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그리워 [사람]

글 입력 2022.06.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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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그리워.”


친구 k의 한마디로 날씨가 추워졌음을 확실하게 느끼곤 한다.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말이기에 나도 입버릇처럼 물어본다.


“왜?”


“그냥. 춥고 무겁잖아.”


카페 테이블에 엎드려서 핸드폰 앨범 속 여름 사진들을 끊임없이 스크롤하며 한숨을 쉬는 친구를 보며, 나는 겨울을 좋아해 라는 대답 대신 나도 여름이 그리워 라고 답하게 된 지 몇 년이 지났을까. 확실히 답할 수 있는 건, 4계절 중 여름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

 

김신회 작가님의 <아무튼, 여름> 이라는 책을 보면 내가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맞닿아 있는 지점이 많이 발견 된다. 책의 시작부터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이 등장한다는 점, 여름 과일을 양껏 먹는다는 점, 여름이 되면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맥주를 찾게 된다는 점, 좋아하는 옷을 걸치고 숲길을 걷고 달리기를 하고 바닷가로 떠난다는 점, 여름이 되면 꼭 챙겨먹는 옥천냉면 (나에게 옥천냉면은 광주 옥천면옥이다. 작가님의 옥천냉면 황해식당과는 다르다), 여성들의 이야기에 깊은 애정을 보인다는 점, 나에게 주는 큰 선물로 여름휴가를 준비한다는 점 등...

 

 

“왜 그렇게 여름이 좋냐는 질문 앞에서는 늘 대답이 궁해진다. 그렇지만 그냥, 이라고 얼버무리기에 여름은 그렇게 단순하게 넘겨버릴 게 아니어서 그럼 한번 써볼까, 했다. 마치 여름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처럼, 여름이 좋은 이유에 대해 써보는 거다. 나는 너의 이런 점이 좋아. 그래서 좋아. 별로일 때도 있지만 결국은 좋아.”

 

 

그렇다면, 나도 한번 써볼까, 한다. 여름이 좋아, 좋은데 이유가 있나? 그냥 좋아! 라며 밝게 대답하곤 했던 과거의 내 모습을 잠시 넣어두고 여름을 둘러싼 기억을 불러 모아 보기로 했다.

 

위에서 한번 언급했듯이 나에게 주는 큰 선물로 여름휴가를 준비한다. 그것도 아주 비장하게. 나머지 3계절 동안 오직 여름을 위한 돈을 모아두고, 올해도 최고의 여름을 보낼 거라는 당찬 파이팅과 함께 나의 여름휴가는 시작된다. 내가 사랑하는 몇몇의 친구들 중, 가장 많은 여름을 보내 온 친구 k와 함께하는 여름휴가는 시작도 수영 끝도 수영이다. 여기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놀랍게도 우리 둘 다 수영을 못한다는 점이다. 수영을 못하지만 물놀이를 사랑하는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마음에 드는 수영복을 구입하고 튜브를 하나 빌려 바다로 향한다.


뜨겁고 눅진한 햇살 밑에 서있으면 옷 밖으로 드러난 살갗은 금세 따끔거리기 시작하고, 나를 둘러싼 습하고 무거운 공기는 꼭 수십 명의 사람들이 깊은 단전에서 올라오는 호흡을 동시에 내뱉는 듯하다. 서둘러 작은 수건을 바닥에 깔고 바람에 날아가지 못하도록 단출한 짐가방으로 고정시킨다. 수영복은 숙소에서부터 입고 왔기 때문에 가볍게 걸치고 있던 겉옷만 벗으면 마침내 물놀이 준비는 끝이 난다. 돌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미 바다로 뛰어 들어간 친구를 쫓아 서둘러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아 벌써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햇빛에 달궈진 얕은 수면 위와 저 멀리 깊은 곳에서 밀려들어왔을 차가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자면 발끝에서부터 소름이 돋고 이걸 위해 1년을 버텨왔다는 생각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찰랑거리는 물소리, 입가에 느껴지는 짠 맛, 가슴께에 부딪히는 파도와 함께 크게 들이마시는 호흡, 선선히 불어오는 더운 바람, 주변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말소리, 한층 풀어진 사람들의 표정, 신나게 수영하고 있다는 흔적만 남은 사진들.


더위를 잊은 채 한참을 물속에서 첨벙거리다보면 주변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서서히 사라져가고, 우리와 같은 수사사(수영을 사랑하는 사람들) 만 남겨지게 된다. 같은 수사사지만, 우린 튜브에 매달린 채 수영 비슷한 발장구 중이고, 그들은 진정한 수영인 이라는 것 정도의 차이점이 있겠다. 수영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들 못지않으니 큰 차이점은 없다고 봐도 된다며 친구k와 깔깔거리며 정신승리를 한다. 손발이 자글거리고 한껏 움직였던 팔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면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바다를 빠져나온다. 한번 물에 들어가면 해변으로 나오지 않는 우리라 바닥에 깔아둔 수건엔 바닷바람을 타고 날아온 모래들로 가득 차있다. 서둘러 겉옷을 걸치고 수건을 몇 번 털어준 뒤, 몸을 타고 흐르는 물을 내버려 둔 채 바닷가를 벗어난다. 차에 올라타기 전 잘 놀았다는 애정을 담아 뒤를 돌아보면 잊고 있던 놀라운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4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꼽으라면 단연코 여름 하늘이다. 파란 하늘과 꽉 찬 흰 구름을 보고 있으면 찌는 듯한 더위도 잊게 된다. 해가 긴 만큼 오래도록 밝은 하루를 보낸 뒤 찾아오는 선명한 노을은 많은 이들에게 벅차오르는 감동과 위안을 안겨준다. 최고의 시간을 보냈으니 미련 없이 바다를 떠나려던 우리는 쨍한 노을빛으로 가득 찬 하늘을 두고 갈 수 없다며 잠시 앉아 있다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누가 봐도 방금 바다에서 나왔어요 를 광고하는듯한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바닷가 한편에 자리를 잡는다. 별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감탄사만 내뱉으며 해가 지는 광경을 온 몸으로 담아낸다. 누군가가 작정하고 물감을 뿌려놓은 듯 현란한 노을빛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바다에 잠기기 시작한 태양은 눈물이 날 정도로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진다. 몸을 감추고 있던 별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면 배경음악처럼 들려오던 셔터음 소리가 잦아들고 파도소리만이 가장 크게 들려온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큰 한숨을 내쉰 우리는 무겁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차를 타고 굶주린 배를 채우러 가는 길, 지금 분위기에 딱 맞는 음악을 틀고 창문을 열어 미세하게 시원해진 저녁 바람을 맞으면 쉽게 잦아들지 않는 오늘 하루의 여운이 느껴진다. 정말 행복하다 그치, 진짜 행복하다, 야 이게 행복이다 등의 행복 예찬론적인 모습을 보이며 여름을 애정 하는 마음을 한껏 드러낸다. 이보다 더 무해한 순간이 있을까 싶은 모습들로 가득 찬 나의 여름.

 

나의 여름이 쌓이고 쌓여 많은 이야기들을 남기게 된 어느 날. 시린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며 온몸으로 서늘함을 느끼고, 간밤에 내린 눈을 눈치 채지 못한 채 무심코 창문을 열었을 때의 그 짜릿한 겨울을 사랑하던 나는, 어느새 서늘해진 공기를 느끼면 자연스럽게 혼잣말을 남기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름이 그리워.”

 

그리고 지금, 마침내, 여름이 왔다.

 


[송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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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글 잘 봤어요!!!!!!!! 넘 잼나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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