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데아의 풍경 - 호안 미로 : 여인, 새, 별 [전시]

글 입력 2022.05.3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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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 풍경 속의 여인과 새들, 1970-1974, 캔버스에 아크릴, 244 x 174 cm

 

 

여기에 그림 한 점이 있다. 빨갛고 파랗게 발린 물감, 흰 면과 검은 선이 보인다. 이것은 풍경 속의 여인과 새들을 그린 그림이다.

 

회화와 시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호안 미로의 작품을 보다 풍부하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미로가 캔버스 위에서 노래하는 그만의 시적 언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올해 4월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린 '호안 미로 : 여인, 새, 별' 전시는 그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여인, 새, 별, 사다리 등의 모티프로 대표되는 호안 미로 고유의 언어를 소개하고, 그러한 시적 언어를 재료 삼아 미로가 창조해내는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초현실주의 거장, 호안 미로 


 

Joan Miro, 1944, ⓒ Hereus de Joaquim Gomis. Fundació Joan Miró, Barcelona.jpg
Joan Miro, 1944, ⓒ Hereus de Joaquim Gomis. Fundació Joan Miró, Barcelona

 

 

호안 미로는 1893년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으로 혼란했던 시대를 살았던 미로는 그러한 삶의 경험을 자신만의 화풍을 정의할 수 있는 양분으로 삼았다.

 

초기에는 다양한 예술 집단과 다다이즘에 속한 화가, 시인들과 교류하며 점차 사실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소박하면서도 찬란한 색채, 단순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해나갔고, 이후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미로 특유의 상징적인 모티프를 구축하며 그만의 독특한 우주론을 정립해나갔다.

 

1930년대 미로는 부르주아 사회를 지지하고 있던 르네상스 후기의 회화 방식을 부정하는 '회화의 암살(Assassination of Painting)'을 선언해 당대 미술가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원근법, 중력, 부피가 주는 환영, 음영, 색에서 해방된 공간을 만든 이 선언은 이후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안 미로의 기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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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모자를 쓴 여인, 별 1978, 캔버스에 아크릴, 유채, 116 x 89 cm

 

 

이번 전시는 크게 네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섹션 1: 기호의 언어]와 [섹션 2: 해방된 기호]는 미로가 특유의 시적 기호를 구축해나가던 단계에서부터 추후 그 기호들이 변형, 혼합, 재창조되며 더 광범위한 우주론적 시야를 향해 뻗어나가는 과정을 탐구한다.

 

미로가 그려내는 우주에는 지상과 천체를 구분하는 지평선이 없으며, 그 우주는 태양과 달, 별, 여인의 시각적 모티프로 구현된다. 각각의 모티프들은 마치 '이디어그램(Ideogram: 표의문자)'를 연상케 한다.

 

"내가 '여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피조물로서의 여자가 아니라 우주를 말한다." - 1977년 조르주 라이아르와의 인터뷰에서 발췌.


 

 

일상 사물에 대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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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브라테이심 6 1972, 조세프 로요가 엮은 천에 아크릴, 노끈, 털실, 140 x 187 cm

 

 

호안 미로의 작품 세계는 평면의 캔버스 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섹션 3: 오브제]는 일상 사물의 영역으로까지 뻗어나간 미로의 관심사를 좇는다. 미로는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사물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본래의 실용적인 기능을 탈락시키고, 그 자리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온갖 사물을 수집, 보관하며 사물들 사이의 관계들을 새롭게 정의하며 조립했다.

 

사물에 대한 미로의 관심은 조각에 국한되지 않았다. 물질과 오브제에 대한 미로의 관심은 판화와 직물의 영역으로까지 뻗어나갔다. 그러나 새, 여인, 밤, 낮 등 미로 측유의 언어는 그의 조각 작품에서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었다.

 

미로의 조각품은 회화와 동일한 주제를 논의하고 있었으며, 회화의 기호를 오브제로 대체한 것이었다.

 

*

 

이번 전시는 "관객의 무한한 상상력과 해석을 자극하기를 기대"하며 기획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작품보다도 먼저 눈에 들어올 만큼 과한 벽면의 컬러감과 어두운 조명 디스플레이, 낮은 천장 고도는 이미 전시 공간 자체만으로도 꽉 찬 듯한 답답함을 유발해, 미로가 펼쳐내는 무한한 우주론적 세계관 속으로 몰입하기에 적절한 공간 디자인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몇 년 전 바르셀로나의 호안 미로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빛이 쏟아지는 개방감 있는 전시 공간을 거닐며 미로의 작품 세계 속을 부유하는 듯한 초월감을 경험했던 순간과 대조되어 더욱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는 호안 미로가 꿈꾸던 이데아의 세계를 잠시나마 여행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미로는 본인의 작품 세계를 기호와 언어로 가득 메우면서도, 그것에 대한 해석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곤 했다.

 

이번 전시를 관람하는 모든 이들이 호안 미로가 열어준 무한한 상상의 우주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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