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리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5.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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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 작가의 <소시민> 속 화자 ‘나’가 모두가 소시민으로 전락해버린 세태에 속 쓰려 하는 부류라면, 나는 제멋대로 파편화된 이들과 소시민이라는 말로라도 묶일 수 있음에 안도하는 부류인 듯 싶다. 소시민으로서의 정체성에 일말의 안정감까지 느끼고 살아온 것 같다는 의미이다. 자꾸만 흐릿해지는 내 존재를 조금이나마 붙들어줄 정체성이라면 뭐든 나쁘지 않다고 말이다. 작은 만큼 작게 살아가고 작게 바라면 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소설을 읽어 나가며 인물들의 모순된 행동이 만들어낸 막다른 길에 자꾸만 부딪히는 경험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문제는 작게 사는 것만큼이나마 ‘작게 마음을 쓰게 되는 상황’에 있다는 사유에 이른 건 그 때문이다. 작은 마음은 국수 면발만큼이나 얇고 연약하지만 길게 넌출져 온 삶을 뒤덮는다. 좀처럼 끝이 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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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의 배경이 된 부산 완월동

 

 

이호철 작가의 <소시민>은 분명 어느 때이고 시의적절한 작품일 것이다. 주인공 '나'는 이북에서 피난 온 후 부두 노동을 지속하다 우연히 제면소에서 일하게 된 젊은 남성이다. 제면소는 온갖 종류의 소위 '소시민'이 모여 하루하루의 노동을 해나가는 곳이다. 단순하고 무식하지만 돈머리를 굴려 원조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팔게 된 주인, 신경질적이며 은밀한 방식으로 성적 불만을 해결하는 주인 여자, 일제 시대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씨, 고등 교육을 받았지만 제면소에서 찌들어가는 정씨, 그 외에도 각자의 전사를 지닌 김씨, 강 영감, 곽씨, 천안 색시 등의 인물들이 얽히고 뒤섞이는 모습은 어딘가 시큼한 도시 가장자리의 냄새를 감각하게 한다.

 

소설에서 ‘소시민’은 여타 삶의 가치들을 져버린 채 경제적 이득만을 좇는 속물로 읽힌다. ‘이곳으로만 밀려들면 어느새 소시민으로 타락해져 있게 마련이었는데(p.11)’라는 묘사는 소시민이란 순박했던 이들이 전란의 혼란 속에서 고인 자리임을 보여준다. 완월동 제면소 식구들과 주변 인물들은 피난민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각자만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소시민'은 이를 죄다 압축해 평면화시켜버린 개념이라는 점에서 반발심까지 들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제면소 사람들에 대한 애정―혹은 동정―어린 촘촘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나’에게 이입하며, 그가 단순히 그들의 타락을 비판하기 위해 운운한 개념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했다. 염세가 삶의 제반 조건인 그에게는 최선의 태도였을 것이다. 어쩌면 소시민으로 고인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안도이자 이러한 안도가 또 다시 자기혐오로 이어지는, 꼬리에 꼬리를 문 뱀의 고리 같은 형태를 벗어날 수 없는 게 소시민의 운명일지 모른다. 여기서 ‘정씨’처럼 고통스럽더라도 소시민의 운명에 도전해나갈 것이냐, 이외의 인물들처럼 정체화가 주는 안온함에 여러 핑계들을 쌓아가며 스스로의 현주소를 외면할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가 생겨난다.

 

소시민을 낳은 전쟁과 부산이라는 배경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소시민>이 묘사하는 부산은 참 묘한 공간이다. 보통 전시 상황이라고 하면, 포탄이 날고 전투기의 소음이 새소리만큼이나 잦으며 지직대는 라디오에서 불안한 소식이 끝없이 흘러 나오는 이미지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소설은 이러한 전쟁의 전면이 아닌 그것이 삶의 배경으로서 녹아든 형태를 묘사한다. 그러기 위해 부산을 공간적 배경으로 선택한 건 탁월했다고 느낀다.작품의 주제에 걸맞는 훌륭한 서사적 장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물들에게 이러한 ‘물질 전쟁’은 그저 그들이 소시민으로 고이게 된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전쟁의 영향력은 크게 두 방향으로 갈린다. 첫째로 생명과 재산을 앗아간다는 전쟁의 기본 속성에 따라 물질에 대한 집착을 최대로 키워냈고, 다른 방향으로는 사회 정치적 맥락에서 스스로를 배제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대표적으로 주인집 여자가 정치에 대해 자신이 뭘 알겠냐며 무관심한 투로 이야기 하고, 날라리는 그런 그를 비판하다가도 정작 자신의 정치적 견해조차도 명확하게 피력하지 못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들을 눈물 짓게 하는 것, 대폿집에서의 술 추렴 없이는 살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눈 앞에서 폭발과 함께 날아가는 세간이나 변화의 국면을 맞이한 정권 등이 아니다. 삶이라는 ‘비물질 전쟁’ 그 자체인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 사랑의 배신, 신뢰 관계의 단절, 신념을 붙들지 못하는 스스로의 나약함 등이 주된 갈등을 만든다. 당대 사회의 문제의식들로 똘똘 뭉친 <소시민>의 전체 서사가 이를 방증한다.

 

*

 

<소시민>의 화자 ‘나’는 ―최인훈의 <회색인>의 주요 논의를 조금 빌려오자면― 인물들을 스펙트럼에 쭉 나열했을 때 그야말로 회색 지대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든 인물들과 적절한 신뢰 관계를 구축해 평판이 좋은 편이며, 대개 갈등의 중심에 서지 않고 타인을 쉽게 ‘소시민’의 영역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한다. 관조적인 시선이 오만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작가가 수많은 인물 중에서도 ‘나’를 화자로 삼은 이유는 그가 이방인으로서의 성격을 가장 강하게 지녔기 때문이라 여긴다. 그 때문에 해설자로서의 일말의 객관성을 지닐 수 있었고, 작은 제면소라는 공간을 전후 남한 사회 전체로 확장해 조망할 수 있는 가능성도 더해졌다 느낀다. <소시민>의 역사적 사료로서의 사실성과 설득력은 이러한 그의 정체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소시민> 속 그 어떤 인물들도 터놓고 비난할 수 없었다는 점이 독자로서의 나를 다소간 괴롭게 했다. 소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그림자처럼 나의 전반을 덮어 무력한 먼지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너무도 자주 느껴왔기 때문일 것이다. 60년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라고는 개념으로밖에 알지 못하는 나에게 다양한 통찰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감히 10년, 20년 후에도 꺼내 보고 싶은 책으로 이름을 올리고 싶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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