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착시에 질문을 던지라 - 바티망

사람이 건물에 매달리는 게 말이 되냐고요
글 입력 2022.08.1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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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건물 난간에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사람이 찍힌 사진을 본 적 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찍힌 사진에 처음엔 굉장히 놀랐으나, 이내 그것이 전시 작품의 일종이라는 것을 안 뒤에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뭔가 했더니 착시 효과를 이용한 전시 작품이었다.

 

작품의 제목은 <바티망>. 신선한 작품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났고 바티망을 만든 작가가 조금은 궁금해졌다. 장난꾸러기 기질이 충만한 사람일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바티망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의 영상도 찾아봤다.

 

그게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당시엔 바티망을 내가 직접 경험해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 할 수 없었다. 국내 전시로 기획 중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말이다. 그런 바티망이 한-아르헨티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7월 29일부터 12월 28일까지 서울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에서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바티망의 작가는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출신 아티스트,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다. 그는 수영장, 탈의실, 정원 등 우리 주변의 일상적 공간들을 주제로 거울이나 프로젝터 등의 장치들을 활용해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지각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2000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가했고, 2001년에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가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수영장(Swimming Pool), 1999>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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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Swimming Pool), 1999>

 

 

이번의 메인 작품인 <바티망>은 프랑스어로 '건물'을 뜻하는 말이다. 관객이 직접 참가하여 즐길 수 있도록 설치된 작품이며 관객들은 바티망에 들어가 있는 동안 중력에서 벗어난 초현실적 시각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관객들은 바티망을 활용해 아슬아슬하게 위태로운 장면을 연출할 수도, 모든 걸 뛰어넘은 초능력자를 연출할 수도 있다.

 

<바티망>은 지난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공개된 이후 18년간 런던, 베를린, 도쿄, 상하이 등 전 세계 대도시들을 투어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이어왔다. 특히 2017년 도쿄와 2019년 베이징에서 진행된 투어에는 일 평균 약 4,500명 이상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좌) 비행기(El Avión ,2011) _ (우) 야간 비행(Night Flight, 2015).jpg

(좌) 비행기(El Avión ,2011)

(우) 야간 비행(Night Flight, 2015)

 

 

이번 전시에서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품은 바티망 말고도 <비행기>와 <야간 비행>이 더 있다. 두 작품은 평범한 사진 작품이 아니라, 영상이 재생되는 영상 작품이었는데, 바깥으로 보이는 하늘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기내에서 보는 풍경을 연상시키는 두 작품은 코로나 19로 한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여행에 대한 설레임을 다시금 복돋게 해주었고, 하늘 위에 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잠깐동안 눈을 감게 해주는 등 여행 분위기를 물씬 내주었다.

 

다른 무엇보다 상반된 분위기의 두 작품을 같이 붙여놓은 것이 참 재밌었다. 서로 다른 속성을 가진 두 가지를 붙여놓으면 따로따로 놓을 때는 볼 수 없었던 이질적 조화로움이 생겨나는데, 그 기묘할 듯 미묘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흔히들 얘기하는 빛과 어둠, 밤과 낮, 유채색과 무채색, 태양과 달 등이 그렇다. 다른 것에서 출발해 같은 것으로 나아가는 과정, 또는 같은 것에서 출발해 다른 것으로 나아가는 그 과정은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그렇기에 매우 아름답다. 비슷한 것만 모아놓은 것에는 금방 지루해지는 것이 사람인지라, 금새 다른 것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것들 속에 섞여있으면, 그걸 못 참고 같은 것으로 돌아가려는, 이 세상에서 가장 모순적인 인간이란 존재는 알고보면 이 세상의 모든 모순 덩어리를 내면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생명체다. 상반된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의 매력에 빠져 걷잡을 수 없는 탐욕을 부추기다 결국은 그러한 탐욕으로 인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못내 잃고 마는 가련한 인간. 삶도, 사랑도, 사람도 모두 허상에 그칠 것을 알면서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인간.

 

처절히 아프게 될 걸 알면서도 무모하게 도전하는 인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임을 알지만 짐짓 겁먹고 시도조차 안하는 인간, 우리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이상에 불과한 일들을 현실에 녹여내려 안간힘을 쓰는 인간, 마음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를 어떻게든 무시하고 몸이 주도하는 소리만 받아들이는 인간 등 어떻게 보면 반대로만 행동하고자 하는 본성 같은 게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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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The Staircase)

 

 

모순, 모순, 참으로 모순적인 인간. 

 

그렇기에 너무나 매력적인 인간.

 

모순은 혼란이지만, 적당한 수준의 모순은 매력이다.

 

착시가 매력적인 이유 또한 비슷한 맥락 아닐까? 착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상하고 괴상하고 알 수 없다. 이게 뭐지? 이건 왜 이렇게 되지? 같은 질문을 거치는 과정 없이는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상식에 반하고 통념을 거스르며 세상의 법칙을 뒤엎는다. 인간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런 혼란이 '적당한 수준'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건 유희다. 맥주의 알코올이 적당한 수준으로 우리에게 들어오면 유희로 작용하는 것과 비슷하고 잘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의 해결 루트를 마침내 알아냈을 때의 쾌감하고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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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Noeud)

 

 

적당한 텐션과 긴장감을 유지하는 길고 긴 과정, 아슬아슬하게 끊어지지 않는 끈을 밀고 당기는 과정을 어떻게 보면 우리가 착시를 즐기는 과정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해될 듯 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헷갈리는데 그렇다고 놓아버리기엔 너무나 궁금한 이 착시라는 녀석이 레안드로 에를리치 작가의 주무기다. 그는 상당히 고도화된 무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저기 저 계단이 진짜 계단이 맞나요??

저 꼬이고 꼬인 계단은 왜 저렇게 만들어진 거죠?

저 수영장은 물이 있는 게 맞나요??

저 건물에 매달린 사람들은 도대체 왜 저러고 있는 건가요??

제가요, 지금처럼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느끼는 게 맞는 겁니까?

제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게 맞는 거죠?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의문을 일게 만들었다. 현 시대 사람들이 놓고 살았던 궁금증, 호기심, 물음표를 다시금 쥐어주었다.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왜? 이건 왜? 무슨 이유에서? 이게 맞아? 내 생각이 맞는 거야? 내가 이해한 게 맞아?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질문하는 사람을 낙오자, 혹은 남들보다 뒤처진 자로 낙인찍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근본인 '질문'을 잃어버렸다. 인간의 근본인 질문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동시에 답을 찾을 필요 또한 없어졌다. 정해진 답이 있고, 주어진 사명이 있으며, 올바른 루트가 있는 시대. 이런 시대에서 수 년, 수 십 년이 걸릴 자신만의 답을 찾는 고독한 행위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질문이 사라진 시대, 그리고 질문하는 법조차 잊어버린 시대, 모든 걸 순순히 받아들이는 시대.

 

그런 시대에 <바티망>은 질문을 일깨우고 있다. 질문하게 유도하고 있다. 질문에 질문을 던지도록 우리를 꼬드기고 있다.

 

이건 무슨 원리야? 

이건 왜 이렇게 생겼어?

이건 어떻게 만들어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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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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