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억을 빚지는 사람들 - 영화 '카시오페아'

글 입력 2022.05.3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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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소프트 SF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소재가 현실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잃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하는 존재는 아무래도 엄마일 텐데, 나와의 기억을 모두 상실한 엄마와 그 기억을 온전히 복제해 받은 엄마의 클론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만약 둘 중 하나만을 곁에 남겨야 한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다소 실없는 가정이지만 이것이 딜레마로 느껴지는 건 분명 '기억'이 그 실체와 견줄 수 있을 만큼이나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절대적 요소이기 때문일 테다.

 

영화 <카시오페아>는 타인과 나의 관계망을 떠받치는 '기억'의 존재, 그리고 부재에 대해 사유할 기회를 제공했하는 작품이다. 유독 바빠진 일상에 좋은 영화들의 개봉을 죄 놓쳐 쓰린 내 마음을 충분히 어루만져준 작품이었다. 믿고 보는 서현진, 안성기 배우의 연기에 무해한 서사가 더해지니 간만에 감상에 푹 절여진 채 몰입할 수 있었다.

 

 

카시오페아_메인 포스터.jpg

 

 

이혼 후 변호사, 엄마로 완벽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수진은 하나뿐인 딸 지나의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정신없이 바쁜 수진을 위해 아빠 인우가 손녀를 돌보게 되면서 세 사람은 함께 살게 된다. 얼마 후 수진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알츠하이머라는 뜻밖의 결과를 듣게 된다. 사랑하는 딸을 잊을까 봐 두려워하는 수진을 위해 아빠 인우는 수진의 곁을 지키고, 기억을 잊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들 부녀만의 애틋한 동행이 시작된다.

 

- 카시오페아 시놉시스

 

 

<카시오페아>는 무엇보다 기억에 관한 영화라 느꼈다. 기억을 지닌 자가 기억이 없는 자의 부피감을 떠받치며 자신이 그의 삶으로부터 얼마나 큰 빚을 지며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알츠하이머는 이를 논하기 위해 자주 동원되는 설정이지만 무엇보다 이것이 노년에 접어든 '인우'가 아닌 이제 막 인생의 전성기를 앞두고 있는 '수진'에게 적용된 것이 신선했다.

 

보통 부모는 점차 성장해가는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그가 어느 정도의 성숙을 이뤘을 때 떠나보내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버지 인우가 충분히 익어 성숙한 딸이 때 이른 알츠하이머로 인해 다시 아이로 퇴행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구도를 취한다. 이 단순한 전복이 지니는 서사적 효과는 상당하다.

 

묘한 것은 정작 인우는 딸 수진의 순행적 성장 과정을 목도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젊은 시절 내내 해외에 나가 일을 한 탓이다. 다 털어낸 듯 훌륭하게 성장한 수진이었지만 원망의 감정과 유년의 결핍을 채 숨기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영화 초반에 생생히 그려진다.

 

그런데 또 수진 역시 인우와 같은 과오를 저지르고 만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바로 딸 지나를 자신에게서 떨어트려 미국에 보내고자 하는 결심이 그것이다. 부모의 부재 속에서 홀로 순행적 성장을 도모하고 매 순간마다 점검해야 했던 자신의 외로움을 고스란히 딸에게 물려주게 될 수도 있다는 가정은 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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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딸 '지나'는 밝고 강하다. 다행히 그곳에는 지나의 아빠가 있고, 지나는 이사 첫날부터 좋은 친구를 사귈 만큼 다정하고 단단한 아이이다. 그러나 수진이 진정으로 포기한 건 자신의 기쁨이다. 아빠 인우처럼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목도하는 기쁨을 포기한다.

 

그 과오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마찬가지의 선택을 했던 인우에게 남은 것은 퇴행을 지켜보는 일이다. 처음 진단을 받은 수진이 원망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다 끝내 체념하며, 그것을 기점으로 점차 인우가 목도하지 못했던 아이로서의 수진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관객들을 조용히 눈물 짓게 한다.

 

<카시오페아>는 타인에게 빚지고 또 빚지며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시오페아를 길잡이 삼았던 선조의 지혜로부터, 묵묵히 나의 삶을 떠받쳐준 부모로부터, 하얀 순수함으로 세상에 의해 녹이 슬어버린 눈물을 닦아주는 자식으로부터, 기억이 부재한 나조차도 여전히 나로 받아들여줄 게 분명하다는 믿음으로부터 우리는 끝없이 빚을 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알츠하이머라는 설정을 그저 서사적 장치로만 소비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당 소재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세심히 연출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영화 전반에 걸쳐 목격되었다. 알츠하이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간만에 무해하고 따뜻한 서사를 품으며, 그래도 내가 진실로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로 안심하게 된 바에 감사를 표한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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