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둔감해진 감각이 깨어난 순간 [영화]

글 입력 2022.07.2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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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맛에 중독되다


 

음식을 다채롭게 즐기기 위해서는 지켜야 하는 순서가 있다. 자극적인 음식의 유혹을 뒤로하고, 슴슴한 음식부터 먼저 맛보는 것이다.

 

이 순서를 고려하지 않으면 슴슴한 맛의 매력을 전혀 알 수가 없다. 혀가 한번 강렬한 맛에 자극되면 그보다 약한 자극은 더 이상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평생 슴슴함에서 느껴지는 재료 본연의 맛과 조화, 은은하고 산뜻한 뒷맛에 감동할 수 없다.

 

콘텐츠를 맛볼 때도 마찬가지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한번 익숙해지면 그와 반대인 콘텐츠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원하게끔 만들고, 점차 자극적인 것만 찾는 단조로운 취향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고 필자가 이러한 유혹에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필자 역시 현대인으로서 강렬하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자주 노출되어 있고, 쉽게 눈을 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피로도가 적은 콘텐츠를 찾아 헤맸고, 그래서 선택한 영화가 <벌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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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슴한 영화 <벌새>


 

<벌새>는 사춘기 소녀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영화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처럼 매일같이 학교와 학원에 가고, 가족과 친구들과 겪는 소소한 갈등이 전부인 일상을 말이다. 일상의 호흡처럼 극의 전개는 느렸고 잔잔했다. 화려한 볼거리가 있어 눈이 즐겁거나, 인물 간의 극적인 갈등으로 긴장감이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어느 영화보다도 몰입하며 감상했다.


그것은 감독이 '자극'이 아니라 '공감'의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은희의 평범한 일상 이면에는 사춘기 소녀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감정이 있었다. 우린 누구나 사춘기를 겪으며 한 번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경험하기에 이 영화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아이가 아동기를 지나 청소년이 되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끊임없이 성찰하며 자신을 탐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향한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파악하는 것이다. 전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아 개념을 만든다. 후자는 빠르고 쉬운 방법이지만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자아 개념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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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의 무관심, 친구들의 변덕스러움 사이에


 

은희 역시 후자의 방식을 선택한다. 타인에게 각별한 존재가 되어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은희의 바람은 극이 전개되면서 잔인할 정도로 좌절된다. 은희는 집안의 막내딸이다. 막내딸이라면 온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은희는 가족들의 무관심과 오빠의 폭력 속에 자란다.


부모님의 사랑은 서울대에 갈 거라고 믿는 오빠에게, 부모님의 관심은 일탈과 사고를 저지르는 언니에게 늘 향했다. 모범생도 날라리도 아닌 은희는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에 항상 2순위였다. 은희가 가족들의 관심을 독차지한 것은 딱 한 번이다. 은희의 얼굴에서 자라나는 '혹' 덕분이었다. 은희는 가족들의 관심이 어리둥절하면서도 은근히 좋았다. 하지만 그 관심마저도 오래가지 못했고, 은희는 혹이 제거된 후 묘한 아쉬움까지 느낀다.


은희는 친구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남자 친구와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안정적인 연애를 하지 못했고, 하나뿐인 단짝 친구 지숙이마저 결정적인 순간에 은희를 배신한다. 자신이 이유 없이 좋다고 말하며 졸졸 따라다니던 후배 유리마저도 새 학기가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멀리한다. 변덕스러움과 예민함의 형태로 사춘기를 겪고 있는 친구들로 인해 은희는 늘 상처받고, 외로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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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웃을 수 있게 된 은희


 

그런 은희에게 처음으로 안정적인 사랑과 관심을 주는 사람이 등장한다. 한문 선생님 영지였다.  한문 선생님은 담백하지만 진심 어린 방식으로 은희를 대한다. 오빠에게 맞고 돌아온 날에 '은희야 맞지마, 누가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라는 말을 해주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은희에게 스케치북을 선물하며 우울해하는 은희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영지마저 사고로 은희 곁을 떠난다. 영지는 사고를 겪기 전 은희에게 편지를 보냈고, 마지막이 된 편지는 은희에게 살아가는 힘을 준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 <벌새> 중

 

 

마지막 장면은 은희가 수학여행을 떠나는 모습이다.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정신없이 떠들고 있다. 은희는 들뜬 친구들의 무리 사이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풍경과 친구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그리고 웃는다. 은희는 성장했다. 은희는 혼자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타인에게 의존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지 않았고, 자신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영지처럼 발견했다. 세상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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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감성이 둔감해지지 않도록


 

<벌새>는 분명 msg를 넣지 않는 영화였다. 심심했지만 정직했다. 정직함을 고수하며 관객들을 필사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이 고집스러웠지만, 애정이 느껴졌고 감동적이었다. 감독의 정성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고, 기분 좋은 여운은 나를 슴슴함에 중독시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이런 영화들을 모르고 지나치지 않도록, 예민한 감각과 감성을 지켜내는 것이다.

 

감각과 감성이 둔감해지길 바라는 치열한 콘텐츠 전쟁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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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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