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빵을 구울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7.2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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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빵을 구울 테니 너는 시를 쓰거라



시집의 처음을 장식하는 그림을 살펴보자. 집사라면 공감할만 한 반려묘의 시선이 담겨있다.

 

'뭘 쳐다보고만 있어? 어서 만져줘야지.'


'내 눈에 보이는 곳에 있으라고. 딱히 네가 보고 싶은 건 아니야.'

 

'나는 빵을 구울 테니 너는 시를 쓰거라.'

 

고양이는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시크함이 매력이다. 그러나 무심하게 따라오는 골골송은 내내 집사를 따라다녔다. 인간에게 관심도, 사랑도 없다는 것은 편견일지도 모른다. 밤마다 가슴 위를 묵직하게 데우는 온도와 손길을 핥아주는 까슬한 혀가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종일 곁에 따라붙지 않아도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매일 침구를 청소해도 시커멓게 묻어 나오는 털, 침묵을 깨는 얕은 울음소리, 부리나케 달려가 보면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는 참혹한 사고 현장. 이제는 그것이 애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안다.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는 열여덟 명의 시인들이 참여하여 각자의 반려묘를 소개하고 있다. 짧은 시와 산문으로 쓰인 이야기들은 집사와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반려묘에 대한 슬픔이 느껴졌다. 겨우 20년을 살지도 못하는 작고 여린 생명체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나면 무엇이 남게 될까.




 

인간, 나의 집사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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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데려온 지 햇수로 6년이 되었다.


짧은 시간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십 대의 대부분을 함께 한 셈이다.


첫 직장에 입사하여 혼자 살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경제적 어려움 보다 나를 외롭게 만드는 것은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적막이 감도는 방이었다.


길고양이에게 마음을 주고 고등어 무늬의 비만 고양이를 키우는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왔다. 평소 반려동물에 대하여 박식한 지식이나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아이를 데려오기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단지 외로움에서 기인한 충동이 아닐까, 하는.


인간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됐다. 친구의 반려견 망고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던 날을 기억한다. 일도 내팽개치고 펑펑 울며 본가로 달려가던 모습이 뇌리 깊숙이 박혀 있다. 

 

반려동물은 생명체를 책임진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떠나보내기까지 나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는지 재고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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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고작 2개월, 두 손에 겨우 들어오는 회색 털 뭉치는 4월 초봄 내 집으로 들어왔다. 부모, 형제의 곁을 떠나 인간의 품에 안긴 가여운 몸짓으로. 자그마한 몸통이 낯선 공간을 살피며 힘차게 울어댔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설사를 했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곧장 아이를 품에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굳이 침대 밑 먼지 많은 구석으로 기어들어가 아파했다. 고양이의 독립적인 성격 탓일까. 몸은 어찌나 유연한지, 주먹만 한 공간으로 잘도 숨어 내 시야를 벗어났다. 

 

각종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을 들락거리며 깨달았다. 이제부터 이 작고 여린 생명체를 책임져야 하는 보호자라는 것을. 어느덧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어엿한 성묘의 모습을 띄게 되었지만 여전히 내게는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던 새끼 고양이에 멈춰있다. 

 

주사기로 약을 먹이려는 나와 어리숙한 손길이 마음에 들지 않던 너. 베란다 창 너머 바깥세상을 구경하던 너. 커튼을 타고 천장까지 올라가던 너. 내려달라며 울던 늦은 새벽, 제발 잠 좀 자게 해달라며 함께 울었지만 지난날의 에너지 넘치던 모습이 그립다.

 

 



오해입니다


 

사람들이 고양이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있다. 종일 관심이 필요한 개와 달리 고양이는 내버려 두어도 혼자 잘 지낸다는 것이다. 크나큰 오해였다. 굳이 말하자면 수발이 필요한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 집임에도 불구하고 주객전도되어 집사 노릇을 하게 되었으니.


고양이는 훈육으로 길들여지지 않기에 집사는 그저 그들이 행동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아끼던 꽃병을 깨뜨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이의 말랑하고 보드라운 젤리가 다칠까 봐 서둘러 유리조각을 치웠다. 새벽 내내 이어지는 뜀박질에 새벽잠을 포기했고(사냥놀이도 소용없다), 손길을 원하다가도 금세 돌아서는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고양이의 외로움을 알지는 못하지만 매일 같이 현관 앞에 마중 나오는 얼굴을 알고 있었다. 

 

캄캄한 방에서 빛을 내며 다가오는 두 눈을. 현관 도어록 소리에 반응하며 내게로 사뿐사뿐 다가왔다. 캔 따개 집사가 목적일 가능성이 높지만 고단한 종아리 위로 얼굴을 부비는 사랑스러운 몸짓을 사랑했다.


아이는 텅 비어버린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워 달라고 울었고 골골송을 부르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엉덩이를 팡팡 두드리다가 미끄러져 배 위를 더듬거리면 어김없이 자리를 피한다. 또다시 제 갈 길을 가는 가벼운 엉덩이. 그것이 외롭지만은 않다.

 

 

 

나는 오늘의 방에 있다


 

시집에 실린 이현호 작가의 '오늘의 방'에는 문득 현실감을 상실하는 순간마다 고양이의 존재로 인해 다시금 돌아오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집안 가득 배인 냄새와 울음소리, 분주히 뜀박질하는 존재감 말이다. 

 

먼 훗날, 아이가 곁을 떠나고 나면 나는 더 이상 현실을 망각할 수 없으리라. '나'라는 존재가 실재하는 것보다 네가 없다는 현실을 감각하겠지.

 

 



네가 오지 않을 여름





넌 어디에 있니

/지현아


(중간생략)


지난여름 너를 몰랐는데 다음

여름의 우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건

도둑고양이의 마음일까 내가

길고양이가 지나간 길이었대도

할 수 없지

우리는 여름을 살았고 우리의 여름은 지났고

길 위에서

고등어나 치즈 같은

야옹 혹은 안녕처럼

이름이 아닌 이름들을 부르는 동안

네가 오지 않을

여름이 왔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면 '고양이가 싫다던 아빠....'라는 제목의 다양한 콘텐츠가 뜬다. 고양이는 절대 안 된다며 반대하던 부모님도 막상 데려오면 자식처럼 대하더라,는 내용이었다. 흔한 주제지만 여느 집마다 발생하는 이야기다. 

 

현재는 길 위에 홀로된 고양이만 봐도 눈물을 훔치는 나의 엄마 역시 고양이 털을 걱정하며 집에 들이길 꺼려 했다. 게다가 집사 바라기에 곁을 내주지 않았으니. 


언젠가 엄마는 외식을 하던 중간에 집에 홀로 남을 아이가 불쌍하다며 글썽였다. 나이가 들면 눈물도 많아진다던데 호르몬의 마법일까. 나도 안 우는데 엄마가 왜 울어! 아무렇지 않게 대했지만 가끔 생각이 났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으로 돌아가는 건 어떤 기분이었더라.


함께 한 시간은 얼마 안 되었지만 우리는 네 번의 계절을 함께 보냈다. 한순간도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올해 여름은 많이 덥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작년 여름에는 시원한 곳을 찾아 무거운 털을 이끌고 현관 타일 바닥에 몸을 웅크렸는데.


내년 여름에도 견뎌주었으면, 다음 여름에도, 다음다음 여름에도. 

 

그렇게 시간이 흘러 네가 오지 않을 여름이 오겠지.

 



뾰족한 투명

/백은선


(중간생략)


우울할 때는 며칠씩 잠만 자던 내 못난 습관을 없애줘서 고마워.

외로울 때 따듯함이 무엇인지 가르쳐줘서 고마워. 다리에 쥐가 나도록 나를 아껴줘서. 아침마다 깨워줘서. 혼잣말에 대답해줘서.

나를 잊고 깨끗해지기를 바라.



 

앞서 고양이의 수발을 든다고 말했지만 내내 나를 보듬어준 것은 고양이었다. 매일 아침 7시 기계적으로 몸 위를 올라타는 무게와 반질한 얼굴을 정성스레 핥아주던 까슬한 알람 없이 어떻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까. 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고 생각하자 애틋한 마음이 일었다.


실은 아침밥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어서 일어나 깨끗한 물을 대령하고 지저분한 화장실을 치워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아침을 깨워주고 밤을 닫아주던 너에게 말하고 싶다. 슬픔에 잠겨있던 내 옆에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었던 날들 말이다. 

 

앞으로 함께 지낼 숱한 계절이 돌아오겠지만 나는 너의 존재에 늘 고마워할 거라고. 이 모든 게 편의를 위한 몸짓일지라도 나를 어루만져 준 것만으로 나는 너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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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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