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패션의 디테일을 사랑하는 사람 -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이보라

글 입력 2022.07.1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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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작가의 평소 작업물

 

 

강렬한 색감과 화려한 패턴, 평면에 그려져 있음에도 손에 잡힐 것 같은 질감.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이보라의 작업을 처음 봤을 때 받은 느낌이었다. 평상시 패션을 볼 때 패션 그 자체보다 옷을 입은 사람의 영향을 받을 때가 많다면, 패션 일러스트를 볼 때면 좀 더 패션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주름, 단추, 주머니, 카라, 소매끝 등 옷의 개성을 결정하는 디테일을 보고 있으면 새삼 패션이 정교하고 조화로운 미감의 총체라는 걸 실감한다.

 

본래 패션 일러스트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옷을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전 종이에 그려보는 스케치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패션 잡지, 패션 브랜드, 백화점, 코스메틱 브랜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된다.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이보라 작가도 10여 년간 패션이 들어가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었다. 최근에는 패션 컬러링북 『모던걸』을 내기도 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패션 일러스트는 화려해 보이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실제로는 수많은 관찰과 습작이 쌓인 결과다. 인체 구조를 잘 파악하고 옷의 소재와 작은 부분 하나까지 섬세하게 포착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7월 5일 오후, 이보라 작가를 만나 패션 일러스트의 세계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의 세계를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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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이보라

 

 

반갑습니다. 간략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패션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는 이보라입니다. 어느덧 활동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어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는 어떤 일을 하나요? 조금 막연한데, 하시는 일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일을 시작하시게 된 건지도 궁금해요.


의학 쪽 그림을 주로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있고, 스포츠 쪽 그림을 주로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듯이,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는 옷을 비롯한 패션을 주로 그려요. 패션 매거진, 화장품 패키지 및 백화점 광고, 책 일러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해 왔습니다. 최근에 맡은 일을 소개하자면, 백화점과 콜라보 작업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러스트레이터와 비슷한데 패션 분야에서 특히 많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단순해요.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았는데, 대학생 때 ‘나일론’이라는 잡지의 애독자 엽서에 그림을 그려서 보냈다가 같이 일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걸 시작으로 계속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디자인 전공자라 당연히 디자인 회사에 취직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일이 이어져 프리랜서가 될 줄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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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이보라 작가가 '몽클레어'와 진행한 작업 중 일부

 

 

직업 특성상 당연히 패션에 관심이 많으실 것 같은데, 일상에서 입기 좋아하는 옷과 그리기 좋아하는 옷은 다를 것 같아요. 각각 선호하는 스타일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확실히 그리기에 좋은 옷이 따로 있어요. 주로 디테일이 특이하거나 색감이 화려한 옷이 그래요. 시즌마다 브랜드 컬렉션 패션쇼를 보는데 장식적인 부분이 많거나 소재, 실루엣 등이 특이하면 그리고 싶어지더라고요. 반면 일상에서는 너무 과한 옷보다는 깔끔한 옷을 선호합니다. 


평소 작업은 어떤 도구로 하시나요? 


원래는 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채색만 디지털로 했는데, 아이패드를 쓰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스케치부터 마무리까지 아이패드로만 작업하는 편이에요.


인스타그램에 올리신 작업물을 보면 옷은 바뀌는데 옷을 입은 모델의 얼굴은 계속 같아 보이더라고요.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 다른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는 늘 그리는 모델이 있고 아예 이름까지 지어줬다는데, 혹시 작가님이 그리시는 사람에게도 정해진 이름과 캐릭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제가 의도적으로 같은 얼굴을 그리는 건 아니에요. (웃음) 저는 특별히 정해둔 얼굴 없이 매번 다른 얼굴을 그린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거기서 일관성을 발견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얼굴을 그리게 되나 봐요. 참 신기한 게, 제가 하는 패션 일러스트 수업에서 수강생분들께 얼굴 그리는 틀을 똑같이 알려주는데, 막상 결과물을 보면 똑같은 얼굴을 그린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동글동글한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 턱이 강조된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 등 각자의 취향이 그림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

 

 

 

100년 전,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모던걸 패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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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컬러링북 『모던걸』을 내셨는데요, 이 책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내시게 된 책인가요?

 

제가 1920~30년대 여성복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레트로, 빈티지 분위기를 좋아해요. 평소 그리는 그림에 영향을 받을 만큼요. 특히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의상들을 좋아하는데, ‘개츠비룩’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저 말고도 그 시대 패션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모던걸』은 그런 분들과 함께 그 시대 패션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직접 채색도 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탄생한 책이에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포착한 1920~30년대 패션의 특징을 몇 가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저도 패션 전공은 아닌지라 그림을 그리며 이것저것 공부를 했어요. (웃음) 이 시대는 대량생산/대량소비가 시작되고 통신수단과 교통수단이 발달하며 ‘포효하는 1920년대’라고 불릴 만큼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였기에 당연히 패션도 큰 변화를 겪었다고 해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가르손느 스타일’과 ‘플래퍼 스타일’을 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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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손느 스타일은 ‘소년과 같은 여성’이라는 의미로 자연스러운 어깨선과 아코디언 주름 스커트, 코르셋 없이 종아리 중간까지 오는 길이의 튜블러형 드레스, 스트레이트 실루엣 등으로 대표되어요. 플래퍼 스타일은 자유를 갈망하는 젊은 말괄량이 스타일로, 짧은 스커트와 바지, 헤어밴드, 단발머리, 슈미즈 드레스 등을 떠올리면 될 것 같아요.

 

이 시대의 여성복은 전통적인 여성복에 비해 활동성이 좋아졌다는 게 특징이에요. 대표적인 디자이너가 코코 샤넬인데 단순성과 기능성, 실용성에 기초를 둔 우아한 스타일을 추구했거든요. 재킷에 주머니를 달고, 단추와 단추구멍을 만든 걸로도 유명하지요. 남성이나 입을 법한 수트와 승마재킷, 바지 등의 아이템을 고안한 걸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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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링북 『모던걸』의 한 페이지

 

 

컬러링북을 보면 그림이 정말 섬세한데요, 다른 컬러링북과 구별되는 『모던걸』만의 특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패션 컬러링북이라고 해서 패션 요소만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계절감을 나타내는 식물이나 나비 같은 자연물을 곳곳에 넣었어요. 그 시대에 사용되던 소품도 많이 담았고요. 편집자님의 제안으로 각 장의 그림마다 제목을 달았고, 색칠하는 게 너무 막연하실까 봐 제가 채색한 예시를 왼쪽 페이지에 배치하기도 했어요. 섬세한 그림인 만큼 꼼꼼히 살펴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는 컬러링북을 끝까지 색칠해본 적이 없어요. 사다 놓고 조금 칠하다가 제 마음에 차지 않아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요, 컬러링북을 활용하는 팁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있는데, 망칠까 봐 아예 색칠을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너무 열심히 안 했으면 좋겠어요. 이 당시 패션의 특징이 이전 시대에 비해 자유분방하다는 거잖아요. 그러니 색칠하실 때도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재미있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취미잖아요. 꼭 모든 면의 색을 칠하지 않아도 돼요. 포인트 색을 정해서 그걸로 립스틱이나 블러셔를 바른다는 느낌으로 부분 채색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걸 잘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좋아해야 꾸준히 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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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 얘기로 돌아가서,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의 직업병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책, 영화, 화보, 무엇을 보건 예쁜 옷이 있으면 눈여겨보고 스크랩해둬요. 시즌마다 컬렉션 패션쇼도 챙겨보고요. 꼭 옷이 아니더라도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색감이나 색 조합을 발견하면 나중에 옷을 그릴 때 참고하려고 메모해두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작업 중 기억에 남는 걸 하나 소개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화장품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겟잇뷰티 영상 일러스트 작업을 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각 회차마다 새로운 주제로 작업하는 게 재미있었고, 결과물도 예쁘게 잘 나와서 좋았어요. 최근 작업 중에는 작년에 백화점의 한 패딩 브랜드에서 고객 분들 그림을 그려드리는 행사에 참여했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집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얼굴을 그렸던 시간이라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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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잇뷰티 영상 일러스트 작업 중 일부

 

 

10년 가까이 일을 해오시며 슬럼프에 빠질 때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오셨나요?

 

꽤 일을 일찍 시작한 편인데 처음에는 쉬는 시간이나 주말 휴일도 따로 없이 일을 했어요. 쉬는 방법을 몰랐고, 쉴 때도 그림을 그리며 쉬었어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이 되게 안 그려지더라고요. 그때 슬럼프구나 했어요. 그 이후로 지금은 주말에는 웬만하면 쉬려고 합니다. 저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싫어지면 안 되니까요. 슬럼프에 특별한 방법이 있다기보다는 적당히 쉬면서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패션 일러스트 수업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분들께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선배로서 한 마디를 건넨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꾼다면 당연히 패션을 좋아하시겠지만, 그중에서도 아동복, 남성복 등 어떤 분야를 특히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걸 잘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좋아해야 꾸준히 할 수 있거든요. 저는 열심히 하는 사람 못 이긴다는 말을 믿어요. 실제 수강생분들을 보면서 실감하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걸 찾아서 그 분야의 그림을 많이 그려보는 게 단순하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요.

 

앞으로 작가님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 자리에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어떤 예술작품이든 결국 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지금 패션 일러스트 수업을 하는 중인데, 10월 말쯤 그 결과물을 가지고 수강생들과 함께 전시를 열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다른 외주 작업도 부지런히 해나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계획이라기보다 조금 멀리 보고 하고 싶은 걸 말하자면, 저는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나이가 들어 그림책을 보니까 어른의 감성을 자극하는 심오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언제 할지는 모르지만 그림책을 만든다면 전형적인 그림책이 아니라 저만이 할 수 있는 걸 그리고 싶어요.

 

 

*사진 제공: 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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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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