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맥긴리 그리고 카르페디엠

글 입력 2014.09.1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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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생각, 끄적임

Art, think, Write

Carpe diem



라이언 맥긴리 / India / 2010 / 


젊음 그리고 청춘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항상 자리잡는다.




인간이란 알수없는 미래에대한 두려움 불안에 의해서 당장의 현실에 안주하거나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지금 글을 쓰는 나조차도 그러할 것이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는 우리의 태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케 해주는 것이 있을까? 여기 한 편의 로마 시가 있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시 1.11 中


 tu ne quaesieris, scire nefas, quem mihi, quem tibi 신들이 그대, 혹은 나에게 무슨 운명 줄 것인지 알려고 하지 말게나(왜냐면 그건 금지된 일이기에) 
 finem di dederint, Leuconoe, nec Babylonios 레우코노에여, 혹은 바빌로니아 숫자놀음도 하지 말게나. 
 seu pluris hiemes seu tribuit luppiter ultimam, 유피테르 신께서 너에게 더 많은 겨울을 나게 해주시거나, 혹은 이것이 일생의 마지막 겨울이거나. 
 quae nunc oppositis debilitat pumicibus mare 지금 이 순간에도 티레니아 바다의 파도는 맞은 편의 바위를 점점 닮아 없애고 있다네. 
 Tyrrhenum: Sapias, vina piques et spatio brevi (친구여), 현명하게 살게나, 포도주를 줄이고 먼 미래의 욕심을 가까운 내일의 희망으로 바꾸게 
 spem longam reseces. dum loquimur, fugerit invida 지금 우리가 말하는 동안에도, 질투하는 시간은 이미 흘러갔을 것이라네 
 aets: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오늘을 붙잡게, 미래에 최소한의 기대를 걸면서 


위의 시는 로마시대의 시인인 호라티우스의 송시 1.11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오역이 된 제목이지만 많은 이들이 아는 제목으로 서술한다.)’에서 유명해진 명대사 카르페 디엠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의 단어적 의미에 대해서 분석해보자면 카르페(Carpe)는 ‘뽑다’를 의미하는 ‘카르포(Carpo)’의 명령형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인 오비디우스의 경우에는 호라티우스 시에 나타나는 의미와 마찬가지로 즐기다, 잡다, 사용하다, 이용하다라는 말로 사용했다고 한다. 즉, 뽑다라는 단어를 넘어 그것을 사용하고 이용하고 즐긴다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디엠(Diem)은 ‘날’을 의미하는 단어인 디에스(dies)의 목적어라고 한다. 즉, Carpe Diem은 현재, 오늘, 또는 지금을 잡아라, 즐기라는 의미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를 즐기라는 말은 결과적으로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는 소리일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즐긴다라는 의미와는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단순히 현재의 순간을 즐기는 것과 지금 나의 삶에 충실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호라티우스의 특징과 그의 다른 시들을 보았을 때 또한 그의 일생을 보았을때는 그는 염세주의적인 측면을 지닌다. 이 ‘카르페 디엠(오늘을 잡아라)’라는 말이 그렇다면 지극히 염세주의적인 어투의 발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염세주의적 시인이 말하는 희망이라고 하고 싶다. 나는 이 카르페디엠이라는 시 구절을 시각예술에서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따라서 오늘 시간에는 카르페 디엠의 의미에 대한 내 생각과 라이언 맥긴리의 작품을 통해서 보는 청춘이라는 키워드의 현실 충족성에 대해서 파악해보려 한다. 주의할 것은 이 글은 나의 의견에 불과하며 일반화되거나 객관화되기는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시각예술에서의 경향을 파악해보기 전에 카르페 디엠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고 싶다. 우리는 소위 미래에 잘되기 위해서 공부한다. 이를 가장 잘 반영하는 한국사회의 집단은 고등학교 3학년 이른바 고3일 것이다. 학생들의 개개인의 사정은 모두 다르겠지만, 그 집단에서의 특징은 막연한 미래에 대한 기대로 하는 스트레스성 공부와 나의 미래에 대한 기대(불확실하지만 어느정도 가닥을 잡을 수 있는)를 가지고 즐겁게 공부하는 이들이 나누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일반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살펴보면 어느정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이렇게 단순히 앞으로 잘되기 위한 목표없는 미래에 대한 현재의 행동(공부나 일)들은 부패과정과도 같을지 모른다. 허나 사회속에서는 이것이 발효, 성숙이라고 점쳐지기도 한다. 어느시대에나 기성세대와 신세대는 존재한다. 그것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내가 카르페 디엠이라는 시 구절을 설명하기 위해 고등학교 3학년의 예를 든 것은 신세대들과 기성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사실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단 두가지로 나누는것도 흑백논리가 될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기성세대와 신세대에 대한 것이 아닌 카르페 디엠(오늘을 잡아라)라는 말에 대한 생각이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사상차이는 수많은 곳에서 일어난다. 정치, 사회, 연예, 스포츠, 경제 심지어는 연애문제에서 까지 하지만 신세대들은 결국 기성세대로 유입된다. 이때 이들은 자신들이 기성세대에 반발했던 것들을 인정하고 사회안에 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신세대로 등장하는 자신의 자식 혹은 제자 혹은 동생들과의 마찰을 빚게 된다. 하지만 나는 신세대, 기성세대가 서로를 나누게 되는 이 경계선을 허물 수 있는 방법을 카르페 디엠으로 말하고 싶다. 


오늘에 충실하는 것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자신에게 확신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에 충실하고 즐기는 행동은 인간 개개인이 발견해내야 한다. 그것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될 것이고, 그것을 위해 하는 행동 모두가 즐거움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억지로 싫은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모든걸 자포자기하고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것들에 몸을 의지한다. 인간은 무기력해지고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 순간에 누군가에게 현재를 즐기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현재를 잡아라라는 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구분을 넘어 모든 인간이 자신의 현재에 충실하게 된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벽을 허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것은 힘들다. 사회는 이를 용인하지 않으며, 많은 이들을 필요한 방향으로 몰아내기 때문이다. 이 것 때문에 우리는 이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을 알아도 그것을 사회속에서 실천하기 힘든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고 사회에서보다도 더 현실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 ‘것’ 중의 하나는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미술’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다.


카르페 디엠이라는 시 구절의 의미를 가지고 생각해보면 미국의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가 생각난다. 그는 젊은 나이에 휘트니 미술관과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 정도로 주목을 받은 작가이다. 그의 작업에서 많은 이들은 '청춘'이라는 키워드를 읽어낸다. 청춘을 자유로이 기록하는 그의 사진 이미지는 동시대의 문화(일반화하기 힘들지만 발생하고 발전되는)의 에너지를 반영한다. 반항적인 그의 사진은 이성에 충실한 인간의 모습이 아닌 본능과 감정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를 야만적 인간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야만성이 퇴화된 인간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작가의 사진속 인간들은 오히려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보다 한단계 진화한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본능에 충실함으로써 이성적삶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반성적 이미지를 나타낸다. 젊음에서 자유와 모험을 찾고자 하며, 18~27세의 청춘과 함께 하는 그의 작업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젊을때 영혼이 자유롭다. 젊다는 것은 모든걸 버리고 뭔가를 향해 갈 수 있다."



맥긴리의 사진이 가지는 충실한 순간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 몇가지 키워드로 이야기를 해봐야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색과 빛'이다. 그의 색은 개성적이고 자극적이다. 이 색은 우리에게 일상적인 판타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는 완전히 허황된 허상이 아닌 우리 삶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순간이며 이것을 판타지적으로 표현하는데에는 색이 사용된다. 그는 빛을 자신이 좋아하는 감각적인 순간으로 끌어올린다. 그는 자연의 빛의 아름다움을 사용한다. 그의 빛은 인상주의자들의 빛을 연상케한다. 공통점으로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순간적 인상에서 비롯되는 자연적인 빛의 표출일 것이다. 하지만 맥긴리 사진에서의 빛은 그의 각막에 들어온 빛을 인상적으로 처리해 작업할 수 없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징에서 그 차이점이 발생하게 된다. 그는 스스로가 '매직아워'라고 부르는 시간(해뜨기 전 5~6시, 해지기 전 5~6시)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때의 하늘 색은 분홍빛, 짙은 파란색으로 마법과 같은 판타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빛, 색의 조화를 잘 알 수 있는 맥긴리의 사진



라이언 맥긴리 / Blood Falls / 2009 /



라이언 맥긴리 / Fireworks Hysteric / 2007-08 / 



라이언 맥긴리 / Jonas Barn Snow Disco / 2008 / 



라이언 맥긴리 / Morrissey / 2004-06 / 



라이언 맥긴리 / Purple Beacon / 2011 / 




라이언 맥긴리 / Tom(Golden Tunnel) / 2010 / 



그의 사진은 스냅촬영으로 흐르는 시간에서 순간적으로 포착해내는 것이다. 이것은 롹 페스티벌의 열정적 순간 혹은 나체로 불을 피우고 뛰어다니는 청춘의 모습 등 다양하게 등장한다. 스냅 촬영은 1950년대에 완성되어진 모더니즘적 예술사진 표현기법이다. 하지만 순간으로 포착된 그의 사진에서는 현실에서의 넘치는 에너지가 드러난다. 두려워하지 않는 모델들의 자유분방한 성격들은 이 촬영기법과 그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는 순간과 겹쳐저 인간 자체로 원초적이고 순수한 에너지의 집합을 보여준다. 여기서 촬영되는 인간은 나체인 경우가 많다, 나체는 미술사에서 관음적으로 보여왔다 하지만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그 관음성의 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맥긴리 사진에서의 나체란 순수의 에너지,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으로 보여진다. 그것은 전혀 음란하지 않으며 그의 다른 작업요소와 어우러져 개성적이게 된다.


순간의 포착을 잘 알 수 있는 맥긴리의 사진



라이언 맥긴리 / Ann(Slingshot) / 2007 / 



라이언 맥긴리 / BMX / 2000 /



라이언 맥긴리 / Dakota(Hair) / 2004 / 



라이언 맥긴리 / Falling And Flare / 2008 / 



라이언 맥긴리 / Highway / 2007 / 



라이언 맥긴리 / Lily(black eye) / 2005 / 


맥긴리의 작업은 작가 자신이 바라고 꿈꾸는 장면이기에 더 절실하게 관람객의 시각에 호소할 수 있다. 작가는 자기 작업에 대해 체계적으로 건조된 것이 아니라 자기 ‘행동과 연계’되어 즉흥성을 가지고 의식적이지 않은 것이라 한다. 맥긴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울적한 사진을 찍는데 한치의 관심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 사진들이 자서전적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래서 제 삶이 그처럼 와일드하고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런 반응이 좋긴 하지만 제 삶이 그런건 아닙니다. 제 사진들은 저의 환타지-라이프에 대한 기록에 더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진실로서의 사진들을 찍습니다. 그들은 사진들을 들여다보고는 진짜로 일어나고 있었던 순간들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요. 이를테면 제 사진들은 pseudo-fiction입니다. 왜냐면 사진 속의 일들이 실재로 벌어진 것들이기는 하지만 사진을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들이니까요.”


pseudo-fiction이라는 말은 pseudo(인조의라는 의미가 강하게 쓰여진다)와 fiction(상상에 의해 쓰여진 이야기)이 합쳐진 말로서 인조로 만들어진 픽션이라는 말이다. 이는 작가의 작업을 스스로가 정의하는데 중요한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스스로 사진이 가지는 허구의 아이러니를 인정함으로써 그 사진이 전달하는 내러티브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래리 클락, 낸 골딘, 볼프강 틸만스와 같은 작가와 비교되기도 한다. 일상적 삶을 촬영하고 동시대의 문화를 대변했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앞에서 설명해온 특징들은 라이언 맥긴리의 작업을 독특하게 하는 장치다.


지금까지 라이언 맥긴리의 작업세계와 그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았다. 맥긴리의 사진은 젊음, 청춘의 에너지가 표출하는 지점에 머무르고, 그것을 확장한다. 보는이의 시대와 사상에 따라 다르게 느낄법한 이 메시지들은 인간이 향해야 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할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청춘의 에너지와 젊음의 아우라는 어느 세대건간에 현재, 지금, 오늘에 충실한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게 해주기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젊은이들이 그 당시에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며 사진 속에 나타나는 나체로 뛰어나니거나 행위를 하는 것 만이 아닌 지금 자신의 순간과 오늘에서 즐겨야 할 일에 대해 떠올리게 할 것이다. ‘Carpe diem’의 메시지는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을 바꾸기 힘들다면, 스스로 그 상황을 즐기는 룰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에 타협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그 세상 안에서 하나의 개성적 존재로 거듭나게 스스로를 수련해야하는 것이다. 맥긴리의 사진이 던지는 메시지 안에서도 이런 의미가 포함되어있다. 허나 맥긴리의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우려는 무조건적인 감정의 향락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맥긴리의 사진은 ‘쾌락주의’가 아니라 ‘쾌’라는 것 그 자체를 보여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Carpe diem’ 오늘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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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글쓰는 하마


사진 출처 - 뮤움

[하재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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