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로테스크, 동심 그리고 판타지 - 팀 버튼 특별전

감독 뒤에 영화 있어요.
글 입력 2022.05.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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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한때 인터넷을 달군 유명한 밈(meme)이다. 이 문장을 조금 비틀어 인용해서 한 영화감독을 소개하고자 한다.

 

‘감독 뒤에 영화 있어요.’

 

바로, 팀 버튼이다.

 

영화 제목은 알아도 피땀 흘려 작품을 만든 감독의 이름은 쉬이 잊히기 마련인데(사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고 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팀 버튼 감독은 그 반대다. 팀 버튼의 작품을 모르는 사람도 그의 이름은 들어봄 직 하다. 어쩌면 그의 작품을 단 한 개도 보지 않은 사람도 그가 영화감독이란 사실만은 알고 있을지 모른다. 즉, 팀 버튼은 자신의 작품 보다도 그 자체가 저명한, ‘감독 뒤에 영화 있는’ 기묘한 상황을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팀 버튼 전시장1.jpg

 

 

팀 버튼은 <가위손>, <크리스마스 악몽>, <찰리와 초콜릿 공장>, <슬리피 할로우>, <유령신부>, <혹성탈출>, <빅피쉬> 등 내로라하는 명작을 탄생시킨 걸출한 감독이다.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영화로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한 그는 두 세계의 공존을 그려낸다. 선과 악, 기쁨과 슬픔, 정상과 비정상, 생과 사의 세계, 현실과 비현실. 이 두 세계를 명확히 갈라 표현하면서도 두 세계를 이어 단숨에 하나의 세계로 묶어내는 그의 표현력은 기괴하면서도 아름답다.


그의 필름에는 모순과 프릭(기형)이 있다. 풍선껌을 먹고 보라색 공처럼 변한 소녀, 뼈만 남은 앙상한 몸매에 과장된 속눈썹과 큰 눈을 가진 신부, 온몸에 핀이 잔뜩 꽂힌 아기. 기괴하고 몽환적인 캐릭터는 팀 버튼의 판타지를 잘 보여주는 개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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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팀 버튼의 예술 세계를 압축해 담은 <팀 버튼 특별전 THE WORLD OF TIM BURTON>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되었다. 팀 버튼 프로덕션이 직접 기획한 두 번째 월드투어 프로젝트의 첫 전시로, 팀 버튼 감독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다.

 

전시는 그가 어린 시절 그린 스케치부터 회화, 데생, 사진 뿐 아니라 최초로 공개되는 150여 점의 작품을 포함해 총 520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또한, 팀 버튼의 예술 세계를 10개 주제로 구분하여 회화, 드로잉, 사진, 영상,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매체로 구성하였다.


그는 한 도시에서 한 번 이상 전시를 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우연히 찾은 광장시장에서 먹은 부침개와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 존경하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에서 전시를 열고 싶어 10년 만에 다시 서울을 찾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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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상 깊었던 공간은 섹션 3 ‘카니발레스크’다. 유머와 공포라는 상대적인 개념이 동시에 융합된 팀 버튼 예술 세계의 가장 상징적인 테마다.


푹 파인 눈과 그 눈으로부터 튀어나와 있는 두 마리의 개를 그린 드로잉은 무척 기괴했지만, 굉장히 감각적이었다. 검게 푹 파인 눈은 동굴의 입구와 같은 역할을 했고, 각각의 눈으로부터 튀어나온 두 마리의 개는 지옥을 지키는 케르베로스처럼 담대한 모습과 섬뜩함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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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5 ‘오해받는 낙오자’에서는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팀 버튼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유령신부>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섹션은 팀 버튼의 예술과 필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테마로, 팀 버튼의 아이코닉한 캐릭터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동정심을 부르는 괴물’은 비현실적인 드라마틱한 상황에서 자주 등장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령신부>도 ‘동정심을 부르는 괴물’에 해당한다. 예비 신랑 빅터가 숲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반지를 손에 끼우는데, 프로포즈의 의미로 오해한 유령신부에 의해 지하세계로 끌려가게 된다. 유령신부라니! 무섭고 끔찍하다. 게다가 유령신부는 비쩍 마르고 찌를 듯 기다란 속눈썹에 하얗다 못해 퍼렇게 질린 낯이다. 징그러운 애벌레를 애완동물처럼 턱턱 집어 들어 올리는 건 옵션이다.

 

그러나 <유령신부>를 끝까지 본 관객은 모두 여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비가 되어 신기루처럼 사라진 유령신부의 행복을 빌어주는 건 물론, 동정심을 부르는 유령신부에게 기꺼이 공감하고 몰입한다.

 

이렇듯 팀 버튼이 ‘동정심을 부르는 괴물’을 그려내는 것은 그의 최대 관심사인 소외된 아웃사이더를 상징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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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9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에서는 실현되지 못하고 중단된 필름, 텔레비전, 도서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그가 예술가로서 추구한 다채로운 분야와 예술적 주제, 모티프에 대한 탐구력을 감상할 수 있는 파트다. 또한, 40년 만에 실현된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다섯 개의 해적 조형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해적들은 비현실적으로 가느다란 팔과 중력을 거스르는 비율을 가지고 있다. 즉, 버트네스크 캐릭터다. ‘버트네스크’란 팀 버튼의 양식을 뜻하는 단어로, 하나의 양식으로 자리 잡은 팀 버튼만의 독창적인 세계관, 시각적 스타일을 의미한다. 그의 양식을 구현한 실체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어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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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캐릭터는 바로 ‘굴 소년’이다.

 

‘굴 소년’은 팀 버튼 작품에서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사실 하나의 장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굴 소년 장르!) 굴 소년의 에피소드를 묶어낸 옴니버스 책 <팀 버튼의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은 이미 유명하다.

 

전시장 한쪽에 마련된 캄캄한 방에서 굴 소년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영상,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을 보았을 때 난 마침내 팀 버튼의 깊은 심연에 가닿았다고 느꼈다. 영상의 내용은 굴과 인간의 혼종인 듯, 얼굴은 굴이지만 팔다리는 인간처럼 두 팔과 두 다리를 지닌 ‘굴 소년’이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굴 소년의 부모는 아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부부간의 잠자리 또한 만족스럽지 못했다. 의사는 부부에게 굴이 정력을 강화해준다며 아들 굴 소년을 잡아먹으면 잠자리에서 더 오랜 시간을 버티게 될 거라고 진단한다. 아버지는 마침내 굴 소년을 잡아먹고, 어머니는 이번엔 딸을 가지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영상은 끝난다.

 

충격적이고 크리피한 결말에 상영관을 나와서도 영상을 곱씹었다. 굴 소년에 대한 안타까움과 부모에 대한 혐오가 치밀었다. 인간이 인간을, 부모가 자식을 먹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굴소년은 이 상황에 대한 동의와 이해 없이 죽음을 맞이했고, 부모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끔찍했다.

 

한편 팀 버튼의 어린시절이 물리적 혹은 정서적 폭력에 노출되어있진 않았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했다. 집에 오면서 팀 버튼에 대해 찾아보았는데, 그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았으며 공동묘지에서 혼자 놀던 아이였다고 한다. 일본 괴수 영화와 호러 무비를 즐겨보던 그는 아이들이 정말로 무서워하는 것은 괴물이 아니라 매를 든 어른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그의 작품이 어른과 아이 모두를 대상으로 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팀 버튼이 만드는 세계에 대해 주로 다뤄졌다. 가장 아끼는 작품 <유령신부>를 비롯해 그의 영화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았다. 영화에 해당하는 전시 파트가 많지 않았을뿐더러, 그마저도 드로잉이 대부분이어서 팀 버튼 영화에 대한 비하인드나 조형물을 기대하고 갔다면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초두에 밝혔듯, 내가 느끼는 팀 버튼은 감독 뒤에 영화가 있는 인물로, 그가 창조하는 판타지 세계를 세심하게 나열한 이번 전시가 무척 인상 깊었다. 더욱이 그로테스크와 동심, 양극단을 완벽하게 다루는 그의 천재성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권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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