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스케치] 생각이 멈추도록 기다려야 해

<잃어버린 영혼>, 올가 토가르축 글 ·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글 입력 2022.07.2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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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영혼.png

 

 

 

#육체 #영혼 #휴식 #삶 #인생 #현대인 #기다림

 

 

 

Essay.


 

여러날 아팠다. 여러날에 여러날이 아프자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치밀어올랐다.

 

가장 큰 이유는 회사 때문인 것 같았다. 퇴사할까?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얼마간은 쉴수 있겠지, 하지만 돈이 떨어지면 사람인이나 잡코리아를 뒤지며 다시 회사를 알아봐야겠지? 그리고 입사하면 다시 근무시간만 9시간을, 아침, 점심, 저녁 먹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약 12시간을 그러니까 하루의 반을 일하는 데 쏟아부어야겠지. 그리고 나면 나는 다시…

 

그만하자, 다 그만두자.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게 뭐였더라. 쉬자고 했는데 다시 할 것을 고민하고 있구나. 일단 가만히 앉자. 나는 성격이 너무 급해. 생각을 그만 해야 해. 생각을 멈춰야해, 생각이 멈추도록 기다려야 해.

 

 

 

Point note.


 

1) 흐름 - 이 책은 적어도 세 번 봐야 한다. 한 번은 순서대로, 한 번은 왼쪽 페이지의 흐름에만 집중해서, 한 번은 오른쪽 페이지의 흐름에만 집중해서.

 

영혼의 이야기는 왼쪽 페이지, 육체의 이야기는 오른쪽 페이지에서 따로 펼쳐진다. 이 둘의 이야기는 접지선을 기준으로 구분되어, 페이지 단위로는 각각, 양쪽 펼침면 단위로는 동시에 진행된다. 하나의 펼침면은 동일한 시간을 암시하고 같은 시간에 펼쳐지는 서로 다른 이야기(하지만 종국에 하나가 될)를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른쪽 페이지는 정적이다. 페이지를 넘겨도 공간이나 배경에 큰 변화가 없다. 육체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제 자리에서 기다림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이블과 창문, 화분 등이 놓여 있는 오른쪽 페이지를 넘길수록 육체(성인 남자)의 턱수염, 머리칼이 자라거나 화분의 식물이 자라는 미묘한 변화로 흐르는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왼쪽 페이지 공간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훨씬 동적인 느낌이 든다. 영혼(어린 여자아이)은 숲에 있다가, 카페에 앉아 있다가, 파티를 하는 사람들 틈을 지나온다. 바닷가에도 서 있다가, 전철을 타기도 한다. 왼쪽 페이지 흐름에 집중하면 육체를 찾아가기 위한 영혼의 우여곡절, 긴 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2) 그림과 글 - 표지를 넘기면 면지, 판권면 혹은 속표지 다음에 바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보통의 그림책과 다르게 이 책은 5장을 넘겨야 비로소 속표지가 나온다. 마치 소설책의 프롤로그처럼.

 

글은 프롤로그(속지 앞부분)에서 배경을, 본문에서는 이야기의 발단을, 영혼과 육체가 만난 다음엔 결말을 설명한다. 특히 발단은 한 페이지 가득 줄글로 되어있는데, 이후 펼쳐지는 글이 없는 페이지에 대한 모든 단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결말. "그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문장 이후에 펼쳐지는 글이 없는 페이지의 그림은, 글과는 '다른 방식으로' 결말을 '한 번 더' 극적으로 연출한다.

 

 

3) 캐릭터 - 영혼은 어린 여자아이로, 육체는 성인 남자로 표현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이, 성별에 격차가 있어서 꼭 의도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육체가 오랫동안 영혼을 잊고 살았다는 내용을, 어른은 대부분 어린아이 시절을 잊고 산다는 명제와 치환한 걸까? 아니면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아이와 보호자, 즉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입한 걸까. 어린 아이가 동그마니 혼자 카페에 앉아 있거나 전철을 탄 장면에서는 마치 보호자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불편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딸은, 꼭 만나야 하는 관계이기도 하고.

 

여러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이런 캐릭터 설계가 선사하는 결과만은 명확하다. 아무튼, 겉으로 너무 다르게 생긴 두 사람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는 것. 이 장면에서 마치 서로 잘 모르는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알아가는 느낌이 드는데,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과 그들이 잘 돌보지 못하는 내면도 어쩌면 이처럼 생소한 관계일 수 있다는 은유로 읽힌다.

 

 

4) 디자인 - 마치 모눈종이 위에 그림을 인쇄한 것처럼 내지에는 희미한 모눈이 같이 인쇄되어있다. "다만 가끔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평평한 듯한 기분이 들기는 했습니다. 마치 수학 공책의 가지런한 모눈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의 발단 부분을 컨셉으로 잡은 듯하다. 육체와 영혼이 만난 다음 이 모눈 패턴은 사라진다.

 

색 변화도 주목할만하다. 처음부터 영혼과 육체가 만나기 전까지 그림은 흑백이지만, 만남 이후에는 풀컬러로 바뀐다. 이러한 색 사용 방식은 무성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지는 클라이막스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Brief comment.


 

어떤 기다림은 사람을 아예 멈추게 만든다. 기다리면서 뭘 할 수는 없도록,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도록.

 

 

 

Workshop Idea.


 

1) 흐름과 구성

-왼쪽 페이지와 오른쪽 페이지를 분리하여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이야기를 함께 담는 책을 만든다면? 단, 이 두 가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이 있어야 하고, 그 연관성은 책의 주제와 긴밀히 연결될 것이다.

-나의 그림책에도 프롤로그가 필요한가?

-색 변화를 활용하여 이야기 흐름의 변화를 암시해보면 어떨까?

-나의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에는 글을 쓸 것인가, 그림을 그릴 것인가?

 

2) 주제

-두 사람이 멀리 있다가 서로 만나게 된다는 컨셉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본다면, 그 두 사람에게는 어떤 성격(캐릭터)을 부여할 수 있을까?

ex)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 배경은 꿈 속

-다른 그림책에서 기다림이란 주제를 어떻게 다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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