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가득 찬 숨을 내쉬고 싶을 때, 식물관 PH [전시]

글 입력 2022.08.2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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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쉬는 공간


 

숨을 쉬게 하는 공간이 있다.

 

공간은 저마다 그 안을 가득 메운 공기와 습도에 따라, 곳곳에 눈을 빛내는 생명과 사물, 그들의 배치에 따라 특별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어떤 공간은 숨을 불어넣고, 어떤 공간은 숨을 가만히 내뱉게 한다. 숨을 가득 불어넣는 공간들은 새로운 자극으로 머리와 마음을 예열시킨다. 지루한 일상에 따뜻한 숨이 스민다.


새로움은 즐거움을 주지만, 어떤 때에는 짜릿한 새것이 주는 감각보다 조용한 평화를 찾게 된다. 그럴 때, 숨을 내쉬게 하는 공간이 그리워진다. 처음 가본 곳이든, 눈을 감고도 발이 제 알아 찾아갈 정도로 익숙한 곳이든, 그러한 장소에 들어서면 밭은 숨을 내쉬고 찬찬히 공간을 둘러보며 안정을 찾게 된다.

 

잠시 눈 감았다 뜨면 가장 사랑받던 것이 철 지난 게 되어버리는 시대에 숨을 쉬게 하는 공간은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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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끝자락 수서에서, 역을 내려 가지런한 보도블록을 걸어 내려가다 보면 식물관PH가 나타나다. 식물관PH (植物館PH)는 식물의 집을 뜻한다. ‘식물과 사람이 함께 쉬는 고유한 경험의 공간’을 꿈꾸는 투명한 유리 문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공간은 그 공간을 둘러싼 도시를 전과 다른 곳으로 만든다. 수서역은 기차가 멈추고 출발하는 곳. 무겁게 짊어진 가방의 틈새로 바다의 짭짤한 향기와 산의 푸른 능선이 새어 나오는 곳. 아득한 남쪽의 공기가 서울과 맞닿는 곳. 교차점이라는 위치가 주는 바쁘고 붐비는 기운, 하지만 기차역만 벗어나면 한정한 동네의 공기, 그 대비는 언제 보아도 미묘하다.


차도 사람도 적은 조용한 동네, 특별히 눈에 띄는 쇼핑몰도 관광지도 없는 곳이지만 몇몇 사람들은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식물관PH에 가보았다고, 또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멋드러진 공간이 어떻게 수서에 생겼을까 궁금해하다가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과 휴식의 공간에선 전시가 함께 열리곤 한다. 식물관 PH는 그들의 기획 전시를 전시(展示) 형태라고 소개한다. -보여주고 구현되는 방식-의 본질적인 접근을 통해 이미지와 경험의 확장성을 생각하였고, 그 생각을 함께 해달라고 말한다.

 

이번 여름에는 오래된 기억에 남은 질감과 사람과 자연물의 유기적 관계를 떠올려볼 수 있는 두 전시가 열렸다. 가까이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식물관PH의 문을 연다.

 

 

 

TEXTURES OF MEMORIES: 질감으로 세상을 감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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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 시작되는 첫 번째 전시, FIVECOMMA(정혜진) 작가의 ‘TEXTURES OF MEMORIES’ 전이다. 크고 작은 화분과, 높은 천장, 물이 나오는 호스의 긴 줄, 식물이 가득한 공간 곳곳 FIVECOMMA가 감각한 질감들이 숨어있다.

 

 

사람마다 기억을 담고 저장하는 방식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데, 나는 질감으로 기억하는 것 같다. 전체적인 이미지가 아닌 어떤 한 부분의 디테일로 전체를 담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억들은 전체적으로 희미하고 부분적으로는 선명하다.


선면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나 정면은 없지만, 색감, 향기, 아주 작고 사소한 조각들이 선명하게 남아 순서 없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그 단편적인 조각들은 ‘부드러웠던 바람’, 천리향 향이 나던 골목’, ‘까슬까슬했던 공기’ 같이 각각의 질감으로 기억된다.


여기저기 흩어져 적당히 둥글게 다듬어지기도 하고 얇게 압축되어 쌓인, 질감만 남은 희미한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어 보고 싶었다. 안녕히 잘 있는지….. 나는 어떤 질감들을 담아 가고 있는지…

 

- 작가의 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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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감으로 기억한다는 작가의 말과 그 생각이 구현된 공간을 둘러보는 일은 새로웠다. 가장 익숙하면서도 잘 꺼내어 떠올려보지 않았던 감각, 그래서 가장 흔하지만 가장 낯선 감각이었다.

 

FIVECOMMA는 굵고 부슬부슬한, 알록달록한 털실을 사용했다. 어린 시절 운동장에 모여 제기차기를 할 때면 이리저리 뛰어오르고 떨어지던 얇고 반짝이는 은색 비닐 종이들이 떠오르는 작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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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재도 어떤 잎사귀와, 꽃과 있는지에 따라 은빛 제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삐죽빼죽한 수세미처럼 보이기도 했다. 언뜻 식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 돌아보면 너무 자연스러워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존재했던 것처럼 보였다.


전시는 오래된 기억의 질감을 돌아보게 했다. 동시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자연히 어울리게 되는 풍경을 상상하게 했다. 공통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질적인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의 조합들이 생각났다.

 

그 또한 몇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하나의 풍경으로 그려지게 되고 마리란 생각이 들었다.

 

 

 

HIDDEN CONNECTION: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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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면 김동해 작가의 ‘HIDDEN CONNECTION’ 전시가 이어진다. 불투명한 소재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문을 조심스레 밀고 들어가면 커다란 창 가득 나무의 빛깔이 쏟아져 내리고, 김동해 작가의 작품과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언제부턴가 내 삶의 영역 안의 너무 익숙해서 망각하고 있던 요소들이 생경하게 눈에 들어왔다.

 

공간에 부서지는 빛과 늘어진 그림자,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과 온갖 소리와 내음, 상쾌한 기분 등 내 주변 공간을 채운 사물들과 그 사이사이에 무수히 많은 요소들의 관계들.

 

이런 총체적인 연결성은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끊이지 않는 음악처럼 움직이며 생동감을 준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내 감정이 함께 움직이기도 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대한 체험은 익숙한 일상 속에서도 미지의 세계를 느낄 수 있게 확장되었고, 사물 그 자체보다 사물을 둘러싼 다양한 요소들의 맥락관계와 상호작용 즉, 사건에 더 관심을 가지게 하는 방향으로 나의 시선을 변화시켰다.

 

보이는 것 이면에 자리 잡은 숨겨진 관계를 연결 짓고 바라보는 것을 통해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주변의 수많은 요소들과의 상보적 관계를 맺으며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균형을 이루고 공존한다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작업에 담고 싶어 하는 것은 식물의 형태 그 자체라기보다 서사가 있는 어떤 장면 또는 풍경에 가깝다.

 

-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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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선택에 따라 배합하고, 가공되어 만들어진 금속. 인공적인 금속이 고요한 바람에 맞춰 흔들리고, 빛의 방향에 따라 반짝이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인공과 자연을 구분 짓고, 각각을 개별적으로, 독립적인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건 좁은 시야로 살아가는 일.


사람도, 사물도, 자연도 홀로 존재하는 것 같아도, 모두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그러한 감각을 느끼는 순간엔 알 수 없는 감동이 있다. 다양한 생물의 소리로 가득한 자연의 숲속에서,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연장에서, 그리고 말없이 조화와 연결성을 이야기해 주는 전시회에서 느끼게 된다.

 

 

 

두 삶이 마주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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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한 층을 더 오르면 FIVECOMMA와 김동해, 두 사람이 함께 구성한 전시 공간이 나타난다. 고요한 그 공간은 평행하게 달리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이자 전시의 주제를 관통하는 순간이다.


사람과 자연이라는 대상에 대한 유기적 관계를 넘어, 시각과 촉감, 감각과 감각 사이 연결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다시금 두 작가의 작품을 오감으로 느껴보면서 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전시였다.

 

일상에서 멀리 떠나 휴식하고 싶을 때, 하지만 너무 먼 곳은 부담스러워 선뜻 떠나지 못할 때. 수서의 식물관PH에서 천천히 숨을 내쉬며 나의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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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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