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복수의 끝은 자멸 [영화]

두 남자의 파멸을 다루는 영화 <올드보이>
글 입력 2022.07.0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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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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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곱슬거리는 날 것 그대로의 파마머리와 선글라스, 수트를 입은 남성이 중얼거리는 강렬한 대사.

 

웃는지 우는지 모를 그림과 함께 남자의 표정이 스크린 가득 담기는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을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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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다.

 

영화는 감독의 복수극 3부작 중 하나로, 그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감독 피셜로는 아주 한창일 때 만든 영화며, 에너지가 넘치는 상업영화이자 장르영화라고 한다. 또한 칸 영화제에서 이례적으로 개봉한 이듬해 경쟁작으로 초청되는 등의 성과를 거둔 작품이기도 하다.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이 영화를 꼽은 이유는 영화가 주는 알 수 없는 끌림과 등장인물에게 연민을 느끼도록 설정된 이야기의 완성도가 최고여서다. 한 번 보고 나서도 며칠 간 머릿속을 맴돌아서 다시 봤을 정도의 강렬한 매력, 시간이 지날수록 보이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찾는 재미, 배우들의 멋진 연기 등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수두룩하다. 아직 보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한국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인만큼 대작이니, 꼭 한 번 시청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개를 한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를 줄인 '오대수'가 자신의 이름이라고 말하는 남자 주인공은 별 볼일 없는 남성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공중전화 부스에서 딸과의 통화를 끝마친 그는 갑자기 모르는 사람에게 영문도 모른채 끌려와 모텔방에서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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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붙잡혀 와, 이유도 모른채 15년이라는 세월을 강렬한 독방에서 보낸 이의 마음은 어떨까. 아마 우리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마음일 것이다. 긴 세월을 홀로, 매일같이 군만두를 먹으며 언젠간 나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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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오대수는 왜 자신을 가뒀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무작정 감금당했기 때문에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행동. 대답을 해주지 않자 저항을 해보지만, 사방이 적인 감옥에서는 방법이 없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바깥세계와 유일한 연결고리인 텔레비전에서는 아내를 죽인 파렴치한이 된 대수의 이야기가 흘러 나온다.

 

그의 물음은 이내 분노로 변하고, 급기야 자신을 이 좁은 방에 가둔 미지의 인물을 찾아 잘근잘근 씹어먹겠다는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이 되고야 만다. 호시탐탐 나올 기회를 엿보다, 15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감옥 밖으로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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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밖으로 나와서부터는 복수심을 갖게 만든 사람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 나간다. 이것이 영화의 중심 내용이자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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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로 처음 나와 찾아 간 곳은 다름 아닌 일식집. 그곳에서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고, 직감적으로 발신자가 자신을 가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감옥 밖으로 나오자마자 감옥살이보다 더 한 지옥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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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는 자신을 가둔 사람을 찾기 위해, 15년 간 먹었던 군만두집을 수소문하여 가게를 알아낸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사설감옥에 가둔 이의 단서를 하나씩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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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수와 우진은 결국 서로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정상적인 첫 대면에서 이우진은 대수에게 이런 대사를 친다.

 

"왜 15년 동안 감금했을까가 아니라, 왜 풀어줬냐 이 말이야!"

 

오랜 시간 가둔 저의를 묻는 말에, 질문의 핀트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이우진. 오대수의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의 15년을 앗아가놓고서는 질문이 틀렸다고, 그래서 네가 답을 찾지 못한 것이라고 하면서 5일 안에 이유를 찾아내면 죽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우진이 말에는 틀린 게 없다. 지금 이렇게 풀어줄 거였으면 사실 더 빨리 풀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15년이라는 시간을 설정해놓고 이제서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걸까.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면서까지 왜 그를 가둔 이유를 찾으라고 하는 것일까. 이유를 알기도 전에 죽이면 답답한 쪽은 대수 자신이니까 죽이지도 못한 채, 그가 짜놓은 판이라는 것을 다 알면서도 놀아나는 쪽을 속으로 택하게 된다.

 

"다시 말해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

 

대수와의 짧은 첫 대면 장면에서 우진이 마지막으로 내뱉는 대사.

 

이우진의 대사처럼 '복수심'은 건강에 좋을 수 있다. 대상이 뚜렷한 분노는 방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방향성이 있다는 것은 곧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와 연관되므로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어쩌면 이우진이 원한 것이 이게 아니였을까. 죽지 말고 살아서, 그 댓가를 치루라고. 네가 벌인 일이 얼마나 큰 화를 불러왔는지 살아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보라고 말이다.

 

그 다음 나오는 대사는 복수가 끝난 이후의 상황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복수가 다 이뤄지고 나면 어떨까? 아마 숨어있던 고통이 다시 찾아올걸?" 마치 그들의 비극적인 미래를 암시하기라도 하듯 허망함이 가득 담긴 문장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5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을 가둔 이유를 찾아나가던 대수는 우진과 자신의 연결고리가 고등학교라는 점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여러 단서들을 통해 우진과 우진의 친누이가 사랑한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근친상간이라니. 아주 충격적인 내용이었지만,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니 거부감이 들거나 하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복수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복수에 불타오르는 마음은 의지력을 불태우지만, 불이 꺼진 이후의 삶은 의미 없음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복수만을 목적으로 살아온 이우진의 자전적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겠다.

 

우진과 수아, 그 둘은 진심으로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진은 누나의 죽음 이후 복수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을 것이 당연하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웠을테니까.

 

우진의 복수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들을 지키지 못한 괴로움에 빠져 살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첫 번째로는 사설감옥에 납치해오면서 아내를 죽인 누명을 씌우고, 두 번째로는 딸인 '미도'와 사랑에 빠지게 한 후 미도 또한 잃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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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당연히 우진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대수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의 딸인 '미도'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 후반부에서야 그 사실을 대수에게 알려주게 되는데, 이 모든 물음의 이유가 자신의 말 한마디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큰 충격을 받은 그는 미도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행동하고, 결국 자신의 세치 혀까지 내놓는다.

 

그런 대수가 너무 웃긴 우진은 우는 건지 웃는 것인지 모를 표정을 짓다가, 허망하다는 듯이 대사를 읊조린다. "나요, 이제 무슨 낙으로 살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미도와 자신의 관계를 안 오대수가 그녀를 지키기 위해 한 선택은 얼핏 보면 이우진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 본인과 미도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다. 우진이 악으로 버텨온 세월이 결국은 복수의 끝에서 부질없는 짓이 되어버리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후 우진은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진 후 엘리베이터에서 권총을 꺼내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누나하고 난 다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너네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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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진은 오대수가 자신이 느낀 고통을 오롯이 느끼고, 더 한 절망감을 느끼는 결말을 원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지 못해 고통 속에 살았던 삶을 오롯이 전가시키는 것 그 이상을 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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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이 소복히 쌓인 벌판.

 

대수는 복수심에 눈이 멀어 살인을 범하던 자신과 그 이전의 자신을 모두 지우기 위해 최면술사에게 찾아간다. 이후 기억이 모두 지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해요 아저씨"라고 말하는 딸 미도에 품에 안겨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결코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없지만, 우진이 죽은 다음에도 오대수와 미도는 함께 한다.

 

이 승자 없는 긴 싸움이 비극적인 방식으로 끝난, 슬픈 결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다 알면서도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일을 벌이고 자살한 이우진에게 비극일까, 아니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미도와 오대수에게 더 비극인걸까.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 싸움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승패를 가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전에 소개한 <박쥐>와 마찬가지로, <올드보이> 또한 10번도 넘게 본 영화 중 한 편이다. 왜 마음이 가는 지는 모르겠지만, 매력과 흡입력이 엄청난 작품이어서 좋아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내가 유독 흔히들 말하는 '박찬욱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감독은 상업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예술가라는 자의식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뚝심과 열정이 낳은 멋진 작품이 바로 <올드보이>지 않나 생각한다.

 

혹시라도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묘사의 등장이 꺼려져서 보지 않았다면, 그러한 장면들의 필요성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어느 영상에서 박찬욱 감독이 직접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가 묘사들을 피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에 기여한다는 답변을 하였다. 관객도 작품 전체 그림을 한 번 더 생각하면서 보면 어떨까 싶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우진이 다리에서 누이의 손을 놓기 일보직전~그가 총으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다. 우진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치컷은 영상적으로 아주 탁월하면서도 영화 전반에 흐르는 비극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씬이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명확하게 답하기는 어렵지만, 우진은 여전히 다리 위에서 누나 손을 놓던 그 시절 속에 살면서 죄책감을 오롯이 다 느끼고 있다는 점이 관객으로 하여금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그의 복수를 모두 이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점이 인상 깊었다.


 

** 탁월한 영화 설명 영상을 참고하셔서 즐거운 관람 되시기를!

 

 

 

 

[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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