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난 말할 의무도, 넌 들을 권리도 없다 [문화 전반]

아주 개인적이고도 아마 공감될 이야기
글 입력 2022.05.2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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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고 소심하게 채식을 하고 있다. 지인들에게 채식을 지향한다고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내 의지를 오롯이 반영할 수 있을 때만 수행한다. 비록 완벽하지는 못해도 휴학 후 대부분은 집에서 보내고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나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 어쨌든 집은 내가 원하는 바를 맘껏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됐다.


그 공간에서 같이 사는 부모님에게 채식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해본 적은 없다. 단지 채식을 할 거라고 말했고, 부모님도 걱정은 하되 구체적인 질문을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초반에 걱정하실 때마다 광범위하게 동물과 환경을 위해 한다고, 내 건강에도 큰 이상이 없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 안 먹는 음식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변호하는 경우는 없으니 크게 이상하다고 느끼진 않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근본적인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나 보다. 어떤 이유로 시작했고 왜 채식이 동물과 환경을 위한 것인지, 그게 나에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많은 궁금증을 속으로 삼켰나 보다. 이건 우리 가족의 특징인데, 당사자와 직접 대화하지 않고 다른 구성원과 감정을 푼다. 참 미숙한 대화법이다.


어쨌든 최근 다른 구성원과 예고된 말다툼을 벌였다. 요인즉슨 나의 식습관으로 부모님이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변호하자면 절대 강요한 적이 없다. 몇 번이고 나를 따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육식하는 이에 대해 아무런 미움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내가 반찬을 만들 땐 육류를 사용하지 않을 테니 그것만큼은 알아서 만들어 먹으라고 말했다. 채식을 시작한 후 요리는 내 삶의 큰 부분이 되었고, 나와 부모님이 다 같이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반찬을 만들어냈다. 건강에도 이상이 없다.


내 얘기를 듣고 난 후 돌아온 말은 간단했다.


‘넌 설명하지 않았다. 소수자니까 설명해야만 한다.’


말문이 턱 막혔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또 마주쳤구나.


(소수자란 말을 남용하고 싶지 않지만) 소수자의 삶은 설명할 무언가가 아니다. 설명하고 설득해서 인정받아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소수자는 다른 존재가 아니다. 당신들과 대등한 가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보통의 존재다. 단지 당신이 이해해보려 하지 않았던 것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존재다. 단지 ‘나’다웠다는 이유로 소수자가 되어 보통과는 다른 신분이라고 여겨진 존재다. 누구도 자기 삶을 변론하고 허락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 본인도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우리에게 발표하고 설득했느냐 되물었고 같은 말이 역시 되돌아왔다. 이쯤 되면 싸움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당신과 나. 똑같은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자리를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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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상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당신의 세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 우리 다 자신의 세상 속에서 사는 이들인데 왜 당신만이 이유 없이 정당해야 할까? 난 내 세상을 말할 의무도, 그걸 들을 권리도 당신에겐 없다. 다른 세상을 마주하면 우선 바라보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가. 어떻게든 부정하려 애쓰는 에너지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사람들은 특정한 것에 대한 의견을 아무렇지 않게 물어본다. 그 의견을 말할 때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질문들이 있다. 당연히 큰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질문도 있다. 중요한 건 그 기준이 각자의 세상에서 전부 다르게 책정된다는 것이다. 당신에게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슈는 마주한 이의 지대한 고민일 수 있다.


그래. 어떻게 매번 그걸 파악해서 말할 수 있겠나. 그래서 필요한 것이 조심스러운 태도다. 당신은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하고 혹시나 당신도 모르게 지어질 수 있는 무게를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속의 모든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당신도 모든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침묵은 내 세상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물론 당신이,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가 세상에 참 많다. 겪어보지 않았으므로 결코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세상이 알아야 하고 들어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대개 소수자의 이야기가 그렇다. 재밌는 건 이 말을 듣고 대답해야 하는 당신은 나의 논리를 고스란히 적용해 상대방을 짓누른다는 것이다. 난 당신이 ‘모순된’ 논리로 자신의 세상을 옹호하며 살 것임을 감히 예상해볼 수 있다.


‘난 말할 의무도, 넌 들을 권리도 없다’라는 말을 쓰지 마라. 적어도 당신이 편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는. 당신은 같은 문구를 쓰면서 언제는 편안함을, 언제는 절박함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삶 속에서 우리의 위치다.


절박하고 답답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그 마음을 느꼈다면 당신 역시 소수자의 세계에 발 담그고 있다. 당신도 분명 소수자임을, 소수자였음을 깨달았으니 바란다. 대개는 다른 세상을 인정한다고 내 세상이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려야 하는 세상이라면 죄송하다. 겸허히 내리막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잘 살펴보시라. 당신의 내리막과 그들의 오르막은 결국 똑같은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비록 말의 주인을 향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글이지만, 이 말을 하지 않고 제대로 당신의 얼굴을 보기 힘들 것 같다. 나도 언제 어딘가에서 다른 이의 세상에 생채기를 낸 안하무인일 것이다. 내 세상이 무너질 때만 발끈하여 감정을 배설하는 파렴치일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의 세상을 지키는 것이 내 세상을 지키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각자의 수호자에서 때론 서로의 수호자가 되어보는 것은 결코 손해 보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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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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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연
    • 좋은 글이에요. 모두의 세상을 응원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는 세상을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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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니
    • 소연소연님의 세상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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