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수많은 질문과 수많은 답변으로 완성해가는 이야기 - 컴온 컴온

글 입력 2022.06.2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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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호아킨 피닉스)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어린 아이들을 인터뷰하는 라디오 저널리스트이다. 어린 아이들을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그에게, 어느 날 실전의 시간이 주어진다. 바로 동생인 비브(가비 호프만)의 부탁으로 9살짜리 조카인 제시(우디 노먼)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사실 그 시간 속에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요소가 배치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심심함 덕분에 이야기 자체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흑백 영화의 명과 암에 집중하다 보면 인물의 생각과 감정에 절로 시선이 갔고, 무채색의 배경을 바라보다 보면 꾸밈없는 자연스러운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심심하지만 재미있고, 건조하지만 뜨거웠다.


<컴온 컴온>에서는 수많은 질문과 수많은 답변이 나온다. 조니가 아이들을 인터뷰할 때도, 조니와 비브가 통화할 때도, 제시와 조니가 서로를 알아갈 때도. 그만큼 영화는 많은 메시지를 던졌고, 보는 이로 하여금 퍽 진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의 경우에는 '아이와 어른', '가족', '세상', 그리고 '인터뷰'였다.


 

 

아이와 어른, 그리고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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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지나온 어른,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될 아이. 두 존재는 연결되어 있는데, 어쩐지 둘의 공존이 쉽지만은 않다. 타인을 이해하는 건 아이도, 어른도 어렵다. 비브의 말처럼 가족일이라도,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상대방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제시와 조니의 시간을 동화처럼 마냥 아름답고 흐뭇하게만 그려내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불협화음을 드러내고, 그것을 미화시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끝까지 놓지 않는 것'에 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듣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어렵기만 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에는 늘 대화가 있다. 그들은 경청하고 표현하고, 또 표현하고 경청한다.

 

그렇게 함께 걸어온 그들은 어느새 이상하면서도 사랑스러운 화음을 내기 시작한다. 조니는 듣기 버거웠던 제시의 엉뚱한 이야기들이 그리워지고,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소리치던 제시는 조니를 베스트 프렌드라 부르기에 이른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진정한 가족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희로애락에서 어느 하나 감추려 하지 않고 표현하면서 서로 나누는 것. 그 과정에서 다툼도, 화해도, 행복도, 슬픔도, 위로도, 치유도 주고받는 것.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겨난 마음이 자라고 자라다 보면 어느새 진짜 가족이 되어 있는 게 아닐까.

 

이처럼 제시와 조니뿐만 아니라, 제시와 비브, 질문하는 저널리스트와 대답하는 아이들처럼 영화 <컴온 컴온>은 다양한 모습으로 아이와 어른의 소통을 담아냈다. 영화 속 어른들은 제시를 비롯한 아이들의 말에 집중하고, 정성스레 귀 기울인다. 아이들을 '의무적으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여야 하는 어린 아이'가 아닌, '경청해야 하는 대화 상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존중받고 있음이 영화 밖 관객석까지 여실히 전해졌다. 흑백영화임에도 따뜻함이 느껴졌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와 수월하고 편안하게 소통하기 어려운 요즘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친구와도, 연인과도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 <컴온 컴온>의 제시와 조니를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알아가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 그들의 시간을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고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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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눈이 정확하다는 말이 있다. 그 말에 공감한다. 제시를 보며,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한 어린 아이를 떠올렸다. 신께서 어떤 것을 안 넣어주신 것 같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아이는 "신께서는 저한테 남김없이 전부 다 주신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는, "솔직하고 착하고 용감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용감하면 누구한테든 말을 다 할 수 있고, 착하면 상냥하게 말할 수 있고, 솔직하면 뭐든지 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영화 <컴온 컴온>은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이야기한다. 세상에, '세상'을 이야기한다고? 우리는 어쩌면 세상을 너무 거창하고 어렵게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어른들에게, 제시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조니의 인터뷰를 내내 거절하던 제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녹음기에 대고 한 말이다. "Whatever you plan on happening, never happens. Stuff you would never think of happens. So you just have to, you have to come on. Come on, come on, come on, come on..."

 

어느 날 제시가 장난스럽고도 진지한 눈으로 조니에게 말했다. "Do you have trouble expressing your emotion? Just sit down, you can let it all come out." 그리고 또 어느 날, 괜찮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괜찮다고 자신을 억누르는 제시에게 조니가 말했다. "I'm not fine, and that's totally reasoable response! Come on, man!" 그제야 제시가 울면서 소리친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다고. 그리고 이건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이라고.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세상은 알다가도 모를 일의 연속이고, 모든 일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제시가 녹음기에 대고 속삭인 말이 생각날 것 같다. "그럴 땐 그냥, 그냥 해요. 해요, 해요, 해요..." 습관처럼 내 감정을 삼키고 싶을 때는 제시와 조니가 주고받던 교감이 떠오를 것 같다. "일단 앉아요. 그리고 모두 다 내보내요", "넌 괜찮지 않아. 그리고 그건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이야."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나를 알고, 내 감정을 알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사는 것. 또 인생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냥 하는 것, 해보는 것. 가보는 것. 단순하지만 중요하고 잊어선 안되는 일을 영화 <컴온 컴온>을 통해 생각해본다.

 

 

 

Interview, Inner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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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hen you think about the future, how do you imagine it'll be? Like what will nature be like? How will your city change? Will families be the same? What will stay with you, and what will you forget? What scares you? What makes you angry? Do you feel lonely? What makes you happy?"

 

조니가 어린 아이들을 인터뷰할 때 하는 질문으로, 아마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온 대사 중 하나일 것이다. 이에 대한 아이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한 아이는 미래에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다른 아이는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 이해할 수 없을 때가 가장 두렵다며, 그 외로움이야 말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일 거라고 말한다.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질문이고, 대답이었다.

 

영화 속 인터뷰이는 아이들이었다면, 영화 밖 인터뷰이는 나였다. 그리고 인터뷰어 역시 나였다. 내가 묻고, 내가 답했다. 어릴 적 너도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 않았냐고, 어른이 되고 더 낫게는 아닐지라도 더 무너지지 않도록 발버둥 쳐본 적이 있느냐고. 저 아이들이 말하는 '내가 맞고, 너는 틀려'라고 생각하는 어른으로 자라지는 않았냐고. 사실은 너도 너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않는 상대방을 만났을 때 무력한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지 않냐고.

 

아이들의 대답은 즉각적으로 튀어나왔지만 내 대답은 입 안에서 맴돌기만 하고 입 밖으로 쉬이 내뱉어지지 않았다. 제시에게 역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스럽고 복잡해 보이던 조니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러다 문득, 감독이 바라는 관객의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인터뷰로 자신이 평소에 외면했던, 혹은 들여다보기 쉽지 않았던, 깊숙한 내면을 직면하는 것. 내 안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 내 안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 자신과의 'Interview'를 통해 'Inner view'를 하는 것. 영화의 마지막, 나지막하게 들려오던 한 어린 소녀의 대답처럼 말이다.

 

 

"Sit down, and close your eyes, and try to find yourself. Because I feel like that's what you really have to do, is to know what you want. Like, find a way that you feel comfortable finding yourself. You know, you got to find to find."

 

- 영화 <컴온 컴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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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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