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머릿속 한 남성의 이야기 - 피아니스트 조재혁 리사이틀

피아니스트 조재혁 쇼팽 음반발매 기념 리사이틀
글 입력 2022.06.1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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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서 피아노는 뭐라 해도 낯선 존재였다. 물질적인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더 그랬다. 내가 지내왔던 곳에 피아노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 따라 피아노 학원을 다녔고, 집에는 저렴한 값의 전자 피아노가 있었으며, 해외로 나가 살았을 때도 그곳에서 피아노를 구매해 이사할 때마다 들고 다녔고, 이후 잠시 머물렀던 친척 집에도 피아노가 있었고, 지금 독립한 원룸에도 전자 피아노를 빠른 시일 내에 사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묘한 일이다. 나는 피아노에 재능이 없다. 피아노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클래식 곡과 피아노 곡이 있으며 좋아하는 작곡가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예술 분야에서 인상주의를 좋아하는 것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클래식 분야에서 나는 편식이 심하고, 그 편식의 원인으로는 '맛이 없어서'가 아닌 '잘 몰라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는 적당히 일면식만 튼 상태로 오랜 시간이 지난 사람이 더욱 어색한 법이다. 나에게 피아노는 그런 존재였다. 자주 피아노를 치지만 그건 연주보다는 뚱땅거림에 가깝고, 아무리 피아노곡을 들어도 피아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피아니스트 조재혁의 쇼팽 음반 발매 기념 리사이틀에 다녀오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포스터_쇼팽(최종).jpg


피아노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이 거리감을 좁히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나에게 조재혁 연주자의 리사이틀에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감성과 지성을 겸비하고 흠잡을 데 없는 테크닉과 구성력, 뛰어난 통찰력과 과장 없는 섬세함으로 완성도의 극치를 추구하는 매력적인 연주자"라는 평을 듣는 조재혁 연주자에게 호기심과 영문 모를 동경심이 일렁였다. 이 연주자라면 어쩌면 나와 피아노의 거리감을 좁혀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일 콘서트홀에는 프로그램 노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속으로 이러한 배려가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다. 프로그램 노트에는 각 곡에 대한 해설이 적혀있어서 피아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도 곡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속에서 프로그램 노트를 끊임없이 읽었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의 연주는 강인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느릿한 연주는 모두 유약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연주하는 쇼팽에서는, 한 음 한 음 모두가 힘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섬세하게 연주하고 있었지만 그 섬세함이 여림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연주를 분석하지 못한다. 피아노 악보를 보기가 어려워 외워서 연주하는 사람이다. 피아노 용어를 사용해서 말하려 노력해도 도저히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때때로 무지한 사람은 엉뚱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대신 나는 연주를 듣는 내내 한 중년의 남성과 그의 삶을 떠올렸다. 그의 연주를 들으며 내가 느꼈던 감정은 '폭풍우 같다'였다. 내 가슴속으로 연주가 휘몰아친다고 생각했고, 그의 연주와 함께 내 머릿속에 떠오른 남성도 폭풍우 같은 남성이었다. 흐릿했던 그 남성은 조재혁 연주자의 연주를 들을수록 내 머릿속에서 점점 선명하게 변해하고 있었다.


첫 연주곡이었던 '발라드 제1번 사 단조, 작품 23'에서는 한 신사가 떠올랐다. 분명 다정하고 진중하고 젠틀한 신사다. 그러나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부드러움보다도 나도 모르게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감히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상대가 눈앞에 서서 나에게 친절히 대해주는 느낌 속에서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이러한 괴리감은 '발라드 제2번 바장조, 작품 38'를 들으며 더욱 강해졌다. 잔잔한 호수를 떠올리게 했다. 사람 하나 없는 녹음 진 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의 아름다움이었다. 어쩌면 그 신사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처음 발을 내딛는 곳에서 느끼는 두려움이 그 아름다움 속에서 잔잔히 내포되어 있었다. 묘하게 긴장하던 그때, 순식간에 그 잔잔함이 깨졌다. 마치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처럼, 순식간에 고함을 지르고 스스로에게 이기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만 같았다. 이후에 다시 잔잔해졌으나 이미 과거의 아름다움은 순식간에 조각이 나있었고, 이제는 눈앞에 보이는 (사실 귀로 들리는) 아름다움은 그저 폭풍 전 고요함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잔잔한 긴장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발라드 3번 내림가장조, 작품 47'에서는 그나마 그 남성이 사람들 틈에 섞여 즐거움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듯 보였으나 그 또한 계속해서 멀미를 느끼는 듯했다. 마치, 기쁨 등 긍정적인 감정을 다시금 떠올리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 노력 속에서 점점 더 위태로워지는 느낌이었다. '발라드 4번 바단조, 작품 52'에서는 '발라드 3번 내림가장조, 작품 47'에서도 결국 완전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인생에 대한 슬픔을 떨쳐내지 못해 그 안에서 외로워하다가, 그 외로움이 고독함과 함께 폭발하여 결국 한 남성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마치 뜨거운 것에 데인 듯 녹아내려 끈적하게 바닥과 들러붙어가며, 부디 스스로를 구원해달라고 소리치는 남성이 떠올랐다.


이제 내 머릿속에서 처음의 젠틀했던 남성은 사라져있다. 그의 젠틀함은 스스로의 신경증을 남들에게 숨기기 위해 꾸며진 허울뿐인 완벽함이었고, 그런 그의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내면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면에도 불구하고 그 남성은 죽지 못하고 순간순간을 버텨내며 내 앞에 두 발로 서있었다. 강인하게. 그 강인함 속에서 연주를 듣는 내내 압도된다는 생각을 하다가 연주가 끝나고 나서야 숨을 몰아쉬었다.


역시 나는 피아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이렇게 공연에서 연주를 듣고 그 연주의 대단함을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결국에는 엉뚱한 생각을 해버리고 만다.

 

집에 돌아와서 다른 연주자의 쇼팽 연주를 들었다. 아무리 들어도 내가 공연장에서 만났던 한 남성을 다시 마주할 수는 없었다. 이것이 연주자간의 차이인 것일까. 이 남성이 내가 조재혁 연주자의 연주에서 찾아낸 특별함인 것일까,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피아노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이야기와 인물을 만들어내는 나의 감상법은 누군가에게는 매우 우스울지도 모르나, 나에게는 또 색다르고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리고 매우 이상한 방향일지도 모르지만, 내 안에서 피아노가 아주 조금은 덜 어색한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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