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누군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비밀 다이어리 훔쳐보기
글 입력 2022.05.2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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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출근길 버스 안에서, 운이 좋은 날이라면 당신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빈자리를 발견하곤 냉큼 앉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편하게 앉아 갈 수 있겠지만 대개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당신은 졸음과 스트레스, 갖가지 상념과 피로에 맞서 투쟁하기를 포기한 채 버스 손잡이만을 꼭 붙잡곤 버스기사가 돌리는 핸들에 맞춰 몸을 앞뒤로 흔드는 탑승객 중 한 명으로 하루를 시작할 확률이 더 높다.


그것은 필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키가 작은 나는 때론 키가 큰 두 정승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앞사람 셔츠에 얼굴을 파묻지 않으려 애쓰기도 하고, 때론 뒤로 닿아오는 불쾌한 기척을 피하기 위해 몸을 살짝 틀기도 하며, 때론 도대체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될지 모르겠어 그저 한곳만을 뚫어져라 응시하기도 하지만 그 어느 때든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은, 버스 안에 있는 이들 중에 그저 내 생각을 읽는 초능력자가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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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은 홀로 하는 일상성의 탈출이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것들로부터의 해방이며, 아무도 알 수 없고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공간이다. 그렇다면 상상 속 개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 규범이 정해 놓은 질서라는 틀 안에 갇혀 있지 않은 인간 본연 그 자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상상 속에서 ‘나’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슈퍼 에고’나 이성적 사고를 하는 ‘에고’보다는 본능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이드’에 가깝다. 그게 무슨 소리이겠는가. 내 머릿속에서 나는 옷을 홀딱 벗고 나뭇잎 하나로 중요 부위만을 가리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녀도 상관없다는 말이다! 혹은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이러한 이유로 내 상상들은 전체관람가에서 약간 벗어난다. 다른 누군가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봐서는 안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섹슈얼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억눌린 욕망의 분출구라면 분출구라고 볼 수도 있는 상상 속에선 말 그대로 현실에서는 행동에 옮길 수 없는 무수한 일들, 즉 쾌락적 의미를 넘어선 외부로의 강한 충동들이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주로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띠기도 하니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리 적절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이렇듯 나름 몇 가지 이유로 타인의 생각에 접근할 수 있는 비합리적인 초능력에 대하여 거부감을 갖고 있는 편이지만, 내 모든 상상들이 다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상상 속 객체들이 주로 나와 공간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불특정 다수일 때가 많기에, 간혹 밀폐된 공간에서 같은 공간 속 인물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때는 혹시 모를 초능력자를 대비하여 이야기 전개를 멈추거나 아예 다른 생각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어이없겠지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내가 바로 그런 초능력자가 되기를 바랄 때도 있다. 부쩍 말 수가 줄어든 언니의 고민을 알고 싶고, 도통 본인의 얘기는 하는 법이 없는 부모님의 속마음이 궁금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생각을 읽는다는 건 사실 그들의 비밀스러운 다이어리를 몰래 훔쳐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만일 내가 누군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차라리 보다 생산적인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이들을 선택하겠다. 예컨대 좋아하는 영화감독들의 다음 차기작 정보나 기말시험문제를 고민 중인 교수님들 말이다.


만일 당신이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훔쳐볼 수 있는 초능력자라면, 당신은 누구를 택할 것인가!

 

 

[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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