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눈으로 보는 봄, 고창 청보리밭 축제 [여행]

글 입력 2022.05.1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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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마을, 고창


 

보리 ‘모(牟)’에 넓은 들을 뜻하는 ‘양(陽)’자를 쓰는 모양현은 고창군의 옛 지명이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보릿마을로 불리어왔던 고창은 오늘날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순전히 보리농사로 시작했던 것이지만 푸른 청보리밭의 풍경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해 일종의 축제로 변모하게 되었고, 이제는 고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청보리밭 축제’가 되었을 만큼 명실상부 고창의 대표적인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고창의 학원관광농원 일대에서 펼쳐지는 청보리밭 축제는 연간 40만~5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며 고창의 지역경제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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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밭에 쌓인 시간의 켜


 

한편 청보리밭 축제를 진두지휘하는 학원농장의 진영호 대표는 청보리밭 축제를 두고 “처음부터 소위 말하는 지역경제 살리기 등 거창한 비전을 갖고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여느 농부들처럼 보리농사를 짓는데 자꾸만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자연스럽게 축제 행사가 되었고, 그것이 지역민들의 소득 기회로까지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청보리밭 축제는 지방 정부 등 관이 인위적으로 진행하는 행사가 아니라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시작된 자연 발생적 민간 주도 행사로, ‘고창청보리밭축제위원회’라는 자치 기구를 만들어 독자적으로 예산을 편성해 운영해 왔기 때문에 오랜 기간 문제없이 지속되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 학원농장 측의 설명이다.


고창에서 직접 마주한 싱그러운 청보리밭의 풍광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면서도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밭의 모습과 역할을 보존하고 있어 풍경을 감상하는 데에 어색함이나 불편함이 없었다. 농사에 사용되는 트랙터를 축제 기간 동안 관람차로 활용하고 있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고창의 청보리밭 축제는 아름다운 보리밭의 풍경을 문화 콘텐츠화하면서도, 고창의 오랜 보리농사의 전통 역시 잘 보존하며 고창 농업인들과 공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져 흥미로웠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청보리밭 축제가 그 시작부터 입소문에 의해 자연스럽게 탄생하고, 지역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운영되어온 시간의 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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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정부의 역할에 대한 고민


 

그러나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청보리밭 주변의 벤치나 공중화장실, 식당, 카페 등의 편의시설은 청보리 밭을 찾는 관광객의 규모를 수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특히나 식당과 카페의 부족은 단순히 관광객들의 사소한 불편을 초래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로서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청보리밭 축제가 고창을 대표하는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고창이라는 지역의 정체성과 단단한 연결고리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는 점이다. 고창은 청보리밭뿐만 아니라 복분자, 풍천장어와 같은 먹거리부터 상하목장, 고창읍성, 선운사, 고인돌 유적지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문화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고장이다.

 

그러나 각각의 문화 콘텐츠들이 서로 유기적으 로 얽혀 고창이라는 지역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기보다는 제각기 다른 콘텐츠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었다. 이는 고창을 대표할 만한 문화 콘텐츠들이 서로 다른 별개의 축제로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진행되고 있는 상황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보이고, 이것은 더 나아가 지방정부가 지역 축제를 민간 운영 단체에만 온전히 일임하고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탓에 발생한 문제가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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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이 본래 가지고 있는 풍부한 문화 콘텐츠들을 바탕으로 탄탄한 지역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가 지역 축제의 운영에 있어 예산 후원의 차원으로만 소극적으로 참여할 것이 아니라, 현재 고창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역 축제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 주민들의 보다 자유롭고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하는 한편, 각각의 문화 콘텐츠들이 연계하고 상호 협력하여 보다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해준다면 고창의 지역 축제들이 지금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고창은 선사 시대 이래로 수려한 자연경관과 귀중한 문화 자원들과 켜켜이 쌓여온 원석 같은 고장이다. 고창이 품고 있는 고유한 문화 자원의 가치, 이를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지역민들의 진정 어린 노력, 마지막으로 그와 같은 지역민들의 노력을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는 지방 정부의 역할이라는 삼박자가 잘 갖춰진다면, 고창은 지금보다 더 환하게 빛나는 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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