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ㅊㅐㄱ을 닮은 책

글 입력 2022.06.2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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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라는 단어는 꼭 책 그 자체를 닮았다. 군더더기 없는 불파음 ㄱ으로 발음을 닫을 때면, 다 읽은 책을 풀석 덮는 내가 떠오른다. 그 위에 손바닥을 올리고 방금까지의 독서에 관해 생각하는 내가. 3분 가량을 보내고 다시 발음해본다. 책, 책, 책... 깔끔하다. 언제든 접었다 펼 수 있다.

 

아코디언처럼 모음 ㅐ를 늘렸다 줄여본다. 채―액.

ㅊ이 쓴 모자를 씌였다 벗겨본다. 책, 잭, 색...

나도 그러고 있는 내가 웃기다. 속으로 잔잔히 웃다 보면 삶이 조금 괜찮아지는 기분이 든다.

 

책의 물성을 사랑한다. 책등을 문지를 때면 배어나는 오묘한 기름기도, 책장 사이에 코를 파묻으면 광대 뼈를 따라 번지는 고소한 향의 궤적도, 엄지와 검지 사이를 미끄러질 때마다 애인의 머리칼처럼 단정해지는 가름끈도, 가방을 묵직하게 주저 앉히는 무게감도, 바람이 불면 빽빽한 갈대숲처럼 서로를 스치는 책장과 그들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소음도 모두 사랑한다. 이렇게 보면 독서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실속 있는 선택이다. 고요한 무채색의 자극을 아는 이는 그것만을 찾게 된다.

 

책은 수저나 망치처럼 더 나은 게 만들어질 수 없는, 완전한 발명품이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피부로 실감한다. 단정하게 네모진 모양 속에 온갖 태와 깔의 문장들이 들어차있다는 게 항시 놀랍다. 작가에게 그 속에서 뛰어 놂을 허락받는 순간마다 감사해진다.

 

사랑과 애정에 박한 내가 거의 유일하게 삶의 지지대로 삼는 것이 책이라는 사실, 그게 매번 새삼스럽다. 능숙한 여행가는 아니지만, 언젠가 먼 곳으로 날아간다면 낯선 도시의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하루를 묵고 싶다. 알 수 없는 언어들로 가득한 책에 둘러싸여 활자의 냄새에 코를 마비시키고 싶다. 말이 다른 작가들의 소란한 발화를 듣는 기분에 사로잡혀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상상 속의 나는 이미 지표 위로 수억권의 책을 쌓아 올리고 있다. 무너질 것을 아는 바벨탑을 쌓는 기분으로, 더 이상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기분으로. 성층권을 보기 좋게 뚫고 새카만 창공까지 닿은 책들이 우주 공간을 힘없이 유영하는 상상. 또 다른 지적생명체에게 지구인들의 수많은 두뇌를 (지구인의 입장에서는) 간편하게, (그들의 입장이라면) 불친절하게 전달하는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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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책을 읽는 것은 불가능함에 탄식하게 되지만, 동시에 내 모국어의 한계 내에서도 ―그것을 한계라 정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날 만족시키는 책은 끝없이 등장한다. 읽어도 읽어도 좋은 것은 책뿐이다. 하면 할수록, 해도 해도 좋은 것은 독서 뿐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좋은 것이 영원히 좋을 수는 없겠지만 좋았던 마음을 영원히 좋게 간직할 수는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책으로 배운다.

 

사랑할 누군가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내가 그리워 헛된 관계들에 뛰어들 때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책과 관련해서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책 자체를 사랑하지만, 무엇보다 책을 읽는 나에게서 의미를 찾는다. 누군가 정성들여 세공해낸 문장을 그저 먹고 성실히 씹는, 아주 수동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는 동시에 씹어낸 것들을 그득히 목구멍으로 넘기며 반추하는 과정에서는 능동적이게 될 수밖에 없다. 언어의 한계에 갇힌 것들은 구태여 풀고 해방시켜 나만의 의미를 만들어 간다.

 

아파트 A동과 B동을 넘나들며 신나게 뛰놀던 내가, 수동과 능동 사이를 오가는 짜릿함을 아는 어른으로 컸다는 게 우습다. 말하자면 독서할 때의 나는 그렇다. 가만히 감이 떨어질까 싶은 마음으로 앉아 있지만 입을 벌리진 않는다. 마침내 감이 떨어지면 얼른 주워 집으로 가져간다. 멋대로 자르고, 설탕에 졸이고, 얼리고, 찌고, 삶고, 볶는다. 하나하나 맛을 보며 능동을 부린다. 독서가 진짜 그렇다.

 

책은 유해하다. 유해한 것들만이 우리 삶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유해할 수밖에 없다. 몰랐으면 가벼워졌을 삶을 상상하며 갑자기 물 먹은 솜처럼 묵직해진 일상을 견뎌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동시에 내가 모르는 수많은 감정, 지식, 아직 충분히 물을 먹지 못한 부분의 솜이 괴로워지기도 한다. 알수록 앎이 괴롭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무지가 선명해져 동시에 괴로워진다. 모순이다. 이상하다. 독서가 내게는 가장 이상한 행위 같다.

 

책이 유해하다는 증거는 또 있다. 마음을 건드린 문장들에 빠짐없이 줄을 치며 뻐근한 손목을 돌린다. 책으로 배운 사랑이, 책으로 배운 정의가, 책으로 배운 생의 진리가 대체 무슨 소용이냐는 거센 음성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내가 쌓아온 믿음과 반대되는, 누군가를 언어로서 살해하는 책을 마주하면 우산 없이 먼 빗길을 걸어온 사람처럼 속부터가 축축해진다. 모두가 자신의 정의를 바탕으로 책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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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감정과 생각을 거르는 촘촘한 체를 짜는 과정에 가깝다. 어느 순간부터 슬픔은 슬픈 영화를 봤을 적의 슬픔A와 창문을 훑어내리는 빗방울을 목격했을 때의 슬픔B와 헤어짐을 기꺼이 해야 할 때의 슬픔C 등등으로 끝없이 나뉜다. 수많은 감정의 결을 배우면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모두 슬픈 사람은 아님을 알게 된다. 그 과정은 아주 성가시고 고통스럽다. 슬픔이 슬픔처럼, 분노가 분노처럼, 행복이 행복처럼 보이지 않으니까. 나는 언어가 한참이나 부족하다. 해서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 한계가 애석해진다. 이 또한 독서의 찌꺼기이다.

 

가수, 배우, 운동, 공연... 무언가를 온 마음 다해 성실히 사랑하는 지인들을 보며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부럽다'였다. 그걸 표현할 때마다 그들은 내게 반문한다. '넌 책 좋아하잖아!'

 

내가 책을 좋아하나?

내가?

책을 좋아해?

 

책을 읽는다는 사실이 책을 좋아한다는 마음과 동치되지는 않는다. 한때는 책이 인간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모든 특성을 네모지게 압축한 무언가라고 생각한 적 있었다. 그러나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많은 이들을 지나치며 생각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구나. 허나 이 생각 또한 얼마 가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 그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배우의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것과 내가 활자중독자처럼 책을 읽는 건 다른 감정처럼 느껴졌다. (나도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배우의 드라마를 열심히 본 적이 있기에 안다고 하면, 조금은 설득력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

 

나는 책을 읽는 나에게서 의미를 찾는다. 책을 읽는 내가 좋아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책이 배설한 찌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미간을 팍 좁힌 채 그 찌꺼기 사이를 헤매게 되는,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독서는 이제 버릇이다.

버릇은 아무래도 좋아하기 힘든 영역의 것이 아닌가.

 

내 글이 항상 그렇듯 이 글의 결론 역시 '없음'이다. 아니, 굳이 '있음'을 만들어보자면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을 거란 사실. 버스 창에 기대 그날 그날의 날씨를 머금고 산뜻해지거나 혹은 축축해진 책장을 손가락에 얽고, 문장에 줄을 치고 단어를 고르며 어쨌거나 읽을 거라는 사실. 그걸 가장 삶과 맞닿은 행위처럼 여기고 느끼며, 재미없고 사건 없는 밋밋한 삶을 살아나갈 거란 사실.

 

내가 책을 좋아할 순 없더라도 책만큼은 날 좋아했으면 좋겠다. 이제야 바꿔 말해본다. 책은 살아있는 한 인간 개체의 산물임을 구태여 상기해본다. 그들에게, 수많은 작가들에게 기꺼운 독자가 되고 싶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책을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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