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 순간을 그리고 싶다 - 산책가의 노래

아름다운 것을 그리며 보내는 슬픔
글 입력 2022.07.0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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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가의 노래>는 에세이 시집이다. 이 책은 작가의 세심하고 귀여운 일러스트와 짤막한 산문시로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책이었고 '혼자서 거닐다 마주친 작고 소중한 것들이 건네는 위로'라는 문구처럼 산책하며 느꼈던 작가의 수많은 감정을 그림과 함께 기록한 에세이다.

 

자신에게 드리워진 슬픔을 이겨내 보고자 산책이라는 방법을 선택했고, 호숫가를 거닐며 만난 하늘과 달, 구름, 별, 노을, 햇살, 새, 고양이, 벚꽃, 목련, 아빠·엄마와 어린아이, 노부부, 연인들 등과 같은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일상이 그녀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작가가 마주한 소소한 풍광은 그들로 하여금 작가의 마음속에 어느새 위안이라는 감정으로 안착하며 그녀가 마주한 다양한 풍경들을 세심하고 배려있게 관찰하며 그림과 글로 기록을 해나간다.

 

생각해보면 갓 사회인이 되었을 무렵, 서울숲 근처에 살고 있던 나는 부리나케 퇴근한 뒤, 자전거를 끌고 그곳을 자주 찾았던 기억이 있다. 신입으로서의 긴장감과 떨림, 그날 하루에 있었던  크고 작은 실수를 곱씹으며 혼자 괴로워하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지라는 자기 위로와 함께 열심히 열심히 내달렸다.

 

나 역시 여름밤, 해 질 녘의 서울숲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린 기록이지만, 한 때 “싸이월드”의 일기장에 기록해 놓기도 했던 여름밤이 시작될 무렵의 알싸한 풀내음이 나는 달큰한 여름밤 공기와 늘 함께 즐겨들었던 언니네 이발관의 “아름다운 것”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그때의 내가 나 자신을 위로하던 방법이다. 한두 시간을 줄 이어폰을 낀 채 좋아하는 음악과 자전거와 함께 하다 보면 그날 하루 내 마음에 묵었던 속상했던 마음의 찌꺼기를 없앨 수 있었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때 스쳐 가며 보았던 다양한 풍광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여름의 서울숲은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물놀이 장소이다. 모든 것들이 푸르른 그곳에서 아이들은 분수대를 에워싸며 물에 흠뻑 젖으면서도 마냥 깔깔거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의 가족들 역시 행복한 표정으로 해맑은 웃음을 짓는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나역시 함께 웃다 보면 어느새 나의 고민은 사라져버린다.

 

어디에선가 본듯한 글귀도 생각난다. 어느 부족은 자신의 힘듦과 속상한 감정을 내려놓기 위해 몇 시간이고 길을 나선다고 한다. 끝없이 걷다가 자신이 갔던 그 길을 다시 되돌아오는 동안 머리와 가슴을 어지럽혔던 생각들은 말끔히 정리된다고 했다. 지금의 답답한 상황이 시간이 흘러 한낱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걷는 행위의 산책으로 말미암아 그 사실을 더욱 빨리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걷는 것만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이롭게 하는 것은 없는 듯하다. 적당한 산책은 몸의 열을 발생시켜 땀으로 배출하여 우리 몸의 노폐물이 걸러지도록 하고, 어지럽던 머릿속은 적당한 산소공급으로 자연스레 두통이 잦아들게 하고 한곳에 집요하리만치 몰두했던 생각의 고리를 끊도록 휴식을 마련해준다.

 

작가의 마음을 어지럽혔던 여름날의 슬픔은 산책을 통한 세 번의 여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슬픔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곁을 떠나버린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마음은 사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어떠한 누구도 섣불리 위로할 수 없다. 좋은 마음으로 위로한 들, 그것이 오롯이 전달된다면 정말 다행이겠지만, 오히려 역효과로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겐 더욱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당사자가 스스로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불현듯 떠나버린 사랑하는 이를 감당할 수 없어 무작정 한여름 뜨거운 햇볕 아래 걷기 시작한 작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을 때, 우연히 자신의 마음을 위로해줄 작고 소중한 것들을 만났을 때의 그녀의 마음 또한 얼마나 울컥했을까. 어쩌면 그 시간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모르고 지나쳤을 지도 모를 작디작은 수많은 일상들을 하나하나 마주했을 때의 그 감동 또한 그녀의 그림과 글들을 통해 떠올리게 되었다.


가끔 가슴을 시큰하게 하거나 감동을 주는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내겐 “엄마, 아빠, 가족, 여름, 하늘, 여름밤, 달, 밤 공기, 산책”이 그러하다. 나는 가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저 따뜻한 위안을 얻는다. 산책을 통해 큰 위로를 받고 마음의 슬픔을 떠나보낸 그녀가 이제는 좀 더 행복하길 바란다. 소중한 무언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산책이라는 위로의 방법을 찾은 그녀를 끊임없이 응원하고 싶다.

 

 

<빛>

물가 계단에 앉아 호수에서 반짝이는 햇빛을 바라보았다. 빛이 물결을 타고 흐르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수천수만 개의 빛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그곳에는 삶과 죽음이 뒤섞여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지나가고, 한 아저씨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운동 기구를 타고, 젊은 엄마가 유모차를 밀며 통화를 하고, 호수 주위로 띄엄띄엄 둘러앉은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한가로이 오후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여기 내가 있다.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죽는 이곳에서

저 빛처럼 아름답게 반짝이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에 여운을 남기고 싶다 생각하며 사라지는 빛을 마음에 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P22



<여자의 마음>  

텅 빈 공원을 걷자니 누군가를 생각하고 싶어졌다.


그립기 때문에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립고 싶기 때문에 그리워하는

여자의 마음을 바라보았다. 

P58

 


<꽃이 다시 피어나기 위해서는> 

꽃이 다시 피어나기 위해서는

밝은 빛과 따뜻한 바람,

맑은 물방울과 좋은 흙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피어난 꽃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져 주는

나비와 벌 같은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P64

 


<비에 젖은 장마> 

다 시들어 가는 장미꽃이 우두커니 서서

비를 맞으며 흔들리고 있다.


마치 이 비를 흠뻑 맞고 나면

다시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듯이.


혹은 조금은 시들었다 할지라도

비에 젖어 흔들리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여

지나가는 행인의 눈길을

한 번이라도 더 받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일지도.

P101



<숲과 나> 

숲은 나를 치유해 주네


숲은 나와 숨 쉬고

숲은 나를 쓰다듬네


작은 새가 함께 노래 부르고

하얀 나비가 함께 춤추고

청설모가 손을 흔들어 주네


짙은 초록 잎이 흔들리며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네


숲은 나와 함께 울고 있다네

P222



<꽃길> 

너무 아름다워 바라보다 울고 말았네

P226



<안녕 여름>  

하얀 구름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작아지는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나비 한 마리가 비틀비틀 날아가고

개 두마리를 산책시키는 아주머니가 지나가자,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여름이 손을 흔들고는 뒤돌아 길을 건넌다.

P238

 

[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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