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의 경계를 넘으면 보이는 것

글 입력 2022.06.2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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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난민 문제, BLM(Black Lives Matter), 페미니즘 이슈 등… 국가, 민족, 젠더, 인종과 같은 다양한 갈등이 매일같이 불거져 나온다. 혼동과 격변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는 미래사회와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모로코 태생 영국 2세대 이민자, 하산 하자즈가 보여주는 “다가올 것들에 대한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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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앤디 워홀이라 불리는 하산 하자즈의 아시아 첫 개인전 TASTE OF THINGS TO COME>이 서울 삼청동의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렸다. 하산 하자즈는 모로코에서 태어나 10대 시절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한 2세대 이민자다.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로서 그는 정체성 혼란과 인종 차별, 경제적 소외 등의 많은 문제를 겪어야 했다. 하자즈는 1970년대 후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RAP(Real Artistic People)을 런칭하고 흑인 음악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등 영국 내 흑인 대안 문화를 이끌었다. 그가 지금과 같이 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을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후반 모로코 여행을 하면서였다.

 

당시 모로코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한 나라로, 양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장소였다. 그런 만큼 당시 모로코 시장에는 서구 유명 브랜드 자사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루이비통, 구찌 등 명품 모조품 또한 넘쳐났다. 명품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모로코 사람들은 자신이 두른 옷의 로고가 명품인지도 모르고 입고 다녔다. 영국 내 흑인 대안 문화를 이끌며 상위 문화와 하위문화 간의 경계를 무너뜨렸던 하자즈는 모로코 현지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유명 브랜드 모조품을 작품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명품과 모조품, 히잡을 쓴 여인과 오토바이 등 모순적인 소재를 활용해 선입견을 깨는 다양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프레임 안에서 이뤄지는 대중문화와 북아프리카 전통문화의 결합


 

하자즈의 작품은 북아프리카의 전통적 색채와 디자인에 사진 프레임에는 통조림 캔, 장난감, 음료 등 모로코에서 소비되는 상품 오브제를 결합해 구성되어 있다. 사진의 프레임은 단순히 장식적 의미가 아니라 모로코 전통의 모자이크 패턴과 타일을 하자즈 관점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사진 속 인물이 가진 성격이나 직업과 관련해 재치있게 표현한 것이다. 강렬한 색감과 오브제를 활용한 모자이크 패턴 등으로 하자즈는 팝아트의 범주 안에 포함되곤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문화적 층위가 존재한다. 하자즈의 작품에는 고급문화 혹은 상위 문화로 분류되는 서구의 문화적 요소와 하위문화로 분류되는 흑인 문화, 북아프리카 전통문화가 한 프레임 안에 혼재한다. 이는 모로코 출신의 영국 2세대 이민자인 하산 하자즈의 복합적 정체성을 예술로 승화한 것이다.

 

 

 

하자즈의 대표적인 연작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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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즈의 대표적인 연작 “Kesh Angeles”와 “Dakka Marrakchia”는 아랍 문화에 대한 서구적 클리셰를 풍자하는 작품이다. 작품 속 히잡을 쓴 여성들은 좁은 골목길, 오토바이 위에 앉아 있다. 그들은 레오파드나 카모 플라주 프린트의 드레스를 입고 대담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의 구도도 패션 잡지나 힙합, 무술 공연처럼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데 이 때문에 사진 속 인물들은 더욱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자신들은 히잡 속 수동적인 존재가 아님을 온몸으로 주장하듯이 말이다. 하자즈는 작품을 통해 종교, 민족, 성별의 경계를 허물고 보는 이들 내면에 자리한 편견과 차별적 시선을 재치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무너뜨린다.

 

이번 전시의 사진 작품은 모두 인물 사진으로 구성되었는데 하자즈의 또 다른 대표작 “My rockstars” 연작 역시 만날 수 있었다. “My Rockstars” 연작은 하자즈가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라케시, 런던, 파리 그리고 두바이 거리에서 팝업 사진 스튜디오를 열어 만난 사람들을 촬영한 것이다. 이 연작에는 유명 연예인, 언더 그라운드 음악가, 타투이스트, 패션 디자이너, 힙합 댄서, 무술인, 요리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자즈의 작품 속 프레임 너머에는 모든 경계를 허물고 주체적인 삶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계급이나 인종과 상관없이 단지 하자즈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기에 작품 속 피사체가 된 것이다.

 

 

 

창의적이고 통통 튀는 아이템으로 가득한 하자즈의 부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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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2층으로 올라가면 하자즈가 영국와 모로코에서 운영하는 부티크를 재현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하자즈는 지역 예술가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장으로서 부티크를 활용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부티크를 재현함으로써 관람객들이 하자즈가 디자인한 다양한 형태와 재료의 물건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경계를 뛰어넘은 새로운 문화적 취향의 도래



하자즈는 포스트 식민주의 시대를 경험한 2세대 이민자로서 자신의 뿌리인 북아프리카인의 정체성과 영국 식민지 역사 사이의 애환을 고정적 이미지로 재현하기보다는 이를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혼종성을 유쾌하게 표현한다. 관객은 하자즈의 작품을 통해 식민지 문화에 대한 편견이 부서지고 양가적 문화가 결합한 새로운 문화를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시의 제목이 A TASTE OF THINGS TO COME이듯, 도래할 미래에는 모순적이고 대립하는 것들의 무너진 경계, 그 사이에 새로운 취향이 자리할 것이다. 우리는 하산 하자즈의 작품 세계가 전하는 메시지에 공감하며 다양한 문화적 취향을 수용하고 활발한 소통을 통해 긍정적인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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