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관계에서의 저릿한 성장통 [영화]

글 입력 2022.08.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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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무수히 접하면서도 늘 감을 잡기 어려운 것이 있다. 바로 관계다. 나와 다른 상대가 서로 만나서 우리가 된다는 건 경이로운만큼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나, 그리고 상대가 적절한 균형을 갖고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균형이 어그러지면 내가 다치거나, 상대가 다치거나, 혹은 두 사람 모두 다치기 일쑤다.

 

어른이 되어서도 관계는 어렵지만, 어린 시절 우리들에게 관계란 유독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창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 우리는 친구 때문에 울고 웃었다. 영화 <우리들>은 지난날 친구와의 우정에서 비롯된 성장통을 다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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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해야만 하는 아이에서 이해받고 싶은 아이로의 성장



작품은 피구 경기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이들이 피구를 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의 세상이 보인다. 피구는 제일 잘하는 친구 두 명의 주도로, 가위바위보를 통해 한 명씩 뽑으면서 팀을 꾸린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잔인한 방식이다. 우리 편을 뽑는 방식은 어떤 학생이 가장 존재감이 높은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가장 마지막에 뽑히는 '이선'은 학교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아이다. 선이는 친한 친구 없이 학급에서 겉돈다. 또한 선이는 언제나 금을 밟는 아이다. 선이가 실제로 금을 밟아서가 아니다. 금을 밟지 않았다고 함께 맞서 싸워줄 편이 없는 선이는 별다른 저항 없이 아이들의 세계에서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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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에게는 늘상 '감당하기'라는 선택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보라 일행은 선이를 생일파티에 초대할 거라고 거짓말을 하며 청소 당번을 뒤집에 씌운다. 부당한 행동에도 선이는 상처를 받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한다. 관계에서 '존중'이란 남이 누구인지를 알고, 또 내가 누구인지를 상대에게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선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없다. 선이는 언제나 이해해야 하는 아이다.

 

그런 선이에게도 친구가 생긴다. 여름방학에 전학을 와서 자신을 처음 만난 지아다. 지아를 만나면서 묵묵하게 이해만 하던 선이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진다. 일을 마치고 피곤한 채로 돌아와서 동생만 챙기던 엄마에게 서운함을 표현하지 않던 선이는, 일주일만 지아를 재워달라고 엄마에게 무리하게 떼를 쓴다. 자신을 무시하던 보라에게도 지아와 둘 사이에서 있던 이야기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맞선다. 자신을 배신한 지아에게는 똑같이 상처가 되는 말로 반격한다.

 

지아라는 소중한 편이 생기면서 이해를 받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지아와의 우정 속에서 지켜야 할 마음이 생긴 선이는 예전처럼 이해만 해주던 아이가 아니다. 서투른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외친다.

 

 


의도치 않게 자꾸만 금을 밟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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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의 소중한 친구 '한지아' 역시 말 못할 고충이 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지아는 엄마를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한다. 전 학교에서는 부모님이 이혼하셨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자신의 슬픔을 털어놓을 만큼 선이와 가까워진 지아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의도치 않게 자신의 금을 밟아 넘어서는 선이에게 은근한 불편함을 느낀다.

 

김밥집을 운영하는 엄마와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선이의 모습을 보면서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의도치 않게 상처를 받은 지아는 선이에게 뾰루퉁하게 행동한다. 동시에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보라와 친하지게 된 지아는, 선이가 갖고 있는 아픔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 아픔이 자신의 것과 어느 정도 겹쳐있음을 알게 된다.

보라가 만들어놓은 세계 속에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선이.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보라. 과거 왕따를 당했던 경험 속에서 지아는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보라에게 흔들린다. 자꾸만 자신의 아픔을 끄집어내는 선이에게 약간의 원망감도 느낀다. 결국 지아는 서투른 방법으로 선이에게 선을 그어, 서로 간의 영역을 단호하게 분리한다.




금을 밟지 않고 서로를 응시하는 아이들


 

영화 <우리들>을 통해, 어른들의 질서가 아이들의 세계에 개입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는 이유, 다른 친구들로부터 피구 게임에서 앞 순위로 뽑히지 못하는 이유는 어른들의 세계가 긴밀하게 연관된다. 집이 부유한지, 사교육을 받는지 혹은 가정 내에서의 관계가 안정적인지에 따른 여부가 곧 아이들의 우정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촘촘하고 세밀한 질서에 어른 그 자체는 나설 수 없다. 어른들은 결코 해결해 줄 수 없다. 아이들의 세계는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동생 윤이가 친구 연호에게 일방적으로 맞고 다니는 걸 보며 속상한 선이는, 연호가 상처 내면 맞서 때리라고 한다. 하지만 윤이는 선이에게 싸우기만 하면 도대체 우리는 언제 노냐고 묻는다.

 

이는 동생이 당할 때 나서서 연호를 혼낸 선이를 보고 잘했다고 말하는 엄마의 답변과 대조된다. 우리는 자신을 상처 낸 이에게 다시 보복해야 한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은 사람은 상처를 앙갚음한다. 엄마의 대답에서 '나'를 지켜낼 수는 있어도, '우리'의 관계를 지켜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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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서도 피구 경기가 등장한다. 지아와 선이는 함께 서 있는다. 선이에게 상처를 주고 무시하며 보라와 어울리던 지아는 이제 선이 대신 '금을 밟는 아이'가 되었다. 선이는 자기 편을 잃은 지아를 보면서 방관하지 않는다. 통쾌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선이는 대신 지아가 선을 밟은 적이 없다고 외칠 뿐이다.

 

이후 맞은 편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선을 밟지 않고, 거리를 유지한 채로 번갈아 응시하기를 반복한다. 적당한 거리감 없이 갑작스럽게 친해지면서 그들은 서로의 선이 어디인지 모른 채로 영역을 침범해서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던 때와 다르다. 서로의 선을 알게 되었음에도 일부러 그 선을 밟아 명확한 의도를 갖고 상처를 주던 때와도 다르다. 이제 그들은 서로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 그 거리를 직시하면서 너머의 상대를 바라볼 뿐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지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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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은 관계 속에서 성장통을 겪던 지난 날 우리들을 보여준다. 우리에겐 언제나 이해받아야만 했기에 외로웠던 나날도 있었고, 의도치 않게 상대가 보여주기 싫은 마음들까지 침범했던 나날도 있었다. 내가 가진 취약한 마음을 드러내기 싫어서 남에게 생채기를 내며 선을 긋던 순간도 있다.

 

우리라는 관계는 혼자서만 가꿔나갈 수는 없다. 서로가 함께 가꿔나가야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속에 있는 상대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갖는지 섬세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

 

동시에 용기를 갖고, 자신의 선이 어디까지인지 내보여야 한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누군가 덜컥 밟고 침범해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움이 들더라도 말이다. 이해를 함과 동시에 상대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 우리라는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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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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