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극복은 '셀프' - 돌아온다 [공연]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
글 입력 2022.05.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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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10분 전. 극장이 사람으로 가득하다. 미리 앉아서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관객, 막 들어와 좌석을 찾고 있는 관객, 팸플릿을 읽고 있는 관객 등 공연 직전의 분위기를 오랜만에 느끼며 CJ 토월 극장 내부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무대 뒤쪽에서 할머니가 걸어 들어온다. 무대에 설치된 막걸리집의 열리지 않는 문을 한참 두드리다가 인기척이 없자 떠나고, 얼마 후 어느 중년의 남성과 여성이 들어온다. 주인처럼 보이는 남성은 막걸리집의 의자를 정리하고, 여성은 한쪽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린다. 여전히 공연은 시작하지 않았다.

 

시작 전부터 무대로 나와 연기를 하는 상황은 초면이라 신선했다. 입장하고 있는 관객석과 연기하고 있는 무대 위의 조합이 어색했다. 대사 없이 행동만 했지만 훤히 밝은 관객석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연기하는 모습에 묘하게 분위기가 정리되는 듯했다.

 

얼마 뒤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물 흐르듯 몰입한 상태로 관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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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연극 <돌아온다>는 현실과 연극 세계의 경계가 없다. 암전 후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가 펼쳐지는 보통의 연극과 다른 이 연출은, <돌아온다>의 이야기와도 맞닿아있다.

 

<돌아온다>는 허름하고 작은 '돌아온다'라는 식당을 배경으로 다양하고 보편적인 인물들 각각의 사연을 통해 가족에 대한 진한 그리움과 향수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떠나간 이를 향한 그리움과,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원동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가장 보통의 이야기이다.


배경이 되는 '돌아온다' 식당은,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막걸리집이다. 흔하디흔한 상술이 아니라, 실제로 이곳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사랑하는 가족과 재회를 했다거나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은 사람이 있다. 술집의 한쪽에는 수많은 이들의 그리운 사람들을 향한 자신의 사진과 메시지를 붙인 보드가 있다.

 

이 식당에 얽힌 사연은 다름 아닌 귀신. 의도치 않은 이별 후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금슬 좋은 부부의 귀신이 이곳을 떠돌고 있어 그들의 한이 사람들의 재회를 돕는다. 극 중간중간 서로를 찾아 떠도는 귀신 부부의 모습이 나와 애절함을 더한다.

 

영험한 식당의 소문을 듣고 많은 이들이 찾아오지만, 욕쟁이 할머니,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초등학교 여교사, 집 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청년, 작은 절에 새로 온 주지스님은 이 식당의 단골이다. 이들은 마음속에 가족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품으며 매일 막걸리를 마시러 온다. 이들에게 말없이, 그러나 다정하게 음식과 막걸리를 내어주는 식당 주인 또한 아들과의 관계에서 아픈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귀신 부부는 재회를 할 것이고, 연극의 인물들 모두 가족과 재회하며 끝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식당 주인은 끝까지 아들에게 용서받지 못했고 초등학교 교사는 전역을 앞둔 아들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욕쟁이 할머니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아들을 만났지만 병을 앓고 있기에 다시 영영 헤어지게 될 것이다. 귀신 부부는 막이 내릴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아픔을 딛고 새로운 삶을 위해 행동한다. 청년은 술을 끊고 일을 시작했으며, 교사는 아들의 꿈을 이뤄주고자 식당 운영을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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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돌아온다>는 초월적인 힘이나 판타지를 이야기하는 연극이 아니다. 귀신들의 도움을 받아 사랑하는 이와의 '재회'를 선물 받는 그런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물들은 시린 마음을 재회를 통해 극복하지 않는다. 각자 아픈 마음을 딛고 삶의 태도를 변화시켜 스스로 극복한다. 내내 잔잔하던 식당 주인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감정을 터트린 것처럼, 극복은 '셀프'다.

 

연극에서는 극단적인 예시만 보여줬지만,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그때 그 시절의 분위기, 젊은 내 모습, 함께 나눈 추억들, 그날 먹은 음식들. 이것들을 그리워한다고 해서 과거에 갇혀 사는 것은 아니다.

 

그리움은 과거를 반추하여 미래를 그릴 힘을 준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열심히 살겠다는 힘,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아들을 잃고 식당을 떠난 교사가 아들의 꿈을 이뤄주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식당으로 돌아온 것처럼, 아내가 집 나간 자신의 상황을 비관해 자살시도까지 했던 청년이 정신을 차리고 술을 끊은 것처럼 말이다.

 

극복은 셀프.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 메시지는 정겹고 사람 냄새나는 '돌아온다' 막걸리집에서 따뜻하게 발효된다. 나 또한 그리움에 잡아먹히지 말고 그것을 나의 무기로 삼으며 살아가겠노라 조용히 다짐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선다.

 

 

[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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