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은 때론 사람을 구원하고, 절망하게 한다" [영화]

기억과 망각에 대한 영화 시리즈 (1) - 아비정전
글 입력 2022.07.0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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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뭔가를 묻기 좋은 계절이다. (사람 말고)

 

모든 것이 너무 찬란하고 변화무쌍한 계절이라 하나에 매몰되기 어려우니까. 동시에 너무 아름다운 것들 사이에서 미화된 기억이 영원히 몸에 새겨진다는 부작용도 있다. 여름에는 그래서 주로 기억과 망각에 대한 영화를 찾는다. 영원히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잊고 새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중 여름마다 꺼내보고 싶은 장면들이 있는 영화를 소개한다.

 

(*아래에는 영화 주요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때론 사람을 구원하고, 절망하게 한다”


장마철에 보세요. 텁텁하고 꿉꿉한 공기를 피해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무릎을 모으고 보면 좋아요.

 

예전에 누군가에게 그렇게 추천받은 영화다. 개인적으로 왕가위 영화의 전개가 불친절하다고 생각해 중경삼림을 마지막으로 그의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긴 장마 기간을 자랑했던 재작년 문득 누군가의 추천이 생각나 아비정전을 처음 봤다.


아비정전은 흥행 실패라는 안타까운 속사정을 달고서도 꾸준히 사랑받았다. 런닝 차림으로 달달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서 맘보를 추는 장국영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려서? 애처롭게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장만옥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둘의 사랑은 운명적이고 애처롭게 그려진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아비의 사랑에는 관심이 없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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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원을 순간처럼 포장해 선물해놓고, 순간만 사랑해 준 이 남자의 사랑이 우습다. 제 상처만 아픈 줄 아는 위태로운 남자. 사랑을 줄 줄 모르는 것보다 받을 줄 모르는 잘못이 더 크다. 영화를 관통하는 메타포인 발 없는 새도 마찬가지다.

 

날아다니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쉬고, 평생에 꼭 한 번 땅에 내려앉는 날은 생을 마감하는 날이라는 새.

 

새의 사정은 그렇다만, 당신의 사정도 그런지 묻고 싶었다. 돌아보지 않은 것은 당신이 아닌가. 고개를 조금만 비틀면 아비가 지나친 정착지가 보인다. 날아본 용기도 없으면서 자신이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라고 착각하는 점이 안타깝다면 안타까운 점일 것이다.


세 번의 인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첫 번째 인연은 그를 길러준 엄마, 두 번째는 수리진, 그리고 마지막을 루루가 채운다. 세 명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비를 사랑했고 적어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그리고 실컷 사랑한 후에 이별을 맞이하는 방식도 다 다르다. 정면으로 자신의 감정을 마주 보거나, 맞서서 이해하려 하거나, 혹은 피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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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대부분이 아비와 수리진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내 마음에 남은 것은 루루였다. 아비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걸레질을 하다 땀에 젖은 얼굴로 당신을 먹여살리겠다고 말하는 루루의 모습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다짐과도 같은 그 담담하고 당찬 사랑 고백에는 미래에 대한 거창한 계획도 없다. 가장 힘이 센 감정은 그녀에게는 사랑이다. 수리진과 아비의 양어머니를 찾아가 이미 떠난 사랑을 확인하고 아픔을 대면해 보려는 노력은 기특하기까지 하다. 그녀의 절규와 눈물이 이토록 마음에 남은 이유는 아마도 내가 하는 사랑의 방식을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뒷모습만 보여준 사랑이 얼마나 오래 기억될지는 모르겠다. 수리진은 표가 다 매진된 매표소를 청소하고 있을 테고, 루루는 어딘가에서 발랄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아비가 없어도 그들의 일상은 계속된다.

 

하지만 적어도 여름 그맘때가 되면 꼭 진하게 생각날 사랑이겠다는 생각은 든다. 잊지 못할 사랑을 그리며 사는 마음은 어떨지, 가끔은 궁금해진다.

 

장마철, 숨이 턱 막히는 공기에서 흙냄새가 난다. 달달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서 땀에 젖은 사랑의 몸에 얼굴을 묻는 간절하고 솔직한 사랑이 부러운 어느 날.

 

사람의 구원을 기다리던 사람의 텅 빈 눈과, 사람에 의한 절망으로 울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춰보고 싶은 계절이 온다. 그런 날이면 나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아비정전을 또 보게 될 것이다.


“난 순간이란 정말 짧은 시간일 줄 알았는데 때로는 오랜 시간이 될 수도 있더군요.” (수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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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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