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손끝으로부터 - 피아니스트 조재혁 리사이틀

글 입력 2022.06.1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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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쇼팽(최종).jpg


 

피아니스트 조재혁은 내게 개인적으로 친숙한 연주자이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부모님을 둔 덕에 집에서 늘 클래식 라디오를 틀어두곤 하는데, 가족들이 즐겨들었던 프로그램인 KBS 클래식FM <장일범의 가정음악>을 통해 오랫동안 조재혁 연주자의 목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올해 그의 '쇼팽 발라드' 음반 발매를 기념하는 리사이틀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다녀왔다. 이번 공연은 쇼팽의 발라드 전곡과 피아노 소나타 3번을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여서 더욱 기대가 컸다.

 

 

 

조재혁의 손끝으로 그려낸 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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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이자 오르가니스트인 조재혁은 연 중 60회 이상 무대에 오를만큼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연주자이다. 1993년 뉴욕의 프로피아노 영아티스트 오디션 우승을 계기로 카네기홀 와일 리사이틀 홀에서 데뷔한 이래, 조재혁은 북미와 유럽에서 꾸준한 연주활동을 펼쳐왔다.

 

국내에서도 독주회와 실내악, 오케스트라 협연, 렉쳐 시리즈 등 다양한 연주활동 외에 음악과 타 예술분야와의 결합에도 관심을 가져 국립발레단, 일루셔니스트 이은결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한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피아노를 위해 일생을 바쳤던 쇼팽은 피아노라는 악기만이 가지는 최대치의 잠재력을 고려한 곡을 작곡해 피아니스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손꼽힌다. 그 중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히는 쇼팽의 발라드와 소나타 3번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연주자들에 의해 무대 위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는 레퍼토리이다.

 

조재혁은 그에게 있어 첫사랑이자 마음의 고향과 같은 쇼팽의 음악을 녹음하는 이번 작업에 큰 감격과 기대감으로 임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번 음반과 공연을 통해 본인만의 음악적 개성을 입힌 쇼팽을 선보이고자 노력했는데, 그 노력의 일환으로 시도했던 것이 음반에 진정한 '라이브' 연주를 담아내는 것이었다. 한 곡을 짧은 구간으로 쪼개 여러 번 반복해서 녹음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자유롭게 연주한 뒤, 가장 마음에 드는 버전을 음반에 담아내었다.

 

듣는 이가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자 했던 쇼팽의 의지처럼, 조재혁 역시 그만의 자유로운 숨결로 개성 넘치는 쇼팽을 풀어냈다. 피아니스트 조재혁의 손끝이 그려낸 쇼팽의 음악은 어떤 이미지였을까.

 

 

 

멜로디로 전하는 장대한 서사


 

201212_JHCHO__732_H RT2ⓒMJ Kim.jpg

 

 

공연의 전반부는 쇼팽의 발라드 전곡으로 채워졌다. 발라드는 중세 시대에 탄생해 14~15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던 장르로, 전설이나 영웅담과 같은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후 차츰 잦아든 발라드 장르의 부활시킨 것이 바로 19세기의 쇼팽이었다. 쇼팽은 총 4개의 발라드를 작곡하였는데, 그의 친구이자 시인인 미츠키에비치의 시에 담긴 장대한 서사를 순전히 화성과 멜로디만으로 전하고자 했다.

 

눈을 감고 공연장 안에 풍부하게 울려퍼지는 조재혁의 쇼팽 발라드 연주를 감상하고 있자니, 개성 넘치는 쇼팽을 선보이겠다던 그의 의지가 귓가에 와닿는 듯 했다. 특유의 힘 있고 담백한 터치가 만들어내는 청량한 음색, 그러면서도 작은 음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섬세함이 느껴졌다.

 

발라드 1번에서 4번까지 쉼없이 이어지던 연주는 후반부에 이를수록 점차 하나의 서사를 갖추며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특히 상당한 난곡으로 손꼽히는 마지막 발라드 4번에 이르자 소나타, 론도, 변주곡의 다양한 형식이 풍부한 음을 만들어내며 곡을 점점 확장해나갔다. 이윽고 클라이막스인 코다 부분에 다다르자, 극으로 치달은 격렬한 테크닉과 감정 표현이 대단한 몰입감을 자아냈다.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되는 마무리였다.

 

인터미션이 끝난 뒤 소나타 연주가 이어졌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은 기교적으로나 음악적 해석의 측면에서 봤을 때 가장 어려우면서도 웅장한 규모의 곡으로 알려져 있다. 쇼팽이 남긴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곡은 고도의 음악성과 예술성이 돋보인다.

 

총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소나타 3번의 연주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었다. 1악장은 마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듯 장엄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시작하지만, 그 안에 나타나는 멜로디에서는 쇼팽만의 정서가 드러났다. 매우 빠르게 시작된 스케르초의 2악장에서는 달콤함과 포근함이, 이어지는 3악장에서는 마치 시공간을 벗어난 듯한 쇼팽 특유의 서정성이 느껴졌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클라이막스로 향하며 점차 확장되는 에너지를 느끼며 마치 승리에 도취된 듯한 벅참을 경험할 수 있었다.

 

 

 

관람 경험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공연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연주자와 관객의 몰입감이 함께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직 피아노 한 대로 공연장을 여백없이 메우고, 수많은 관객들을 소리 속으로 침잠시키는 연주자의 노련함에 감탄하며 길고 긴 박수를 보냈다.

 

무려 세 차례의 앙코르 공연을 선물하며 그때마다 환한 미소로 인사하던 조재혁 피아니스트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얼룩없이 맑아보였던 그의 웃음에서 읽히는 음악과 공연에 대한 연주자의 진심이 이 날의 관람 경험을 한층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언젠가 새로운 곡으로 다시 만나게 될 그의 연주를 기대하게 된다.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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