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기록으로 속기 쉬운 속기록]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수다와 함께 수다 떨기, '펄프픽션' 영화모임

아트인사이트 소모임의 기록
글 입력 2022.07.1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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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기록으로 속기 쉬운 속기록은 속기술로 적은 속기록(速記錄)이라기보다는 아트인사이트 소모임에 참여해주신 에디터분들의 속 이야기를 담은'속'기록에 가까운 내용입니다. 영화 모임이라는 특성에 맞춰, 시나리오의 형식을 흉내내어 괄호 안에 비언어적 표현들을 추가하여 모임의 현장을 생생히 담도록 노력했습니다.

 

 

 

펄프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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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식당에 두 남녀 건달이 손님을 상대로 강도행각을 벌이는 사건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암스테르담에서 돌아온 빈센트는 동료 건달 쥴스와 함께 건달 두목마르세러스의 금가방을 찾기 위하여 다른 건달이 사는 집으로 찾아간다. 건달들의 일상의 대화 속에 이들의 생활이 진솔하게 그려진다. 쥴스는 마르셀러스를 속인일당을 죽일 때 성경 구절을 암송한다. 그러나 이 사건도 중간까지만 전개되고 다음의 에피소드로 넘어간다. 마르셀러스는 부치를 불러 5라운드에서 상대 선수에게 져 주라고 돈을 건네준다. 한편, 빈센트는 마르셀러스의 부탁으로 마르셀러스의 아내 미아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미아가 약물과다 복용으로 죽어가는 것을 천신만고의 노력으로 구해낸다. 부치는 어렸을 때 증조 할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시계의 내력에 관한 꿈을 꾸고는 마르셀러스와 맺은 약속을 지키기는 커녕 상대 선수를 때려 눕혀 결국 사망에까지 이르자 도망친다. 마르셀러스는 부치를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리고, 부치는 애인 화비안과 도망을 가려는 중 자신에게 남다른 사연과 내력이 있는 시계를 두고 온 것을 알고는 살던 아파트로 향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소개

 

 

박호연: 말도 안 되는 전개나 주요 등장인물의 갑작스러운 퇴장 때문인지, <펄프 픽션>에서는 일반적인 범죄 영화의 핵심 정서라고 할 수 있는 ‘가오’가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처럼 보이던 빈센트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고, 무시무시한 범죄 조직의 수장인 마르셀러스는 불쑥 등장한 의문의 사나이에게 납치 강간을 당한다. 앞에서 잔뜩 무게를 잡다가도 중요한 순간 자빠지는 탓에,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헐렁하고 나사 빠진 사람들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범죄 영화에서 나타나는 남성성은 이 영화에선 오히려 조롱의 대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우스울지언정 한심하게 보이지 않는 건, 이들이 이상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감독이 만든 짓궂은 상황과 선택지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별 것 아닌 신념, 혹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그런 점에서 ‘항문에 숨겨서 보관한 금시계’는 이 영화의 정서를 함축하는 소재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영화 속 인물들은 이상하면서도 멋지고, 진지하면서도 가볍고, 마초적이면서도 찌질하다. 인물들은 시종일관 진지하지만, 지켜보는 우리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진지한 내용에 그렇지 못한 관객들, ‘펄프 픽션’이라는 제목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영화가 또 있을까?

 

박세나: 싸구려 불량식품의 맛이 나는 영화. 온종일 등장인물들의 수다가 이어지지만, 그 의미를 일일이 파악할 필요도, 선명한 주제의식을 찾으려 할 필요도 없다. 종종 알 수 없는 타이밍에 멍청한 행동을 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헛웃음을 짓고, 무작위로 배치된 씬에 어리둥절하고, 위트 있는 대사들에 박수를 보내면 되는 것이다. 긴 러닝타임을 지나 영화의 맨 마지막에서야 오프닝 시퀀스와 퍼즐처럼 맞춰지는 이야기에는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감상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영화였다. 아름다운 미아(우마 서먼)와 빈센트(존 트라볼타)가 트위스트를 추는 장면이 자꾸 떠오르고, 그 뒤에 깔리는 음악 ‘You Can Never Tell’이 귓가에 반복적으로 맴돌 뿐이다.

 

윤지원: 펄프 픽션이란 질 낮은 펄프에 찍어내는 소설을 의미하며, 싸구려라는 인식이 강하다. 동명의 제목으로 이를 차용한 영화, 『펄프 픽션』 의 초반부에 이러한 정의를 설명해주었기 때문에 해당 영화 또한 흔히 말하는 ‘B급 감성’의 영화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만의 특징인 다양한 영화로부터의 오마주를 싸구려로 표현했을 뿐, 오히려 세련된 영화로서 이 영화는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다. 시간 순서가 맞지 않는 씬의 배열, 유혈이 낭자한 느와르, 퇴폐적인 환경에 노출된 캐릭터의 이야기 등 최근 영화 산업에서 찾기 어려운 독특함을 가진 영화라서 영화를 감상하면서 느낀 신선함과 함께 몰입하게 되었다. 특히 시간의 흐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씬의 짜맞추기는 보통 영화의 흐름에 커다란 결점이 될 수도 있는데도 오히려 캐릭터 개개인에게 더 몰입할 수 있게끔 짜맞춰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에 맥거핀을 설정해 이 영화를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 것은 『펄프 픽션』 을 감상하며 느낀 가장 큰 충격이었을 정도이다. 

 

영화 감상을 끝낸 후 영화의 주제에 대해 한참 생각해보았는데, 잘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며 든 가장 큰 의문이다. 결국 전하고자 한 건 무엇일까? 정말 ‘펄프 픽션’의 정의에 알맞게 연작 단편의 모음인가, 하는 추측이 남았다. 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 대해서도 찾아보았는데 워낙에 영화광이기 때문에 각 작품 별로 편집 기법도 다르게 사용한다는 의견을 찾을 수 있었다. 이를 테면 『킬 빌』 시리즈는 동양 무술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 장면 기법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펄프 픽션』 에서는 어떤 기법이 어떤 장면에서 사용되었을 지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해졌다. 리키 넬슨과 마릴린 먼로로 추측되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펄프 픽션』 을 통해 90년대 특유의 세련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선 영화 자체에 대한 공부,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게 된 경험이었다.

 

 

 

속기록이라고 속기 쉬운 ‘속’기록



대담참여자: 1, 2, 3  (편안한 대화를 위해 실명을 사용하지 않고 숫자로 표기합니다.)

 

 


S#1. 실내, 회의실 – 저녁


 

모임을 시작하며

 

1: 원래 한번에 이해되지 않는 영화를 찾아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저는 맨 처음에 펄프픽션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가 나오는 부분부터 매력을 느끼면서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중간에 주인공으로 보이는 인물이 죽었을 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중간에 영화를 멈추고 찾아봤어요. 그때 시간 순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재밌는데?' 하면서 다시 돌려봤죠. 저는 그러한 배치가 영화에 대해 깊이 있게 파헤쳐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2: 저 역시 영화가 시간의 흐름 순으로 배치가 되어 있지 않아서 처음에는 굉장히 낯설었는데요. 원래 폭력적인 장르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아서 그 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해하느라 시간이 걸려서인지 저는 처음부터 너무 재밌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호평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3번님도 감상평에 처음 봤을 때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하셨잖아요. 그거 보면서 공감했어요. 지금 제가 그래요.  

 

3: 예전에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왜 아직도 이 영화를 안 봤냐고 타란티노 감독의 최고작이라며 호들갑을 떨어서 약간 그런 마음으로 본 것 같아요. 어디 얼마나 명작인지 보자는 심산이었죠. (웃음) 그런데 처음에는 복잡한 스토리라인과 갑작스러운 전개 때문인지 영화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 모임에 참석해서 이 영화가 영화사에 길이 남은 이유를 알아보고 싶었어요.  

 

2: 저는 3번님께서 해주신 질문들을 살펴보며 '아, 이런 부분이 매력이었지.' 하면서 그제서야 좀 영화 내용을 제대로 복기해본 것 같아요. 재관람 때 영화의 매력을 확실하게 발견하신 것 같았어요. 그게 뭐냐면... (종이를 넘기며) 첫번째 질문이었는데요.  

 

 


S#2. 실내, 회의실 – 저녁



Q. 저는 이 영화가 기존의 형식(특히 범죄 영화의 클리셰)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어떤 부분들이 그렇게 느껴졌는지 여쭤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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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 같은 경우는 범죄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껏 봤던 그런 종류의 영화에서는 우선 불량배가 있고, 그가 위협을 하고자 총을 들고 사람들을 협박하는 전형적인 모습들을 목격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표면적인 모습만 봤을 때는 사실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거든요. 하지만 그런 부분이 있다면 성경 구절을 암송하는 부분이었어요. 원래였으면 누군가를 죽일 때도 과거의 잘못이라던가 그런 것을 나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레옹」 같은 영화도 주인공이 살인 청부업자라는 그 내용에 맞춰서만 사건이 전개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기서는 살인을 저지르기 직전에 성경 구절을 읊는 점이 보통의 범죄 영화와는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런 지점이 대사 센스로 느껴지기도 했고요.

 

3: 일반적인 범죄 영화에서는 보스 같은 인물들을 굉장히 무게를 잡으면서 등장하고 주인공처럼 보이는 인물은 대부분 끝까지 살아서 목적을 달성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주인공처럼 보였던 빈센트가 전혀 뜬금없는 시점에 생을 마감하죠. 왜, 흔히 가오를 잡는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런 것들이 되게 적극적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뜬금없는 소품들도 많이 등장해요. 저는 보스랑 권투 선수 부치랑 납치를 당한 상황에서 부치가 빠져나가다가 다시 보스를 돕는 장면이 재밌었어요. 그때 저는 당연히 총을 집어서 내려올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일본도를 집는 장면을 보면서 예상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2: 저도 거기서 의아했어요. 처음에는 유혈이 낭자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서 칼을 선택했나? 싶었는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되게 많이 받았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모르는 어떤 오마주 장면일수도 있겠다고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그게 「킬빌」에서 엄청 두드러진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잔인한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 못 봤어요.

 

1, 3: 맞아요.

 

2: 보셨어요? 어떠셨어요?

 

1: 중간중간만 봤어요.

 

3: 킬빌 1을 보면 거의 후반부 통째로가 완전 일본 액션 영화처럼 연출이 되거든요. 상황도 그렇고, 장소도 그렇고. 그래서 저도 그 생각이 많이 났던 것 같아요. 되게 재밌어요. 그런데 유혈이 낭자한 장면이 「펄프픽션」보다 훨씬 더 많이 나와요. 그런 종류의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들 좋아하셨는데, 잔인한 거 싫어하시는 분들은 또 꺼리셨던 것 같아요.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1: 부치라는 인물 자체가 클리셰의 파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편견일수도 있지만 보통 어릴 적에 아버지의 유품을 받거나 하는 경우에는 히어로가 되거나 선하게 성장하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부치는 사기 권투를 하고 또 거기서도 반항을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부치라는 인물이 선함과 악함의 클리셰를 깼다고도 생각을 했어요. 반면에 그의 연인은 전혀 상반된 순한 사람이었잖아요. 저는 그게 범죄 영화에 갖고 있는 편견을 이렇게도 연출할 수 있다고 감독이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3: 1번님이 말씀하시니까 저도 킹스맨 도입부가 생각나요. 보통 아버지의 이력에 대해 들은 아들이 그 대를 잇고 올바른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것을 생각해보니까 되게 다른 느낌이기도 하네요. 그리고 저는 굳이 범죄영화가 아니더라도 이 영화 자체가 그냥 일반적인 영화와 어떤 점이 다른지를 이야기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2: 그 부분에 대해 3번님의 생각이 궁금하긴 하네요.

 

3: 보통 총 쏘기 전에 그렇게까지 장황하게 연설을 늘어 놓지는 않잖아요. 그런 부분 하나하나가 신선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처음에 치즈버거 이야기할 때, 인물이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싶었거든요. 그러다가 갑자기 총을 꺼내들고, 그래서 이게 무슨 전개인가 싶었어요. 모든 장면이 예측 불허했던 것 같아요.

 

1: 저도 범죄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일반적인 영화와 비교해서 생각을 해봤는데, 그 장면이 떠올라요. 자기 편을 실수로 총으로 쏴 죽이잖아요. 조직 폭력배라고 함은 보통 되게 치밀하고 깔끔한 사람들인데, 빈센트의 덜렁대는 성격과 그런 실수들, 그리고 그런 험악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지인 집에 방문해서 지인의 아내가 오기 전까지 유혈의 흔적을 정리하기 위해 쩔쩔매는 장면을 보면서... 어? 이게 아닌데? 했던 것 같아요.

 

2: 듣다보니 떠오른 게 있는데, 어떤 상황에 대해 일반적인 영화라면 어떻게 흘러갈지, 혹은 해당 영화의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흘러갈지를 비교해서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해볼까요? (웃음)

 

3: 저는 그 말을 들으니까 딱 생각난 게 부치의 여자친구가 도망칠 때 아버지의 유품인 시계를 챙겨오지 않았다고 다시 찾으러 가잖아요. 그때 딱 '저거 집에 가지러 갔다가 무조건 총 맞는다'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2: 맞아요. 맞아요. 저도요.

 

3: 그런데 심지어 암살하러 온 사람이 총을 놔두고 화장실에 갔다가 살해당하죠. 그런 지점들이 예측불허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1: 저는 미아랑 빈센트가 춤추고 나서 집에 들어오는 장면이요. 보통 그러면 둘이 밀회를 하다가 들켜서 빈센트가 하극상을 일으키고 새로운 조직 보스가 되겠지 싶었는데 전혀 다른 전개여서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암만 생각해도 보스인 마르세데스가... 험한 일을 당한 것이 가장 예상 밖이었어요. 아니 저는 그래서 그때 잠깐 끄고 한 10분 정도 고민했거든요. (쓰읍 소리를 낸다) 이게 맞을까 싶어서... 

 

(일동 폭소)

 

3: 정말 예상도 못했어요. 보통 일반적인 액션 영화 보다보면 주인공 둘이서 추격전을 할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휘말려서 다치는 장면들이 있잖아요. 여기서도 두 사람이 한 상점에 들어갔을 때, 아... 무고한 가게 주인 한 명이 죽겠구나 싶었는데 반대가 되어버리니까, 진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썼을까 궁금해지긴 하더라고요.

 

 


S#3. 실내, 회의실 – 저녁



2: 타란티노 감독은 폭력을 미화했다는 비난을 자주 듣는다고 알고 있어요. 폭력의 용인하는 것에 있어서 사회적인 영향 등을 따져가며 영화를 만들지 않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논란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대부분의 영화들이 폭력적인데 그런 장면을 만드는 것에 대한 타당한 근거가 없다 보니까.  

 

3: 저도 이 감독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장면들에 어떤 당위성이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이것이 꼭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를 생각해봤는데 사실 저는 아직까지는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말초적인 쾌감 말고는 굳이 이런 장면이 있었어야 했을까? 의문이 드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그것이 감독의 스타일이라면 또 스타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비난도 어떤 면에서는 타당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1: 저 역시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감독의 스타일일수도 있겠지만 상업 영화고 관객들에게 돈을 받는 입장인데,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끼면 감독의 재량으로 그것을 좀 방지해야하지 않나 생각해요. 또, 왜 그런 연출을 하는지를 생각해보니 감독이 느와르 쪽에도 관심을 가졌다고 하더라고요. 피 흘리고 누군가를 죽고 죽이는 장면들이 전형적인 80~90년대 홍콩 느와르 작품들과 흡사하다고 느꼈어요.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S#4. 실내, 회의실 – 저녁



Q. (도대체) 영화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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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는 굳이 주제를 찾자면, 폭력은 쓸데없는 것이다. 폭력 쓰지 마라. 뭐 이런 주제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감독이 애초에 주제를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아요. (웃음) 「펄프픽션」이란 제목도 크게 생각을 하고 지은 것 같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어요. 감독이 일단 B급에 자신이 있어서 B급 느낌 낭낭한 영화를 만들고, 제목을 구상하다가 질 낮은 펄프에 찍어내는 소설을 의미하는 '펄프픽션'이라고 이름 붙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3: 저도 이것에 대한 해석을 조금 찾아봤어요. 그런데 다들 포스트 모더니즘 이야기를 무척 많이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주제가 없는 것이 주제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서사도 마음대로 비틀고, 클리셰도 파괴를 해놓고 전형적인 영화들과는 다른 점이 이 영화의 주제라고 말하는 글들을 읽었어요. 그런데 이제 2번님께서 말씀하신 폭력과 연관 지어 생각해본다면, (포스트 모더니즘과는 거리가 있지만) 폭력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굉장히 편리한 수단이잖아요. 그냥 집에 찾아가서 총으로 갈겨버리면 쉽고 빠르게 문제가 해결됐죠. 그런데 중간부터 마지막은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도 쉽게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진행돼요. 이후 결말부근에서는 총과 총 사이에서 대치상황이 벌어지다가 누구도 피 흘리는 사람 없이 마무리가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전반적으로 폭력이라는 것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마음대로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그 성찰도 나름 단계별로 의미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도 이렇게 말은 하지만, 주제가 없는데 주제가 있는 척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조금 더 동의하는 것 같긴 해요. 

 

1: 저는 감상문에 연작 단편의 모음이라고 표현을 했는데요. 마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인물들은 계속 중복이 되는데 이야기는 달라지잖아요. 거기서도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나 슬픈 수신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긴 하지만 연작의 모험이라는 점에서 완성도가 더 높아지잖아요. 오히려 이런 연작의 모험이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로써 사람들에게 단순히 오락성도 줄 수 있고시간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3: 단편들이 모여서 또 나름의 유기성을 갖게 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신거죠? 

 

1: 네, 그러면 3번님이 말씀하신 나름의 단계라는 것과도 좀 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3: 그러네요. 어찌보면 저는 그렇게 의미를 더 찾은 것이니까... 근데 이렇게 생각하니 주제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정말 모르겠네요. 

 

2: 그러니까요. 

 

3: 오기 전에 영화에 관련된 유튜브 영상을 하나 봤어요. 이 영화를 나노 단위로 분석하셨더라고요. 어느 정도였냐면 이 영화에서 쓰인 욕까지도 일일히 분석하고 공을 들여서 해석을 하셨어요. 저는 그걸 보면서 감독이 아무런 의도 없이 만들었는데 이렇게까지 해석하는 것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리고 어찌보면 그런 현상이야말로 진짜 '펄프픽션'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감독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툭하고 던졌는데 사람들이 마음대로 황금 종려상을 주고, 이 영화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라고 이야기한거죠.

 

1: 저도 3번님과 똑같이 느꼈거든요. 과연... 이 감독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화를 분석하는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망설이며) 영화광인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봤던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오마주했는데 사람들이 박수 쳐주니까 얼떨떨한 것이 아닐까... 

 

(일동 폭소) 

 

3: 이게 황금종려상까지 받았잖아요. 우리보다 훨씬 영화력이 뛰어난 심사위원분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나름대로 가치가 있으니까 그렇게 큰 상을 줬을 거 아니에요. 심지어 그 해에 다른 후보들도 쟁쟁한 사람들이었는데, 이 영화가 이걸 제치고 황금 종려상을 받았다면 분명히 뭔가 그만한 엄청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면서 어쩌면 세상이 나를 상대로 깜짝 카메라를 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 저는 다양한 연대별로 영화를 보는 편이에요. 그런데 주제를 알 수 없는 것보다는 주제를 캐치하기 쉬운 어렵지 않은 영화들을 좀 많이 보는 편이었어요. 예를 들면 타이타닉이나, 포레스트 검프, 굿 윌 헌팅 같은 영화들 있잖아요.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기도 하고 주제 자체도 대중성이 짙은 주제죠. 근데 이렇게 상까지 받은 영화의 소재가 마약, 범죄 등등이라 확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3: 약간 그런 거일까요. 불량식품 먹으면 갑자기 확 맛있게 느껴지듯이

 

1: 그런 것 같아요. 처음에 이 영화가 나왔을 때 영화사에서 감독이 필름 순서를 제대로 못 맞춘 줄 알고 다시 재배열해서 그 영화사에서 했다고 해요. 근데 이 감독이 몹시 흥미로워 하면서 그 필름을 너무 갖고 싶다고 하셨대요.

 

 


S#5. 실내, 회의실 – 저녁



Q. 기억에 남는 센스 있는 대사가 있을까요?

 

3: 맨 끝에 서로 총 겨누고 있는 숨 막히는 대치상황에서 등장한 대사 기억하시나요?  “너네 눈사람 알지? 우리 이제부터 눈사람 되는 거다. 눈사람이 어떻지? 쿨하지? 우리 다 쿨해지는 거야.” 이런 어이없는 대사가 등장하잖아요. 일반적인 범위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1: 저한테는 모든 대사가 독특했던 것 같아요. 입을 벌린 채로 봤어요. 저는 미아랑 빈센트랑 트위스트 추는 클럽에 갔을 때 5달러짜리 밀크셰이크를 먹잖아요. 그런데 빈센트는 그것을 비싸다며 이해 못하다가 한입 마시고 맛있다며 놀라움을 표하죠. 전 뭔가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았어요. 

 

2: 저도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았는데요. 영화가 싸구려, B급, 이런 걸 되게 강조하니까 저는 그 5달러도 이 영화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사실 싼 맛이 가장 맛있다!”

 

 

 

모임을 마치며


 

2시간에 가깝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단편적인 파편에 불과했던 감상들에 점차 의견이 붙어 풍성해졌다. 서로 웃음을 터뜨렸던 대목을 공유하며 잊고 지나쳤던 장면을 다시 한 번 복기해볼 수 있었고, 영화의 매력을 속속들이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넓어지고 깊어진 상태로 우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모임 장소를 나섰다.

 

 

[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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