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해하고 든든한 이야기의 힘 - 앤서니 브라운 원더랜드 뮤지엄展

"그림과 글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글 입력 2022.05.1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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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앤서니 브라운 원더랜드 뮤지엄展’에 다녀왔다. 처음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조금 당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곳엔 어린이 친구들이 너무 많았고 성인은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가 거의 전부였다. “누구야 이거 봐봐. 고릴라가 뭘 하고 있는지 볼까? 와, 거울을 보고 있구나!” 도레미파솔의 ‘솔’ 정도로 피치를 올려 아이의 흥미를 자극해 그림을 한 점이라도 더 보고 가게 하려는 노력이 깃든 소리로 가득했다.


당황한 마음을 접고 친구가 어린 시절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책을 가장 좋아했다는 점에 기운을 내서 전시장에 들어갔다. 나와 동행한 친구는 그림책 작가라는 오랜 꿈을 가지고 있고 현재는 취업을 위해 고시 공부를 한다. 분명 다른 직종을 희망하고는 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얘가 언젠가 큰일을 칠 것 같았다. 유쾌한 기운과 듣도 보도 못한 단어 선택으로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분명 웹툰이나 짧은 글쓰기에 대단히 뛰어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실은 친구가 수험 생활을 하면서 탈출구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내 생각엔 그건 그림 그리는 일이었다. 자기 전에 마음을 정리할 겸 일기 쓰듯 그림을 그리며 소소한 스트레스 해소를 하길 바랐다. 그림 그리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함께 힐링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또, 우리 또래가 어렸을 적 좋아했으면서 현재 전시회를 열 정도의 유명세를 가진 작가라면,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작업을 지속하며 사랑받아왔을 터다. 우리의 어린 시절인 2000년대 초반, 초기 작품까지만 알고 있는데 그 이후로 방향성이 작가의 달라진 작품을 찾아보고 비교하는 건 즐거운 일일 것 같았다.

 

 

앤서니 브라운_공식 포스터.jpg


 

전시는 꽤나 알찼다. 작가의 삶을 소개하고, 굵직한 테마를 잡아 그림을 분류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요새 SNS에서 인기 있는 디지털 아트 전시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가의 수많은 그림과 스케치, 작품의 서사와 변천사를 섬세하게 다룬 점이 눈에 띄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따뜻한 색을 주로 선택했다. 요즘 말로 웜톤과 쿨톤을 따지자면, 주로 웜톤의 따스하고 채도가 높으며 부드러운 색상이다. 가을보다는 봄에 가까운 색을 사용했다. 아이들의 눈에 튀지 않으면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사를 가진 캐릭터에 반하는 시간



캐릭터 마케팅적 측면에서도 굉장히 재미있는 지점이 있었다. 실제로 브랜딩을 위해 캐릭터를 내세우는 기업들이 있다. 시사 메일링 서비스 ‘뉴닉’의 ‘고슴이’나 대전 엑스포의 ‘꿈돌이’가 대표적이다. 이런 상징 캐릭터들은 저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단순히 대표성만 가진 게 아니라, 고객과 만나는 서비스의 시작으로 기업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뉴닉의 어떤 독자들은 ‘고슴이’를 덕질한다는 이야기를 하기까지 할 정도로 캐릭터는 큰 힘을 가졌다.

 

그런 것처럼 앤서니에도 이런 캐릭터 브랜딩이 섬세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 많은 캐릭터들 사이에서도 특히나 침팬지 ‘윌리’는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겁쟁이 윌리>라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윌리는 산책을 나갈 때마다 벌레를 밟을까 걱정할 만큼 지나치게 사려 깊고 소심한 침팬지이다. 불량배들로부터 괴롭힘을 받고 겁쟁이라 놀림을 당하지만 이를 이겨내기 위해 운동을 하고 근육을 키운다. 소심한 성격과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생생하게 그림을 통해 보여진다. 이에 마음에 들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에 고민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입할 만한 캐릭터가 탄생한 것이다. 약자(underdog)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응원의 목소리가 작품 밖까지 전해지는 것 같다.

 

 

[크기변환]KakaoTalk_20220517_032546361_01-horz.jpg

 

 

재미있는 점은 윌리의 후속작이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1984년의 <겁쟁이 윌리>에서 강하고 튼튼한 스스로를 꿈꾸며 윌리가 거울을 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때 거울 옆에 있는 액자 속에는 윌리의 현재 모습 위에 먹구름이 드리운 사진이 놓여있다. 이 먹구름은 32년 후 발표된 <윌리와 구름 한 조각>의 모티프가 된다. 구름이 어딜 가든 자신만 따라오는 것 같아 고민하는 윌리의 모습이 등장한다. 재수 없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서 의욕이 떨어져 버린 어느 날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다. 시대를 지나 여러 작품에 걸쳐 고민거리를 해결해나가는 윌리의 모습을 통해 오히려 위로와 용기를 받는 기분이다. 책 사이에 숨은 연결 고리를 발견하는 것이 참 즐거웠다.

 

 

 

숨겨진 이스터에그로 더 풍성한 이야기를 담다.


 

이외에도 앤서니의 그림 속에는 귀여운 메세지들이 숨겨져 있기도 했다. 이런 게 덕후를 자극하는 포인트라며 내 친구는 이를 강조했다. 작품의 중심부에서는 줄거리대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그 뒤의 배경과 그림 속에 또 다른 이야기와 상징을 넣어둔 것이다. 게임으로 따지면 일종의 ‘이스터 에그’ 같은 것이다. 몰라도 이야기의 진행에는 상관없지만 알면 더 풍성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었다.

 

예를 들어서 <돼지책>이라는 작품은 집안일에 지친 엄마가 집을 떠나자 아빠와 아이들은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돼지로 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집안일을 분담해야 한다는 비판적인 줄거리 이외에, 그림 속에 상징물을 넣어뒀다. 아빠의 양복에 돼지 모양의 꽃을 그려 넣거나 문 손잡이에 돼지 문양이 숨어있는 식이다. 이는 가족들이 돼지로 변할 거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크기변환]Piggybook 1986 @ Anthony Browne .jpg

 

 

이 외에도 정말 많은 힌트들이 숨어 있는데 그건 정말 작가가 중요해서 숨겨놓은 의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의미심장한 척 독자를 낚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이런 요소들을 찾으며 독자는 즐거움을 느낀다. 또 부모와 아이 사이에 그림책을 두고 나누는 이야기가 더 풍부해지는 것이다.

 

 

 

따스한 시선과 응원의 목소리


 

이렇게 개성 있는 캐릭터를 필두로 가족, 자아, 감정 등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느낀 점을 직관적이고 쉽게 표현한다. 짧은 이야기 속에 기승전결이 모두 숨어있는 것도 재미있었다. 긴 소설보다 짧은 시가 한 문장에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그림책은 그만큼 압축적이고 의미심장했다. 어린아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단어 속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얹는 것도 대단했다.

 

앞서 말했듯 ‘윌리’ 캐릭터를 통해서는 약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응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 <마술 연필을 가진 꼬마곰>에서는 마술 연필로 그림을 그려서 악어 등의 위협으로부터 지혜롭게 벗어나는 작은 곰의 모습을 그린다. 이는 위험에 대처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렇게 심각한 일 아냐. 얼마든지 할 수 있어.”와 같은 이야기. <동물원>이라는 책에서는 동물원에 놀러 간 가족이 서로 싸우는 모습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가족 간 소통의 부재를 지적하는 등 사회 비판적인 내용도 담는다. 그림책은 꿈과 희망으로만 가득 차 있을 줄 알았던 편견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크기변환]앤서니 브라운 빌리지 2022 @ 아이땅.jpg

 

 

이렇게 어른이 되어 다시 한번 그림책을 보는 건 독특한 재미가 있다. 이건 명작 동화나 고전 문학을 다시 읽는 것과 비슷하다. <어린 왕자>나 <홍당무> 같은 명작 소설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 그 의미가 배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분명 어린 시절에는 깨닫지 못했던 숨은 의도와 비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 왕자에게 여우나 장미가 가지는 의미를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다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에는 마냥 받아들였던 교훈적인 내용들이 가끔은 너무 구식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비판점이 눈에 띌 때도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브라운의 그림책을 재해석하는 것 또한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다시 해석하는 주체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다시 본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생각보다 무해했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까지도 담고 있었다. 재해석은 생각보다 많은 인사이트를 가져다주었다.

 

*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통해 아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득 뭉쳐 그 속에 담았는지가 느껴졌다. 무해하고 유익한 콘텐츠만 공급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지만, 그래도 넘쳐나는 말초적인 콘텐츠 속에서 가능한 한 건강한 생각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몫인 것 같다.


어린 시절의 팬심을 되살리려는 성인들도 자라나는 아이들도 충분히 힐링할 수 있는 전시이다. 기회가 된다면 시간을 내서 오랜만에 앤서니 브라운의 따뜻한 이야기 속에 푹 빠지길 바란다.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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