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젊은 두 비르투오소의 만남, 임지영 X 레미 제니에 듀오 리사이틀

글 입력 2022.07.1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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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x레미제니에_포스터.png

 

 

지난 7월 14일, 오랜만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찾았다. 음악당을 가더라도 거의 IBK챔버홀로 갔는데, 이번에 찾은 무대는 큰 무대였기에 콘서트홀로 갔다. 뮤직앤아트컴퍼니에서 기획한 슈퍼노바 시리즈 중 첫 번째 무대, 바로 임지영 X 레미 제니에 듀오 리사이틀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2015년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바이올린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했었고 피아니스트 레미 제니에는 2013년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2위를 기록했던 연주자들이기에, 이 뛰어난 두 연주자가 어떤 무대를 선보일지 기대가 됐다.


폭포수마냥 비가 쏟아지던 날씨도, 콘서트 당일에는 전혀 오지 않고 그저 날씨가 화창하고 맑았다. 간만에 찾은 콘서트홀을 만끽하고 싶어서 야외에서 하늘을 바라보려고 벤치에 앉았는데, 임지영과 레미 제니에의 무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다들 공연을 앞두고 날이 너무 좋아서 잠시 시간을 보낼 겸 나온 게 보였다. 공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일행과 나누는 대화들이 들려 다들 같은 마음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라벨,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프로코피에프 그리고 비에니아프스키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레퍼토리다. 하지만 로맨티시즘부터 리얼리즘까지 아우르며 임지영과 레미 제니에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확장성, 나아가 두 연주자의 가늠할 수조차 없는 음악 세계의 깊이와 지평을 관객들에게 살짝이나마 엿보여주려고 한 것 같았다. 그들이 보여준 비르투오시티와 앙상블에는 이 덥고 습한 여름날을 잊게 만드는 강렬한 무언가가 있었다.


 



PROGRAM


Maurice Ravel (1875-1937) - Valses nobles et sentimentales *Piano Solo

모리스 라벨 (1875-1937) –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피아노 솔로

I. Modéré – très franc

II. Assez lent – avec une __EXPRESSION__ intense

III. Modéré

IV. Assez animé

V. Presque lent – dans un sentiment intime

VI. Vif

VII. Moins vif

VIII. Épilogue: lent


Richard Strauss (1864-1949) -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E-flat Major, Op.18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1864-1949)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E-flat장조, Op.18

I. Allegro, ma non troppo

II. Improvisation. Andante cantabile

III. Finale. Andante – Allegro


- Intermission -


Sergei Prokofiev (1891-1953) - Violin Sonata No.1 in f minor, Op.80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1891-1953) –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f단조, Op.80

I. Andante assai

II. Allegro brusco

III. Andante

IV. Allegrissimo - Andante assai, come prima 


Henryk Wieniawski (1835-1880) - Fantaisie brillante sur Faust de Gounod, Op.20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1835-1880) – 구노의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 Op.20

 




이번 임지영 X 레미 제니에 듀오 리사이틀의 첫 곡은 모리스 라벨의 '고귀하고 감상적인 왈츠'였다. 이번 듀오 리사이틀의 시작을 레미 제니에의 솔로로 장식한 것이다. 무대 위로 나서는 레미 제니에는 라벨의 작품 제목처럼 우아해보였다. 라벨의 '고귀하고 감상적인 왈츠'는 슈베르트의 왈츠를 모티브로 해 왈츠의 전통을 이으려고 한 라벨의 시도 중 하나였다. 라 발스만 하더라도 비엔나 왈츠를 자신의 방식대로 재해석하는 동시에 왈츠의 계보를 이으려고 했던 노력이 아닌가. 그래서 우아하고 아름다운 동시에 변화무쌍하다.


총 8곡의 무곡이 들어있는 라벨의 작품이 첫 곡으로 선곡된 것은, 이 다채롭고도 신비로우면서 전통적인 면도 내포하고 있는 라벨의 피아니즘을 통해 레미 제니에의 정체성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무대를 통해 레미 제니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관객들에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추구하는 연주의 방향성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마치 라벨이 되어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시작부터 행진곡처럼 당당하고 유려하게 포문을 연 레미 제니에는 변화무쌍한 라벨의 여덟곡을 다양한 얼굴로 보여주었다. 레미 제니에의 빠르고 경쾌한 터치, 유연한 완급조절 속에 녹아있는 깊은 뉘앙스는 라벨의 왈츠를 더욱 우아하고 감상적이게 만들어주었다. 그는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연주의 측면에서도 뛰어났지만, 느린 가운데 맥락을 풍부하게 만들며 여백의 미를 주는 데에도 능수능란했다. 동적인 악상과 정적인 악상을 넘나들며 춤곡의 아름다움을 한없이 선보여준 레미 제니에의 연주는 아주 즐거웠다. 에필로그에서 주는 마지막 여운까지,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마음까지 풍요롭게 만드는 왈츠여서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작품번호 18이었다. 바로 이 곡부터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합류했다. 함께 무대 위로 나서는 두 비르투오소의 모습에 듀오로서의 첫 작품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이 어떻게 연주될 지 너무나 기대가 됐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을 때 작곡되었던 터라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극대화된 작품인 만큼, 두 사람의 호흡 속에서 피어날 유려한 악상이 기다려졌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1악장에서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게 레미 제니에의 피아노 사이를 파고 들었다. 임지영이 그려내는 바이올린의 음색은 바이올린만이 가진 선명한 아름다움과 비올라가 가질 법한 묵직함이 동시에 담겨 있어, 그 어느 순간에도 그의 강렬한 존재감이 돋보였다. 동시에 레미 제니에와 호흡을 맞추면서도 임지영이 곡을 잘 이끌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2악장에서 보여준 고요한 바이올린 패시지는 임지영이 가진 섬세한 터치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즉흥적인 바이올린의 대목에서도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의 손끝은 확실히 빛났다.


그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에서 임지영의 무대 장악력이 가장 잘 드러난 악장은 단언컨대 3악장이었다. 두 솔리스트의 비르투오시티가 가장 극대화되는 이 악장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자신이 가진 강렬함이 얼마나 압도적이고 눈부신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끝없이 표현해주는 임지영에게서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는 연주였다. 분명 레미 제니에도 열심히 자신의 몫을 해주었지만 임지영은 견줄 데 없는 비범함으로 관객을 압도해버렸다. 그 눈부신 연주 끝에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1 (ⓒHo Chang).jpg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Ho Chang



2부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으로 다시금 시작했다. 진지하고 어두운 동시에 많은 기교가 담겨 있는 이 작품은 프로코피에프가 존경했던 헨델의 바이올린 소나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바로크 시대의 느린-빠른-느린-빠른 악장 구성을 그대로 따 4악장으로 구성된 것 역시 헨델의 영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무대에서 연주되는 작품들 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이 작품을 임지영과 레미 제니에는 아주 인상적이게 들려주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을 앞두고 들었던 작품 중에서 프로코피에프의 작품에 가장 애착이 덜 갔는데, 현장에서 두 사람의 연주로 들으니 오히려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되었다.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녹아들어 있는 프로코피에프의 놀라운 기교들. 바이올린과 피아노 모두 분전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처럼 여러 기교가 얽혀드는 패시지에서는 치열해진다. 그래서인지 1부의 작품들보다도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과 피아니스트 레미 제니에의 뛰어난 기교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에너지 역시도 남달랐다. 특히 2악장에서 드러나는, 다듬어지지 않아 날카롭게 느껴지는 두 악기의 에너지를 임지영과 레미 제니에는 아주 선명하게 전달해주었다.


그렇지만 프로코피에프의 작품은 기교에만 국한되지 않고 슈트라우스의 작품에서보다 더 많은 뉘앙스와 맥락을 담아 작곡되었다. 그래서 프로코피에프의 작품에서는 레미 제니에의 강점도 아주 잘 살아났다. 3악장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호흡은 완전한 앙상블 그 자체였고, 네 악장 전반에 걸쳐 그들이 선보인 앙상블은 테크닉과 뉘앙스의 양면 모두가 풍부한 연주였다. 슈트라우스의 작품에서보다도 더욱 조화롭게 어우러드는 그들의 호흡에, 개인적으로 잘 와닿지 않던 프로코피에프의 작품을 좀 더 소화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서 만족한 연주였다.


*


이번 듀오 리사이틀의 피날레를 아름답게 장식해 준 마지막 작품은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의 구노의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이었다. 이번 무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가 실제로 사용했던 스트라디바리의 사세르노로 연주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번 마지막 곡의 선곡이 더욱 뜻깊게 와닿을 것이다. 대미를 장식할 작품을 선곡하는 게 아티스트의 입장에서도 얼마나 고민되는 문제였을까. 하지만 임지영은 자신있게 비에니아프스키의 파우스트 환상곡을 선곡함으로써, 자신이 비르투오소 비에니아프스키를 잇는 동시에 바이올린의 확장성을 보여준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의 의도가 정말 그러했다면, 정말 탁월한 선곡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앞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이나 프로코피에프의 작품도 좋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비에니아프스키의 작품에서 다시 한 번 압도적인 순간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 환상곡을 연주한 임지영은 슈트라우스의 작품에서 두드러졌던 자신의 강렬함과 압도적인 존재감,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에서 보여주었던 밀도 있는 맥락과 눈부신 기교를 담아 아름다운 악상을 연속적으로 펼쳐냈다.


압도적인 카덴차, 서정적인 아리아, 악마 같은 노래, 2중창 세레나데 그리고 피날레에 이르기까지 임지영은 악상이 변화하는 순간 빠르게 새로운 세계를 펼치며 관객들을 파우스트 속으로 이끌었다.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관객들과 호흡하며 종횡무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자신이 비르투오소라는 것을, 잊을 수 없는 연주를 통해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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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 제니에 ⓒJean Baptiste Millot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연주를 들었기에, 임지영과 레미 제니에의 손끝이 멈춘 순간 객석에서 브라보를 연호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들이 보여준 호흡과 인상적인 연주에 어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열렬한 환호에 맞춰, 임지영과 레미 제니에는 총 네 곡의 앵콜곡을 연주해주었다.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프로코피에프의 행진곡(유튜브에서 하이페츠Heifetz의 연주를 찾아볼 수 있다), 크라이슬러의 빈 기상곡(Caprice viennois) 그리고 엘가의 사랑의 인사까지 들려주었다. 앵콜까지 풍성하고 아름다운 무대였다.


이렇게 연주자들이 세심하게 안배해서 들려주는 앵콜 무대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위치한 C블럭에서 연주자의 앵콜무대를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C블럭에서 앞쪽에 자리가 위치했던지라, C블럭 5열 가운데에서 촬영하는 성인과 C블럭 3열의 오른쪽에 위치한 좌석에서 촬영하는 어린이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앵콜이 네 곡이나 이어졌던 만큼, 한 앵콜곡이 끝날 때마다 하우스 어셔가 C블럭으로 달려와서 촬영하지 말라는 사인을 주었는데, 그나마 어린이는 첫 곡 이후에 촬영을 더 하지 않는 듯해보였지만 C블럭 5열에 앉은 사람은 끝까지 촬영하는 것이 정말 보기 안좋았다.


연주를 듣는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알지만, 이렇게 뜨거운 연주를 들려주는 연주자들을 위하는 것은 그들의 연주를 몰래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들의 연주회를 찾고 그들의 음반을 듣는 것일 테다. 젊은 두 비르투오소를 진정으로 응원하는 관객들이라면, 몰래 녹화하는 행위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지 말고 연주자들을 적법한 방법으로 응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후에 다시금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과 피아니스트 레미 제니에를 만나는 순간이 온다면, 분명 그들은 더욱 더 깊어진 음악성으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더욱 눈부신 그들의 음악세계를 만날 미래의 그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할 관객들도, 이 뛰어난 두 비르투오소처럼 올바른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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