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분노의 미시사 - 연극 '화가난다 이거예요'

글 입력 2022.07.1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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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 오른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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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면서 분노라는 감정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우리는 생각하고 이해하기 전에 감정에 먼저 휩쓸리곤 한다. 분노 그 자체보다는 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을 생각하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연극 <화가난다 이거예요>는 분노를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화가난다 이거예요>의 연출 정혜정은 돌이 되었다.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화가 난 이유를 추적하며 이야기가 전개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연극은 분노에 대한 19개의 짤막한 에피소드를 나열한다. 그럼으로써 1시간 내내 분노라는 감정을 분노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각하게끔 만든다.

 

분노를 다룬다고 해서 무작정 심각하거나 무겁지는 않다. 분노는 왜 발생하며 분노가 어떤 신체적 변화를 동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영상과 ppt로 만들어진 발표자료를 함께 보는 등 극은 아기자기하게 시작된다. 진상 손님을 마주할 때, 지하철에서 옆 사람의 몸이 자꾸 내 몸에 닿을 때와 같이 누구나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법한 분노에서 시작해 말하는 것만으로도 오랜 고민과 굳은 다짐이 필요한 분노로까지 나아간다.

 

 

 

"이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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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자고 나면 그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 분노, 운동을 하거나 맛있는 걸 먹으면 털어버릴 수 있는 분노가 있는 반면, 어떤 분노는 약 없이 잠들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괴롭히며 오래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동료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했던 경험, 죄질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형량을 받은 n번방 사건의 주동자들, 도와주려 했던 상대에게 오히려 스토킹을 당했던 일.

 

 

이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것은 혜정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혜정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입니다.

연극은 연극일 뿐입니다.

 

 

배우들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며 연극은 자기고백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 배우들의 대사("이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가 맴도는 가운데 무대와 무대 바깥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관객은 갑자기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된다.

 

연극은 기본적으로 무대 위 배우의 몸짓과 대사로 관객과 소통을 한다. 하지만 이 극에서 다루는 어떤 분노의 순간은 그런 방식으로 재현해내기가 어렵다.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이 동원된다. 예를 들어 어떤 경험은 실시간으로 배우가 노트북에 타자를 치고, 그 내용이 스크린에 나오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또 하나의 표현 방식은 음악이다. 극의 절정에 이르면 세 배우가 함께 나와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려다가, 참을 수 없는 걸 참으려다가" 분노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사적인 이야기일 뿐이라며 눌러 담던 것들을 불특정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털어놓기 시작할 때, 관객은 그 자체로 어떤 해소의 효과가 생긴다는 걸 깨닫는다. 극중 '분노의 미시사'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이들의 분노가 미시사로만 읽히지는 않는 이유다. 공공의 장소인 극장에서 발화된 이상 그것들은 사회적인 맥락을 갖게 된다.

 

 

 

분노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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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혜정이 돌이 된 구체적인 이유가 나오지는 않는다. 용암 같던 분노가 굳어 이제는 돌이 되었다는 설명이 이어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심정을 꽤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서 해소되지 않는 분노를 안고 사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얘기하다가 싸우게 될 것 같은 주제를 피하고, 안 좋은 뉴스는 외면해버렸던 경험이 떠오른다. 펄펄 끓던 용암이 돌이 된 것은 에너지가 다 사라져버렸다는 뜻일까.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돌이 되는 수밖에 없는 걸까.


그렇지만 한편으로 돌을 분노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승화된 상태로 볼 수도 있다. 용암이 굳어 돌이 된 것처럼, 돌은 돌인 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미래에 또 다른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무언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돌로 시작한 연극은 '몸털기 춤'으로 마무리된다. 돌이라는, 더 이상 변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정적인 존재가 자신에게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다른 무언가가 되려는 걸 암시하기로 하듯이.

 

분노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던 연극이 마지막에 이르러 관객에게 묻는 건 우리가 이 분노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극장을 빠져나오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할 때, 돌은 돌에 머물지 않는다. 미래는 여기에서 다시 시작된다.

 

 

*사진 제공: 페미니즘 연극제 ⓒ 이지수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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