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꺼이 나를 사랑하는 내가 되자 - 이소호 산문집 '서른다섯, 늙는 기분'

글 입력 2022.06.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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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스물아홉, 늙는 기분이다.

 

이 책 <서른다섯, 늙는 기분>을 처음 봤을 때 무조건 읽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최근 이토록 읽고 싶게 만들었던 책 제목이 또 없었다. 아직 앞자리에 2를 달고 있지만 늙는 기분이 대체 무엇인지 통감하며 살고 있으므로.

 

나의 노화는 몸에서 정신으로 이어졌다. 아픈 곳이 왜 이렇게 많아졌지 싶은 순간부터 삶이 갑자기 너무 길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골골대는 몸을 부여잡고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며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아우성치면서 살아가는 것을 몇십년동안 더 하라고?

 

물론 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꿈을 좇고 삶을 즐긴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둔 채 살아가고 있었건만. 이제는 그 최면이 때때로 풀려버리고 만다. 슬픈 일이다. 심지어는 머지 않아 난 서른을 넘기게 될 것이었다.

 

모든 나이가 그렇지만, 한번도 넘어보지 않았던 숫자 앞에서 난 자꾸 움츠러들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유독 허들이 높은 것처럼 느껴졌다. 멋지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자고 계속 생각하면서도 그놈의 사회적인 나이란 것이 주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 <서른다섯, 늙는 기분>을 펼칠 때 내 심정이란 참 미묘했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았고, 다만 이 늙어감에 대한 허허로움을 공감할 여성을 기대할 뿐이었다. 나이들어감에 무어가 있겠어, 그냥 다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하는 체념의 정서가 책을 읽기 전부터 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그 결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소호 작가는 체념하지 않고 나아감을 택했다. 이 책은 이소호 작가가 ‘사회적인 죽음을 예감했을 때’ 쓰인 책이다. 사회는 서른 다섯이라는 나이를, 특히 서른 다섯의 여성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줄 세우고 평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서른 다섯의 여성은 갑자기 ‘늙은 여자’가 되어버린다. 애가 없지만 애기 엄마가 되어버리고, 나이가 많아 재취업도 힘들 것이란 이야기를 듣게 되고, 결혼 정보 회사에서는 경력 단절 여성으로 커리어를 무시당한다. 내 몸의 노화만 이고 살기에도 힘든 판에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내 나이의 무게를 더한다. 가혹하다.

 

 

나는 노산이나 잠재적 가임기 여성이라는 비좁은 진단을 훌훌 던져버리고 새 삶을 살고 싶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하루라도 더 빨리 결혼해야 애도 낳고 이상적인 삶을 살지 않겠냐고. 이상적인 삶은 누가 선택한 기준일까. 나는 신체적으로 생리 일수가 약간 줄어든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건강하다. 호르몬은 내가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냥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다. 이는 가임기 여성의 숙명이다. 생각해 본다. 여성은 폐경이라는 것이 있다. 남성은 그렇지 않다. 이 차이 때문에 여성은 늘 나이 듦에 대해서 괴로워해야 한다. 신은 정말로 여성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창조했음이 틀림없다.

 

<생리 주기와 우주의 섭리> 중에서

 


이소호 작가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기로 한다. 책의 서두에서 ‘나는 나를 사랑하는 데 35년이 걸렸다’고 담담히 말하는 작가는 늙는다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면서, 다만 멈추지 않고 진화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준다.

 

진화란 말이 거창해보이나 결코 그렇지 않다. 흰머리를 새치라고 우기지 않고, 예민하던 일들에 적절히 무던해지며, 의무적으로 영양제를 먹고 운동을 하는 것. 그리고 나이듦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

 

몇 년 후의 나이를 이미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내 막연한 고민을 눈 앞의 현실로 마주하고 복잡한 마음을 해결하고자 고민했던 작가의 이야기가 나에게 담담한 용기를 준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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