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택 미련 용기 [문학]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글 입력 2022.06.1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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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피천득 역

 

 

어렸을 적 이 시를 보고서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이 시의 가장 큰 주제는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미련’이라고 느꼈고, 그 감정을 노래하는 시의 내용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다시 이 시를 읽어보니 이 시가 ‘미련’과 함께 ‘용기’를 노래하는 시로 다가왔다. 그러자 시가 주는 의미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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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련 


 

이 시에서 ‘미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바로 마지막 연의 ‘한숨’이라는 말이다. 시의 화자는 먼 훗날 한숨을 쉬며 자신의 선택을 돌아볼 것이라 말한다. 사람이 과거를 돌아보며 한숨을 쉴 때에는 많은 감정이 뒤섞여있을 것이다. 후회, 회한, 추억, 기억, 아련함, 슬픔, 미련 등등. 시의 앞부분에서 화자가 소신 있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것에 비해 나약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한 번 선택한 삶을 왜 자꾸 뒤돌아보냐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한숨’을 쉬어서 이 시는 인간적이다. 미련 혹은 후회라는 감정은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겪어본 감정이다. 언제나 확신에 찬 인간에게 다른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을까. 오히려 소신 있는 선택을 했어도 가끔 뒤를 돌아보며 미련이나 후회를 느끼는 사람이 조금 더 사람답게 느껴지지는 않는가. 미련까지는 아니어도, 앞만 보고 평생을 달려가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선택을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어두며 가끔 꺼내 보는 사람의 마음에 조금 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후회를 느낄 수 있는 두 번째 부분은 바로 제목 ‘가지 않은 길’이다.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이 시는 ‘가지 않은 길’만큼이나 자신이 선택해서 ‘간 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두 갈래의 길 중 제목을 차지한 길은 ‘가지 않은 길’이었다. 왜 ‘내가 택한 길’이 제목이 아니라 ‘가지 않은 길’이 제목일까? ‘가지 않은 길’이라는 제목에는 화자의 미련이 묻어있다. 자신이 택하지 않은 길은 영영 알 수 없는 길이고, 그 때문에 상상의 폭이 무한대로 확장된다.

 

자신이 선택한 길은 잠시 한쪽에 두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길을 떠올리는, 그래서 찰나의 순간 선택하지 않은 길이 선택한 길보다 더 강렬하게 마음속에 자리 잡는 ‘미련’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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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용기


 

그러나 주의할 점은 이 ‘한숨’, ‘미련’이 ‘절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시가 어떤 길을 선택해도 후회할 것이니 인생은 고통과 절망의 연속이다, 나의 선택은 가치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2-1 용기를 보여주다 - 오히려 ‘한숨’은 화자의 선택이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는 말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화자는 먼 훗날 자신이 한숨을 쉬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하나의 길을 선택하며, 심지어 남들이 많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다. 자신의 선택 결과로 미련이 동반된다고 하더라도 그 길을 꿋꿋이 선택하는 사람은 얼마나 용기가 있는 사람일까. 미련이 화자의 선택에 오히려 용기를 더하는 방식은 절묘하고 매력적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화자의 태도는 인간적인 동시에 실존주의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시지프는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굴리는 형벌을 받는다. 바위를 꼭대기에 올리는 순간 그 돌은 다시 산비탈을 따라 굴러떨어진다. 그렇게 시지프는 무한히 바위를 굴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시지프는 이러한 형벌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는 그 형벌 자체를 자신의 의지로 수행하고, 그 행위를 형벌이 아닌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으로 만들어버린다. 주어진 부조리한 형벌을 오히려 최선을 다해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어내면서, 그것은 더 이상 형벌이 아니게 된다. 그러자 그는 ‘행복한 시지프’가 된다.

 

시의 화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어쩌면 굉장히 부조리한 상황, 부조리한 삶 속에 놓여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코 가지 못한 길이 있을 테고, 결국은 과거를 돌아보며 한숨을 한 번쯤은 쉬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스스로 나아갈 길, 그것도 쉽지 않은 길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다. 남이 정해주는 길을 가거나 제자리에서 주저앉지 않는다. 묵묵하게 뚜벅뚜벅 삶의 부조리함을 느끼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선택해 나아간다. 이러한 화자의 모습에서 실존주의적인 삶의 용기를 찾아볼 수 있다.

 

2-2 용기를 전하다 - 그러한 화자의 선택은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도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과감히 선택해서 가는 화자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공감, 위로, 그리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후회를 사람이 있을 때 사람들은 슬픔을 나누고, 공감하고, 위안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화자의 복합적인 마음, 그럼에도 하나의 길을 택하는 화자를 보며,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 삶을 살아가는 자신도 그렇게 용기를 내어 묵묵히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한숨이 아이러니하게도 용기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무엇을 선택하든 당신은 한숨을 쉬게 될 텐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떠올리게 될 텐데. 바로 그래서,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지금 이 갈림길에서는 정말 원하는 길을 선택해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을 선택해도 다른 하나에 대한 미련이 남기 마련이라면, 과감하게 조금 더 끌리는 쪽을 선택해보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밝고 환상적인 미래를 속삭이는 대신 아주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미련에 대해 이야기하는 점이 오히려 더 현실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숨’을 쉬는 화자의 모습을 통해 인간적인 한계를 느끼고, 그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어차피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영영 알 수 없는, 그래서 그것에 대한 미련을 갖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생에서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하나의 길을 용기 있게 선택하는 모습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또한, 단 두 가지의 선택지가 놓인 부조리 속에서도 주체적인 힘으로 하나의 길을 선택해 개척하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은 얼마나 가치 있는가.


2-3 용기를 칭찬하다 - 그런데 생각해보면, 화자가 두 가지의 갈림길 사이에서 꿋꿋하게 선택해 나아가는 모습이 과연 화자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은 매번 선택하고, 후회하고, 그래도 또 선택하고 이런 모습이 바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시는 화자만의 특별한 이야기이기보다는 사실은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의 보편적인 모습과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며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그렇다면 시에서 나타나는 있는 화자의 용기는, 사실은 이미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가지고 있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시는 단순히 화자의 용기와 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를 읽는,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의 삶과 용기를 조명하고 있다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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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무리


 

이렇게 보면 이 시의 화자는 (1) 자신의 용기를 보여주면서 (2)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동시에 (3)선 택의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의 용기를 칭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용기'는 '미련'이라는 인간적이면서도 용기와 상충하는 듯한 감정과 만나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무르익고 깊어진다.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제목이 '가지 않은 길'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다시 한번 참 절묘하다. 결국 우리의 모든 삶을 위한 몸부림은 미련과 부조리 속에 놓여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용기 있게 선택해도 마음속에 가장 크게 남은 길은 가지 않은 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결국 사람들은 또 자신의 손으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삶의 굴레와 그 안에서 교차하는 수많은 감정, 선택들이 단순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이 시에 녹아있다.

 

미련과 용기 무엇 하나만으로 규정하기에는 삶이 너무나 복잡하다. 그 복잡함, 삶의 회한, 삶의 다채로움이 이 시에 녹아들어있는 것 같아 좋았다. 선택의 과정에서 한 사람이 겪는 일들과 마음속에 새겨지는 감정, 두고두고 남을 기억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무엇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 상황, 어쩌면 그것이 바로 인생이고 문학이고 필자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삶에는 어떤 선택, 미련, 그리고 용기가 있었는가.

 

 

[정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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