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이 시국 교환학생 일기 10

글 입력 2022.07.0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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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인생 여행지라 말했던 포르투갈.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많이 기대했던 것 같다. 포르투갈은 비행기를 타려면 pcr 확인서를 요구하는 것 같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비야에서 버스를 타고 리스본으로 이동했다.

 

세비야에서 리스본은 약 7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에서 2시간 더 걸리는 거니까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5시간이 지나자 슬슬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7시간을 가는 동안 버스는 딱 한 번만 휴게소에 멈췄고 버스 안에 있는 간이 화장실 문이 고장 나 버스가 멈출 때마다 쿵쿵 부딪혀서 잠도 자지 못했다.


결국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면서 자는데 중간에 노래가 멈추길래 곧 연결되겠거니 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면서 국경을 넘어서 로밍 데이터가 차단돼서 노래가 꺼진 걸 알게 됐다. 로밍 데이터가 포함된 스페인 유심을 사서 연결이 차단을 풀면 바로 연결이 돼야 하는데 계속 서비스 지역이 아니라는 말이 떠서 전원을 껐다 켰다. 휴대폰을 껐다 켤 일이 없어서 스페인 유심은 전원을 껐다 키면 유심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비밀번호를 세 번 틀리면 가까운 유심 대리점에 가서 비밀번호를 풀어야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심 비밀번호도 바꿀 수 있었다.) 두 번의 기회를 날리고 마지막 기회만 남자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그냥 유심을 뺐다가 다시 끼우자 싶어 빼려고 하는데 생각해 보니 유심을 빼는 바늘 같은 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혹시 날카로운 물건이 있냐고 물어보니 자기 귀걸이 침을 쓰라고 흔쾌히 귀걸이를 빼줬다. 덕분에 비밀번호를 풀 수 있었고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착한 리스본. 포르투갈 여행의 시작은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리스본보다 포르토를 더 좋다고 해서 리스본은 솔직히 별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내가 포르투갈 여행을 하는 동안 포르토 거리 대부분이 공사 중이어서 였을까 기대했던 포르토는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엄청난 오르막과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갈매기에도 건물과 풍경은 예뻤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그 모든 기억을 지웠다. 일주일 반 동안 혼자 여행하면서 인종차별을 당한 기억이 거의 없는데 포르토에서 친구들과 만나서 다닌 이틀 동안 온갖 인종차별을 다 겪었다. 노천카페 앞을 지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꺾어서 우리가 지나갈 때까지 쳐다봤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건 도심과 조금 떨어진 한식당에 가는 길에 초등학교 3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애가 처음에 우리를 보고서 웃으며 챠오라고 인사를 하길래 그냥 웃어주고 말았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 니하오라고 외치며 전형적인 인종차별을 하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무시하고 계속 가던 길을 하니 욕을 했다.

 

여기까지는 그냥 어린애니까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 아이의 부모를 비롯해 어른 몇 명이 있었다. 당연히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고 아이를 다그칠 줄 알았다. 그게 상식이니까. 그런데 부모와 어른들이 혼내기는커녕 그런 모습을 보며 웃고 있었다. 화가 남과 동시에 너무 충격적이었다. 지금이 21세기가 맞나? 그동안 미디어에서 떠들어 대던 다양화니 세계화니 그런 건 다 거짓말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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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받았던 잔돈. 받자마자 사진부터 찍었다.

 

 

길거리에서만 인종차별을 당한 것도 아니었다. 성수기라 그런지 예약과 약속의 나라인 스페인보다 더 식당 예약하기가 힘들었던 포르투갈에서 밥 한 끼 먹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날은 푹푹 찌고 배는 고픈데 이왕 먹는 거 맛있는 걸 먹고 싶어서 한참 찾다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것처럼 보이는 한 식당을 찾았다. 가게 자체도 협소하고 저녁 시간대라 거절당할 줄 알았는데 마침 식사를 끝낸 듯한 자리가 있어 운 좋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는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현금밖에 받지 않는 이 식당에서 우리는 약 45유로치의 음식을 먹었고 내가 현금 50유로를 냈다. 처음부터 퉁명스럽게 접시를 던지듯이 줬던 직원이 잔돈을 가지고 왔다. 잔돈은 5유로 밖에 안 나왔는데 직원은 한 주먹을 쥐고 우리 테이블에 왔다. 그러더니 잔돈을 패대기치듯 흩뿌렸는데,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온갖 센트란 센트를 다 가지고 와서 5유로를 맞춰준 것이다. 이렇게 주는 게 더 어려웠을 텐데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의 예시 아닐까. 참고 참았던 게 그때 다 터져서 직원이 뒤를 돌아 주방으로 갈 때 그냥 대놓고 화났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으니 직원이 다시 돌아왔다.

 

아직도 그 직원이 마지못해 물어보던 말이 기억난다. Everything is okay? 평소 같았으면 기분이 나쁘더라도 그냥 괜찮다고 하고 말았을 텐데 오늘은 대놓고 니가 잔돈 이렇게 줬는데 뭐가 오케이냐고 말했다. 그리고 1유로 동전 없냐 물어보니 그러니 그 직원은 뻔뻔하게 지금 1유로 동전이 다 떨어졌다 했다. 현금만 받는 곳에서 이게 말이 되는 변명이라 생각하는 걸까. 그러더니 봐봐 이렇게 해서 1유로, 이렇게 1유로 해서 5유로야라고 어린 아이들 가르치듯 말했다. 말해도 못 알아듣겠구나 싶어 그냥 가게를 나왔다. 인터넷에 리뷰 같은 걸 잘 안 쓰는데 그날은 가게를 나오자마자 사진과 함께 절대 가지 말라고 리뷰를 남겼다. 얼마 전에 리뷰에 가게가 다시 무슨 답변을 남겼던데 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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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루이스 1세 다리에서 찍은 야경. 인종차별을 감내할 만큼 야경이 가치 있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겠다.

 

 

포르토 야경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보기 위해 다리 건너편 언덕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다리는 꽤 높았고 다리를 건너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를 동물원 안 원숭이처럼 쳐다보던 그 시선들. 이 정도까지는 이제 도가 터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

 

언덕에 도착하니 대부분 술에 취해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곤니치와부터 시작해 자기들이 아는 온갖 짤막한 단어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특히 한 무리는 우리가 무시했다는 게 짜증이 났는지 손가락으로 욕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야경 하나 보려고 계속 있다가 화만 날 것 같아 빨리 숙소로 돌아갔다. 내 생에 다시 포르투갈을 갈 일이 있을까 모르겠다.


포르투갈 여행 이후 유럽 여행 몇 주가 더 남아있는데 기대되기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언어적 위협도 위협이지만 이제 신체적 위협도 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잠깐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 짐을 빼고 한국으로 짐을 부치고 시작한 유럽 여행의 첫 목적지인 런던에서의 기억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런던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뤄야할 것 같다.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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