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제 작업은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이에요." - 김진 작가

글 입력 2022.08.2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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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포스터1.jpg

 

 

많은 예술이 일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매일 보는 풍경, 매일 하는 일을 새롭게 보게 될 때, 이미 예술은 시작된 셈이다.

 

‘노동’을 키워드로 한 작가 8명의 작업물을 모은 전시 <검은 안개, 출근길에 새어 나오는 깔깔깔 웃음소리> 역시 주최자인 김진 작가가 집에서 늘 내려다보이던 여성근로자아파트를 새삼스레 다시 보게 되며 시작되었다. 그렇게 일상적인 풍경에서 시작된 전시는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을 낯설게 만든다. 자의든 타의든 매일 하는 우리의 노동, 이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노동을 돌아보고, 질문을 건넨다.


지난 14일, 전시 주최자인 김진 작가를 만났다. 예술가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느리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언제나 주변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거대한 질문에도 사소한 것들로부터 답을 시작하려 한다. 지난 인터뷰는 언제나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 더 나은 작업을 위해 깊고 넓게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노동은 사각지대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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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가 나타났다_천에 바느질(콜라보레이션 with 권영자)_노끈, 나무에 페인트와 필사_지름 240cm 높이 190cm_2021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김진 이고, 흙을 포함한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서 이야기하는 설치예술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노동, 일상,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왔습니다. 최근에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창작센터에 입주해 사랑을 소재로 사랑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검은 안개, 출근길에 새어 나오는 깔깔깔 웃음소리>를 기획하시고, 얼마 전 전시가 마무리되었죠. 작업의 시작이 어땠는지 듣고 싶습니다.


네 맞아요. 작년 여름, 이번 전시에도 참여하신 추유선 작가님과 문래동 부근에서 같이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추작가님과 독산동의 봉제 공장 얘기를 하다가 광명 얘기까지 하게 됐어요.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여성근로자아파트가 구로공단이 활성화되던 시절 지어진 거고, 지금은 폐쇄된 채 방치되어 있다고 말씀드리니까 그런 게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에 놀라시더라고요. 원래는 전시장이 아니라 그 아파트에서 뭔가를 하려 했어요. 여건상 그건 좀 어려워서 다른 작가님들과 이런저런 논의를 한 끝에 지금의 전시 형태가 되었습니다.

 

 

작업하시면서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지난 겨울, 전시에 참여하시기로 한 작가님들과 탐방차 여성근로자아파트를 방문했어요. 폐쇄되어 있어서 단지 안으로는 못 들어가고 밖에서 펜스 너머로만 봤는데, 겨울이라 풍경이 황폐한 데다가 아파트도 오래되어서 주변의 고층 아파트 단지, 깔끔하게 정비된 도로와 대비되더라고요. 거기만 동떨어진 섬 같았어요. 늘 집에서 내려다보던 곳을 평지에서 동등한 눈높이로 들여다보던 그 순간이 이상하게 기억이 남아요.

 

 

전시의 키워드가 ‘노동’인데, 요즘 ‘노동’, ‘노동자’라는 단어는 예전만큼 많이 사용되지 않고 왠지 지난 시대의 단어처럼 여겨진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우리 모두 노동을 하고 있는데도요.


맞아요. 아까도 전시 보러 온 분이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를 조명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이게 특별히 사각지대라기보다 그냥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은연중에 노동과 우리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노동의 종류는 정말 다양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육체노동만을 노동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해요. 사실 예술 활동도 노동이라 할 수 있는데 노동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그런 얘기를 많이 하죠. 실제로 작업만으로 먹고살기가 어려워서 투잡 쓰리잡을 뛰며 생계를 유지하는 예술인도 많고요. 예술은 멀리 있지 않고 모든 사람이 향유하는 것인데,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예술이 소수의 자본가에게 종속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예술가들도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인식 개선이 필요해 보여요. 인식을 개선하려면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데, 개개인이 마음의 여유를 갖기가 어려운 사회구조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걸 생각 못 하는 경우도 많은 듯해요. 저희는 충분히 생각하고, 그 생각을 정리하고, 또 구상하고, 여러 재료적인 실험도 하는 등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노동의 비중이 커요. 그런데 예술을 한다 그러면 바로 무언가 결과물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너무 짧은 시간에 결과물을 요구받는 일이 종종 있어요. 노동 관련한 단체와 일할 때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웃음) 알려진 게 많지 않으니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일을 직접 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노동이 있으니까요.

 

 

예술가이자 노동자로서, 작가님께 노동은 무엇인가요?


음… 힘든 것. (웃음) 가끔은 예술가들이 노동을 너무 아름답게 포장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요. (웃음) 모든 일이 그 자체로는 힘든 것 같아요. 저도 전시가 마무리되면 뿌듯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이나 전시장을 지키는 일 같은 건 어렵고 힘들거든요. 그리고 노동의 범위가 매우 넓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것, 가족을 돌보는 것도 다 노동이니까요. 우리 모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관련된 이야기를 활발하게 공유하고 함께 걸어갈 수 있을 때 노동이 더 기뻐지지 않을까요?

 

 

 

“예술은 우리를 잠깐 멈춰 서서 생각하게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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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데메테르가 있다> 전시 전경_가변설치_혼합매체_2019

 

 

도자 전공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평소에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도자 전공이지만 꼭 도자 작업을 하진 않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생각하고 그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기에, 특정 재료나 기법에 작업이 한정되어 있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어쩌다 보니 도자 작업을 주로 하고 있네요. (웃음)

 

 

저는 도자 작업을 하는 분은 뵌 것은 처음이라서, 궁금한 게 많아요. 작가님은 처음부터 전공이 그쪽이셨나요?


어릴 때부터 미술 시간을 좋아하긴 했지만,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캐나다로 이주해서 대학도 캐나다에서 다니게 되었는데, 거기는 전공 없이 입학해 2학년 때 전공을 정하는 방식이에요. 1학년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교양 수업을 제가 좋아하는 미대 수업으로 채웠을 뿐, 상경계열 전공을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미대 수업시간이 너무 좋았고, 제게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2학년 전공을 선택하는 시기에 교양과목 교수님이 미술 전공을 권유하셨죠. 전공과 생계가 어떻게 연결될지 가늠이 안 되어서 고민하다가, 그래도 대학생 때 하고 싶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미술을 전공하기로 결정했어요. 공부하면서 제가 흙이란 매체가 물성이 잘 맞고, 동양에서 서양으로 넘어간 도예와 한국에서 캐나다로 간 제가 비슷한 느낌이라 도예를 세부 전공으로 택했어요.

 

 

그 뒤로 취업을 한다든가 다른 길도 있었을 것 같은데 작업을 계속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교수님은 계속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하셨지만, 저는 고민이 컸어요. 그러던 중 덴마크의 도자 레지던시 생활을 잠깐 하게 되었어요. 가보니 제가 어린 편이고 40대, 50대 분들도 많았고, 70대 할아버지 작가님도 계셨어요. 나이 든 작가들을 보니 저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작업을 계속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그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작가님은 평소에 어떤 이슈에 관심이 많나요?


소수자에 관한 이슈에 관심이 많아요. 자연이나 동물에도 관심이 많고요. 함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고민해요. 저는 예술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한번 멈춰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거라고 믿어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예술가는 느리게, 또 깊게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가려진 이야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는 되는 듯해요.

 

 

김해에서 ‘사랑’을 소재로 하신다는 작업은 어떻게 시작된 건지 궁금합니다.


올 초에 우연히 가수 민수의 ‘커다란(XXLove)’이라는 곡을 들었는데, 민수는 사랑을 담을 수 있는 좀 더 큰 말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그 노래를 만들었다고 해요. 그 이야기가 참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더라고요. 오래된 우정에도 질투가 있고, 가족과도 티격태격하는 게 일상이고, 개나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해도 인간 중심적인 시선에서 그들을 보며 제 만족감을 채우는 건 아닌가 싶었죠.


그러다가 최미자 관장님께 마음이 머물렀어요. 제가 광명시 중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지역인 철산 4동에서 몇 년간 지역주민과 관계를 맺으며 예술 활동을 해왔는데, 관장님은 거기서 만나게 된 분이에요. 이번 전시에서 제 작품에 참여하시기도 했어요. 몇 년째 활동하면서 저희는 모임을 자주 해요. 모임에 갈 때마다 그분들이 옥수수, 감자. 참외 같은 먹을거리를 갖고 와 나누는 게 일상이에요. 저는 그게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음식을 가져와 나누는 것이요. 이걸 제가 할 수 있는 작업으로 풀어보고 싶었죠. 그래서 제철 과일과 작물 등을 도자기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더 넓게, 깊게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작가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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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_철 프레임, 노끈, 도자기(조합토, 백토, 산백토)에 화장토 유약펜슬 전사지 등_지름 250cm 반구 x 높이 200cm (각 도자기 30cm)_2021

 

 

작업을 하실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구상과 작업 모든 과정에서 다 힘든 부분이 하나씩 있는데요, 저는 작품이든 전시든 제목을 짓는 게 특히 힘들어요. 시각예술은 감상자들이 시간을 갖고 은유적으로 읽어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제목은 언어로 되어 있으니 감상자가 작품을 충분히 느끼기 전에 생각이 너무 빨리 정리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한 전시를 한다고 해서 제목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어버리면 생각이 그 이상 확장되기가 어려운 듯해요. 그렇다고 너무 난해한 제목을 지으면 아예 내용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요. 경계선에 있는 알맞은 제목 짓기가 참 어려워요.

 

 

그럼 지금까지 지었던 제목 중 마음에 들었던 제목은 뭔지 궁금합니다. (웃음)


작년에 한 개인전 제목인 ‘토끼의 숨이 멎기 전 마고가 나타났다’예요. 우연히 책을 읽다가 토끼라는 동물이 외로우면 죽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생각해보면, 인간도 외로우면 정신적으로 고립되고, 그게 죽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제 작업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토끼처럼 외로워서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하다가 평소 관심이 많던 신화 속 여신 마고할미의 존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우리가 서로에게 마고할미가 되어준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요. ‘토끼의 숨이 멎기 전 마고가 나타났다’는 그렇게 탄생한 제목이에요. 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워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제목 같아서 좋아합니다.

 

 

앞으로의 일정이 궁금합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 11월 25일에 전시가 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사랑에 대한 탐구로, 인간에게는 분명히 무언가를 나누고자 하는 충동이 있다는 것과 연결해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당장은 그 준비를 열심히 할 것 같아요.

 

 

그럼 확정된 건 없지만 작가로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어떤 건지도 궁금해요.

 

<검은 안개, 출근길에 새어 나오는 깔깔깔 웃음소리>를 함께 준비한 작가들과 여성근로자아파트에 대해 리서치를 하고 각자가 재해석한 작품들로 전시도 해보고 싶어요. 진행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겠지만요.


그리고 최근에 아버지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 많아서, 관련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얼마 전 장마 기간에 아버지를 가게까지 태워다 드리면서 대화를 했어요. 비가 오면 손님이 없을 텐데 아버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시더라고요. 여쭤봤더니 어떻게 매일 손님이 많겠냐며, 손님이 없어도 비 오는 날이 좋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고등학생 때만 해도 아버지 가게가 자리를 덜 잡았을 때라 어떤 날은 손님이 하루종일 아무도 없곤 했거든요. 그때 아버지가 속상해하시던 게 생각나면서 시간이 지나 이렇게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게 새삼스럽게 다가왔어요.

 

사실 저는 제 직업에 종종 불안감을 느껴요. 막막하기도 하고, 하염없이 뭔가를 기다린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아버지에게서 어떤 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찾아가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은 어떤 작가로 남고 싶으신가요?


동료들과 즐겁게 잘 지내면서 열정적으로 작업하는 작가로 남고 싶어요. 하나의 작업이 끝나고 또 다음 작업을 할 때면 전보다 더 나은 작업을 하려 노력하거든요. ‘더 나은 작업’이란 제가 더 깊게 질문하고 더 넓게 생각할 때 가능한 것 같아요. 제가 나이가 들어도 더 깊게 질문하고 더 넓게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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