유일의 탈장르 영상예술축제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대안영화제이다. 이 대안예술축제는 타자, 젠더, 예술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통해 감수성을 끌어내는 실천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네마프 2022의 슬로건은 ‘자연이 미디어다: 작용’이다. 우리가 보통 접하는 수많은 주류 영화와 상업 예술의 경우 인간 중심의 시선으로만 자연을 보고 있기 때문에, 네마프에서는 이를 보다 넓은 공존의 개념으로 확장해 모든 자연적 존재들을 탈권위, 역동적 시선으로 관객과 함께 바라보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엄선했다.

  

 


 

손과 새가 풍경에 깊은 골을 만든다. 해변의 모래도 날갯짓을 할 수 있는 허공이다.

 

갈매기 한 마리가 다른 갈매기를 쫓아다닌다-그것은 그림자일까? 연인일까?-. 그들은 변화무쌍한 풍경 위 허공에 선을 긋는다. 새는 이제 모래 위를 나는 손이다.

 

- 트레일러 소개

 

 

그중 문화초대를 받아 관람한 작품은 이번 네마프 2022의 공식 포스터와 트레일러를 작업한 로이스 파티뇨(Lois Patiño)의 특별전이었다. 로이스 파티뇨는 자연을 바라보는 그만의 독특한 관점과 연출로 스페인에서 주목받는 갈라시안 영화감독 세대 중 한 명으로, 풍경을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예술가 중 한 명이라 알려진 바 있다.


그는 ‘자연이 미디어다: 작용’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자연과 풍경에 담긴 이미지를 포착하는 데 특별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영상에 담은 자연은 단순 보여지기 위함이 아니다. 그가 자연을 관찰하며 발견한 미학적인 측면은, 그의 영상에서 기존의 구분과 역할을 해체하고 사고와 감정을 여는 에너지로 전환된다.

 

운 좋게도 ‘로이스 파티뇨 특별전 IV: 풍경&간격’ 회차에는 마스터 클래스가 포함되어 있어, 로이스 파티뇨 감독이 직접 자신이 여태까지 쌓아온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관객과의 질의응답으로 더욱 자세히 풀어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로이스 파티뇨 특별전 IV: 풍경&간격



로이스 파티뇨의 작품에는 빛이 있고 바람이 있고 땅이 있다. 하지만 그것에 감정이입 하거나 명상의 대상으로 삼는 대신, 우리와 대상이 분리되기 이전의 차원에서 서로 중첩되는 어떤 부분을 통해 익숙했던 의식과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선사한다.

 

지난 몇 년간 그는 다양한 색감과 위치에 대해 고민하며, 특히 거리두기를 통해 현실 안에서 낯섦을 표현하는 영화들을 제작했다. 그렇게 풍경을 보는 시선과 사색이 녹아든 단편선들이 ‘거리’라는 관계적인 요소로 한데 묶여 ‘풍경&간격’ 섹션에서 상영되었다. 풍경이 지닌 광활함을 표현하기 위해그는 영상을 제작할 때 시간차를 두고 거리와 구도를 조절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는 관객에게 새로운 시선을 고민하게끔 하는 여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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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is Patiño, DISTANCE-LANDSCAPE, 2010-11

 

 

첫 번째로 상영된 ‘간격-풍경, 풋볼장(DISTANCE-LANDSCAPE, Football field, 2011)’은 제작 시기로 보아 그 실험의 초기작인 듯하다. 영상은 단순 축구를 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 그곳에는 드넓은 땅이 있고, 시간차를 둔 줌아웃을 통해 축구를 하는 그들의 구획을 둘러싼 거대한 풍경이 드러난다. 자연은 한없이 광활하고, 전체 풍경에 통합된 인간은 한없이 미미하다.

 

두 번째, 세 번째로 상영된 ‘땅의 진동 속으로(NA VIBRACIÓN da Terra, 2011)’와 ‘물의 진동 속으로(NA VIBRACIÓN da Auga, 2012)’ 역시 거리감을 이용한 짧은 단편으로, 제목에서 드러나듯 연작으로 보인다. 연속체에 대한 관찰로써 화산의 분화구를 통해 아래에서 위로 분출되는 모습이 담긴 ‘땅의 진동 속으로’, 폭포를 통해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물의 진동 속으로’ 모두 충분한 에너지가 오고 가는 상황이지만, 영상에는 그로부터 발생하는 안개와 연기 같은 것이 화면을 덮으며 대체로 부드러움이 담겼다.


작품이 선사하는 풍경의 모습과 풍경의 진동이 만들어내는 바람, 땅, 물의 소리에 집중했다. 앞선 단편들은 전부 5분 내외의 짧은 시간 안에 관객이 관조적인 경험에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로이스 파티뇨.jpg

ⓒ Lois Patiño, MONTAÑA EN SOMBRA, 2012

 

 

네 번째로 상영된 ‘그림자의 산(MONTAÑA EN SOMBRA, 2022)’은 거리적인 측면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앞서 상영된 작품들과 같은 선상에서 다룰 수 있겠지만, 회화적인 연출을 덧대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모든 빛을 반사하는 새하얀 눈이 덮인 설산의 모습은 대비와 명도를 극대화함으로써 빛과 어둠으로만 그려진 그림이 되었다. 구름의 이동과 산의 굴곡을 따른 빛의 물결은 오로라를 닮았고, 영상은 눈이 존재하는 곳인지 그림자가 그려내는 것인지 경계가 모호한 샌드 아트를 보는 것 같았다.


무수한 음영을 만들어내는 이 장소는 바로 스키장이다. 로이스 파티뇨는 이곳에서라면 멀리 있는 사람들을 찍을 수 있는 데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백색 배경이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겠다는 생각에 촬영을 결심했다고 한다. 드넓은 설원에서 작디작은 점이었던 사람들은, 스키를 타고 빠르게 내려갈 때면 빛을 받는 부분에 따라 그림자가 생기며 늘었다 줄었다 하는 선과 면이 되었다. 특히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은 설원과의 거리로 인해 거인처럼 새롭게 그려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상은 점점 어두워지면서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언뜻 봤을 때 스키가 지나가고 남은 자국이 마치 벨벳의 느낌을 내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마스터 클래스에서 설명을 들어 보니 이는 풍경을 평면화된 이미지처럼 표현하기 위해 공간감이 주는 깊이를 빼고 질감이 더욱 뚜렷이 자리 잡도록 연출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미지 처리는 물질과 공간의 차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영상에 촉각적 경험을 부여해 풍경이 공감각적인 심상을 지닐 수 있게 했다.


고요한 상황에 걸맞게 등산하는 사람들의 가쁜 숨소리와 눈을 밟는 뽀득한 소리가 시각을 적절히 보완하고 있던 도중에 스크린이 일렁이기 시작하면서 안개를 닮은 추상적인 엠비언트 사운드가 추가되었다. 풍경은 로이스 파티뇨가 의도한 대로 추상화를 그려내듯 이어졌고, 새롭게 추가된 사운드는 기존의 심상을 흩뿌렸다. 거리의 레이어와 사운드 적인 믹스가 추가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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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is Patiño, EL SEMBRADOR DE ESTRELLAS, 2022 

 

 

모든 것이 까맣게 덮인 밤, 그 어떤 실루엣도 없이 오로지 빛만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실루엣이 없어도, 수많은 불빛들이 질서정연하게 열을 맞춰 존재하고 또 그대로 반사되어 아래로 길게 뻗어져 있다는 점에서 이곳이 어느 물 위의 도시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전작들이 거대한 자연의 풍경을 담아냈던 것과 달리, 다섯 번째로 상영된 ‘별을 심는 자들(EL SEMBRADOR DE ESTRELLAS, 2022)’에는 도시의 야경이 펼쳐진다.

 

로이스 파티뇨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에 있어 무언가를 비워낼수록 생기는 공백이 미스테리를 증폭시킨다는 점에 주목하며 밤을 미지의 세계 그 자체로 담아냈다. ‘그림자의 산(MONTAÑA EN SOMBRA, 2022)’은 하얀색 배경으로부터, ‘별을 심는 자들(EL SEMBRADOR DE ESTRELLAS, 2022)’은 검은색 배경으로부터 영상이 시작되는데, 이는 그가 풍경이 만들어내는 공백을 탐구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화면에 담긴 밤의 도시는 일본의 도쿄다. 로이스 파티뇨는 여행을 위해 도쿄에서 잠시 체류하던 중 도시가 갖고 있는 밤의 모습에 흥미를 느꼈고, 밤하늘을 수놓는 전철의 불빛들이 그에게 마치 별똥별처럼 다가와 그 자리에서 바로 촬영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 위에, 두 사람의 나른하고 몽롱한 목소리가 일본어로 얹혔다. 곧이어 “저 멀리 잠든 눈꺼풀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손이 도시를 엮는다. 이제 깨도 돼.”, “보이는 것은 전부 너다, 너는 너를 넘어 항해한다.”와 같은 의미를 알기 어려운 말들이 오고 갔다.


“너는 배 안에 있다.” 수많은 불빛들이 번지고 있는 물결 위에 배가 지나갔다. “저들을 데리러 올 거야.” 데리러 오는 건지 모를 배들이 여러 척 지나갔다. “젖은 불빛이 내 목을 넘어간다. 내 정맥 안의 불빛. 불빛의 씨를 뿌린다. 색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불이 켜진 건물과 다리, 야간에 운행되는 열차와 수상버스, 전선주 등 여러 곳에서 나는 빛들이 물 위에서 자랐다. 서사가 있는 듯 없는 듯 계속되는 비유적이고 추상적인 표현들이 영상을 좇았다.


“색은 우리 뇌와 우주가 만나는 곳이다. 색은 침묵을 모으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부정이 아닌 그것의 목표다.” 어둠은 시점을 철저히 가려냈지만,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말들이 모래알 같은 빛에 심어졌다. “시선의 그물이 세상을 하나로 엮는다.” 다중 노출 기법으로 여러 투시가 덧대어진 화면 속에서, 어딘가를 향해 이동하는 빛들이 연결을 위해 달리고 있었다.

 

영화감독 겸 비디오 설치 예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 작품을 비디오 설치 예술로 전환해 일전에 플라네타리움에서 선보였던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사운드를 제거한 채로 상영되었다고 한다. 대사 없이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지만, 거기에 레이어를 추가하면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해 지금의 ‘별을 심는 자들’이 완성되었다.

 

로이스 파티뇨는 최근작들에서 언어의 의미와 사색적인 주제를 시각적으로 담는 행보를 보였고, 그중 ‘별을 심는 자들’에서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탐구한다. 영화의 중반부터는 “삶은 둥지를, 그리고 죽음을 그걸 따라 그린다.”와 같은 본격적으로 삶과 죽음에 관련된 비유가 등장한다. 기분 탓인지, 아까는 잔잔해 보이던 물결이 점점 일렁이는 것 같았고 몇몇 불빛이 깜빡거리는 모습이 도드라져 보였다.

 

영화 속 목소리들은 삶과 죽음을 의인화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대화는 삶과 죽음의 구분을 해체하고 심리를 파고들며 관객을 의식의 흐름으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도쿄의 밤은 시간이 사라지는 듯한 꿈결 같은 경험 속에서 삶과 죽음 사이의 림보(Limbus) 같은 공간이 되었고, 그들은 죽음을 목전에 둔 사형수들이 썼던 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시야가 점점 일렁거리는 것을 넘어 멀미를 일으키듯 울렁거렸다. 일그러진 풍경들과 잔상들이 수없이 겹치며,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가는 여정에 비로소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

 

우리가 생각하는 풍경이라는 개념은 미술가들이 자연을 그림에 담아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겼다고 한다. 자연이라는 것은 끝없이 이어지기 마련이지만, 이를 담는 그림이나 사진, 영상은 모두 순간을 담기 위한 것이다. 순간의 시간 동안 영상에 담긴 풍경은 제한적인 이미지를 안내하기 위해 어딘가 왜곡되거나 변형이 일어난다.


그 틈에서 로이스 파티뇨는 컨템포러리 이미지가 사용되는 방식을 시와 예술로 풀어내고자 했다. 영화와 함께 심리학을 전공했던 그는, 영화에 회화적인 표현을 접목시켜 자연의 숭고함과 강렬함에 대한 시선을 사고와 감정을 여는 판타지적인 경험으로 탄생시켰다.


자연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로이스 파티뇨는 다른 공간에서 영상물을 볼 때 각각의 감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충분히 고려하며 자신의 작품이 영화와 전시의 형태로 상영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극장 안에서는 우리의 몸이 사라지고 영화에 녹아드는 경험을 통해 작품을 감독의 의도 하에 감상하게 되지만, 갤러리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배우가 된 것처럼 활동하며 작품에 가까이 가거나 멀어지는 등 관람의 리듬을 통제하고 또 언제든 떠날 수도 있다.

 

멀리서 온 자연을 극장에서 감상할 때, 미디어가 주는 감각은 사실상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특히 영상이 거대한 평면의 스크린에 영사될 뿐인 극장 안에서는 오로지 시각과 청각 만으로 이 거대한 자연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어딘가 모순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허전함을 곱씹을수록 로이스 파티뇨의 작품 안에 사색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컬쳐리스트_민정은.jpeg

 

 

[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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