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사람의 전력으로 모든 걸 채워야 하는 공연 – 피아니스트 조재혁 리사이틀

클래식 취향 쌓기
글 입력 2022.06.16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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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힙합, 락, 펑크, 재즈, 탱고, 아프로팝, 라틴팝, 컨트리, 아카펠라, 판소리까지. 장르 불문하고 꽤나 열심히 음악을 듣는 나에게도 생소한 분야가 있다.

 

어쩐지 평생 넘지 못할 벽처럼 보였던 그것, 바로 클래식. 남들은 무슨무슨 음악가와 악장을 구별하며 기분에 따라 교향곡 몇 번 몇 번을 골라 듣던데. 대체 그걸 어떻게 다 구분하는 건지. 그 긴 음악이 지루하지도 않은지. 유일하게 이해 불가한 영역이 있다면 아쉽게도 클래식이었다.


그럼에도 시대를 불변하고 사랑받는 매력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나도 그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 다만 그 장르에 입문하려 애써 노력하진 않았다. 신기하게도 내 인생의 음악들을 만났던 건 모조리 다 우연이었기에. 언젠가 저것 또한 내 마음을 울릴 날이 올 거란 믿음이 있었다. 나는 여유 있게 기다렸고, 드디어 올해 들어 그 순간이 온 것 같았다. 슬슬 클래식이 재밌기 시작했다.


때마침 딱 알맞은 공연을 볼 기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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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롯데콘서트홀을 찾았다. 뮤지컬 전용 극장인 바로 옆 샤롯데시어터는 뻔질나게 드나들었었지만 클래식을 주로 하는 콘서트홀에 올 일은 자주 없었다.

 

가장 빠른 통로를 찾아 3분 만에 샤롯데에 입성하던 (자칭)경력직의 면모는 어디가고 콘서트홀을 찾아 20분여를 헤맸다. 난 정말 클래식에 가깝지 않나 봐-를 몸으로 체감했다. 길을 헤매는 만큼 공연도 많이 낯설 거란 생각이 어렴풋 들었다.


피아니스트 조재혁의 이번 공연은 그의 쇼팽 음반발매를 기념하는 리사이틀이다. 발라드 제1번부터 제4번까지와 피아노 소나타 제3번, 총 8곡을 수록했다. 인터미션 20분이 포함된 90분의 짧은 러닝타임이었다.


무대는 휑했다. 그랜드 피아노 한 대와 의자. 하지만 월드타워라는 명성에 걸맞게 공연장은 아주 높은 천장을 가진 광활한 곳이었고, 그 공간을 채워야 할 사람은 연주자 단 한 명 밖에 없었다. 한 사람의 전력으로 모든 걸 채워야 하는 공연. 플레이어가 감당해야 할 부담과 그만큼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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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곡 ‘발라드 제1번 사단조, 작품23’은 정중하게 시작됐다. 음계 하나하나 또렷하게 소리 내며 천천히 온도를 높인다. 마치 관객에게 정갈한 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다. 차근차근 속도를 높인 발라드는 중후반부에서 눈 깜짝할 새 격해진다. 오케스트라를 듣는 듯 화려하고 풍성한 음색을 보여준다.


그렇게 첫 곡이 휘몰아치고 나면, 별안간 아주 서정적인 시간이 찾아온다. ‘발라드 제2번 바장조, 작품28’은 날씨를 떠올리게 한다. 검은 안개가 껴있는 습한 강둑을 걷다가 갑작스레 거대한 폭풍우를 마주한다. “섬세하고 조용한 바장조”와 “우울하며 전투적인 가단조”의 대립을 극화시킨 이 곡은, 이중인격이라 칭하고 싶을 만큼 강렬한 대비를 넘나든다. 날씨를 감각케 하는 곡이었고 가장 마음에 들었다.


까마득한 1841년 작품 발표 당시 귀족사회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세 번째 곡은 부드러운 춤곡이다. '발라드 제3번 내림가장조, 작품47'은 온화한 음색이 명랑한 리듬으로 흘러간다. 그 시대 귀족들이 왜 열광했는지 알 것만 같다. 화려한 궁전과 한껏 부풀린 드레스로 가득 찬 사교회장이 떠오른다. 아마 그들의 부와 명예를 꾸미기에 이만큼 알맞은 곡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긍정과 환희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네 번째 곡 ‘발라드 제4번 바단조, 작품52’는 확장성을 보여준다.담백하던 음계가 점점 넓어지며 종국엔 무언가가 터지듯 풍성해진다. 이것은 음계라기 보단 감정의 확장이다. 차분함이 흥분 상태로 넘어갈 때의 그래프를 음악화 시킨 것만 같다. 특히 후반부엔 인간이 흥분에 젖었을 때의 난해함, 복잡함,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감정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요동치는 선율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그는 발라드 네 곡을 무사히 완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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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최근 클래식이 슬슬 재밌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아리송하고 가끔은 지루하지만 그럼에도 자꾸 듣게 되는 건 이런 매력이다. 어떠한 직접적 언어가 없음에도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고 동화시키는 것. 가사가 없기에 곡을 해석할 상상의 여지가 훨씬 넓다. 선율이라는 것을 통해 능숙하게 감정을 증폭시킨다.


난생 처음 클래식에 대한 개별 곡 감상을 적어보며 다시금 느꼈다. 내가 이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종류는 아주 많고 깊다는 것. 특히 우아함을 유지한 채 휘몰아치는 격렬함이 매력적이라는 것.


내가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의 재미를 알게 되는 건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나의 경험과 취향을 적립해나가는 것. ‘나’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이제 적어도 난 ‘클래식은 잘 모르지만 쇼팽의 발라드 제2번 바장조는 꽤 좋아해. 두 개의 정서가 격하게 이동하는데 그게 마치 폭풍이 불어치는 날씨를 떠올리게 하거든!’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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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취향을 발견하게 해준 이날의 공연자에게 감사를 전한다. 진실 된 연주였고 관객에 대한 진심이 담겨있는 태도였다. 그러한 정성 덕분에 나 같은 클래식 문외한도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해본다. 그의 새 음반을 반복재생하며, 훌륭했던 공연에 다시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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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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