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이를 이해하는 일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었음을 - 영화 '컴온 컴온'

글 입력 2022.06.1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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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이해하는 일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었음을


 

수많은 아이들을 인터뷰해왔던 조니. 그러나 정작 제 조카를 마주하고는 매일이 당황과 기함의 연속이었다. 평소에는 연락도 잘 하지 않았던 여동생 비브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건다. 갑자기 뛰어다니고, 사라졌다가 놀래키고, 그러면서 토라지는 건 기본이고 ‘부모를 잃고 보육원을 탈출한 고아 놀이’에 장단을 맞추어 달라고 조르는데 이게 정말 맞는거냐면서. 비브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아이들은 원래 그래. 그게 정상이야.”

 

이렇게 ‘날 것의’ 아이는 처음 만나봐서일까. 우여곡절을 겪던 조니는 아이와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싸우고, 화해하고,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그리고 나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법도 배운다. 세상도 다르게 보인다. 세상의 모든 것은 너무도 커서 아이의 작은 몸으로 바라보기에는 시선의 높이가 맞지 않았다. 작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날 것의 아이는 질문도 예사롭지 않다. 어른들은 누군가에게 실례일까 하여 물어보지 않는 질문도 아이들에게는 낱낱히 꺼내어 늘어놓고 호기심을 해결해야 할 안건일 뿐. 왜 엄마랑 연락을 안했어? 싸운거야? 삼촌이 엄마랑 아빠랑 헤어지라고 말했어? 아빠는 지금 아픈거 맞지? 아이는 기민하다. 아이니까 모르겠지 하고 덮어 두었던 소위 어른의 세계를 모두 다 알고 있었다.

 

잔잔한 물에 던진 작은 돌 같은 질문들. 작은 돌도 쏟아지니 폭풍 같다. 이 폭풍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멈춘 채 고여 있었던 가족의 관계에 새 숨을 불어넣는다. 아이와 소통하는 일이 가족을 이해하는 일로 이어졌다. 조니는 자신의 여동생 비브를 이해했다. 비브와 어머니가 쌓아온 힘든 관계의 역사도, 그래서 죽음을 앞둔 어머니를 대하는 자세가 자신과 다를 수 밖에 없었음을, 나아가 비브가 아이를 돌보며 얼마나 힘겨운 일상을 이겨내 온 것인지도. 아이를 이해하는 일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사랑과 이해는 비례하지 않는다


 

영화 <컴온 컴온>은 현실적이어서 도리어 낭만적으로 벅차오를 때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존재 자체가 판타지이므로. 분명한 것은 아이를 중심으로 관계가 전개됨에도 이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아이를 통해 극중 인물들의 관계와 인물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이해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막연한 행복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욕망하고 성장하며 삶을 온전히 누리고 싶은 자기 자신, 편집증에 빠져 자신이 망가져가는지도 모르는 남편, 언제든지 예측불허의 행동을 할 준비가 된 아이 사이에서 비브는 몇번이고 머리를 부여잡는다.

 

비브의 육아는 고통스러워보인다. 자신을 챙기기도 벅찬 가운데 조쉬와 끊임없이 교감해야 한다. 하지만 비브는 언제고 항상 조쉬를 사랑하며, 조쉬 역시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비브는 조쉬에게 말한다. 나는 널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라고.

 

사랑은 운명이 아니라 노력이다. 영원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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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른이 된다


 

한 프레임에 어른과 아이가 잡히는 모습이 문득 낯설다. 이렇게 다른 두 존재가 공존할 수 있음이 놀랍다. 감정과 이성, 충동과 계획, 변화와 유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반의어를 모아보면 이 두 존재가 될 것만 같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아이는 언젠가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또 어른은 언젠가 아이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코 그럴 일이 없는 것처럼, 그런 적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한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주 당연한 관계의 본질을 짚고 보니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조니도 이 관계를 이해했다. <컴온 컴온> 후반부에 제시에게 말하는 내용이 따스하다. 아이였던 너의 시간을 넌 결국 잊게 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이야기해줄 것이라고. 기억해줄 것이라고. 특별한 아이의 세계. 우리 모두가 겪었지만 어느 순간 잊어버린, 잃어버리고 말았던 세계다. 조니의 그 말이 제시를 지켜줄 것이라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그리고 지난날의 어린 자신을 돌보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나도 마음이 울린다.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닌데도, 아이를 이해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왜 내가 위로받는 것인지. 동시에 나 역시 아이들을 이해하며 성장하는 멋진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생겼다. 영화 <컴온 컴온>의 시작과 끝에서 조니와 제시의 관계가 변화하듯 이들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도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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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행복하자


 

예측할 수 없는 아이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나니 사회에 찌든 어른이라는게 관용어구가 아님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아주 작은 것도 아주 크게 보고, 별것 아닌 것도 대단하게 본다. 진심을 다해서, 항상.

 

사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쉬운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내가 무엇을 느꼈고 내 감정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아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 알 수 없었던 탓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았다, 라는 표현마저 너무도 고전적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정작 이 말밖에 할 도리가 없다.

 

영화 속에서 어른인 조니는 인터뷰를 통해 끊임없이 아이들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매번 놀란다.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다니 하면서. 아이들의 생각은 자유롭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한다던가, 이 세상이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는 또 사람들이 화내지 않는 세상이었음 좋겠다고 답한다. 아주 간결하고 단순한 말에 본질이 있다. 즉각적이고 핵심적이다.

 

조니가 조쉬에게 물어봤던 질문이 있다.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도리질하며 대답을 피하던 조쉬는 영화 말미에 이르러 조니의 마이크를 부여잡고 몰래 녹음을 시작했다.

 

 

계획한 것들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예요.

예상치 못한 일들이 펼쳐질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해봐요.

Come on, come on,

come on, come on.

 


나의 삶은 어떠했는지 아이의 시선으로 돌아보게 된다. 영화 <컴온 컴온>은 스크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좋은 영화는 치료의 효과가 있다. 좋은 영화는 오히려 날 혼란스럽게 만든다. 묵혀둔 감정과 생각을 뒤집어 엎고, 벅차오르는 감각 속에 날 내던져놓기 때문에.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음을 통감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처럼, 항상 치열하게 행복하자.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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