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환상의 나라 원더랜드, 그곳에서의 기억은 삶의 이유가 된다 - 2022 Wonderland Festival

찬란하게 빛났던 그 곳에서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글 입력 2022.05.11 05:2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22 원더랜드 페스티벌_포스터.jpg

 

 

Wonderland Festival, 어쩐지 ‘원더랜드’라는 표현이 익숙하게 느껴져 찾아본 어원에는 생각보다 뜻깊은 의미가 숨어 있었다.

 

원더랜드는 미디어 전문가 스티븐 존슨이 놀이와 재미가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한 추적을 담아 놓은 저서의 제목으로, 재미를 쫓아 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기술과 혁신이 탄생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하위징아의 놀이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단어 ‘호모 루덴스’에 대한 저서를 읽었는데, 이런 용어들을 접하다 보면 정말로 인간의 원천은 아무리 재고 포장해도 ‘놀이에서 오는 즐거움’을 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이제는 꿈과 환상의 나라를 통칭하는 뜻이 된 ‘원더랜드’가 수식어로 붙은 페스티벌, 어찌 기대가 안 될 수가 있을까?

 

스스로 ‘노는 것’을 즐긴다고 인정하기가 쉬웠던 시절이 언제였는지도 까마득하던 내게 이 페스티벌은 단순한 공연 한 편이 아닌 변환점이 되어 주었다.

 

 

 

원더 랜드로 향하는 관문



[크기변환][포맷변환]팔찌.jpg

 

 

장장 2년 만의 야외 페스티벌의 초막을 열 ‘원더랜드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엔 하늘도 도왔다.

 

햇살이 내리 쬐는 완벽한 날씨 아래에서, 정말 오랜만에 찾은 올림픽 공원의 풍경은 어릴 적 아무 걱정 없이 뛰놀아도 되었던, 그 시절 놀이터를 방불케 하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모두가 들뜬 마음을 숨기지 않은 체 발그레한 볼로 각자의 재미를 찾아 가고 있었다. 환상의 나라, 내지는 놀이 공원에 당도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티켓을 제시하고 입장권으로 갈음되는 팔찌를 받아 차니 정말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번 야외 페스티벌이 더욱 의미 있는 데에는 가방에 돗자리를 챙겨온 이유에 있었다. 기존의 공연처럼 정해진 지정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 공간 그어진 구획 안에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하듯 즐기는 공연의 형식은 어린 아이의 것과 같이 샘솟는 나의 흥분을 최대치로 올려 놓기 충분했다.

 

 

[크기변환][포맷변환]가벽.jpg

 

 

입장을 하기 위한 관문에는 가벽이 세워져 있었다. 저 얇은 가벽 너머에는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처럼 말도 안되게 찬란하고 눈부신 공간이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가 들었다.

 

벽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지 기대를 한 가득 안고 가방 검사를 위해 줄을 섰다. 어쩐지 잔뜩 부푼 기대만큼 부푼 가방을 안고 강당에 모여 가방 검사를 받던 그 시절의 수련회가 떠올랐다.


가볍게 검사를 통과하고 마주한 세상은 원더 랜드, 그 자체였다. 따가운 햇살을 식혀주는 선선한 바람, 그 아래 흔들리는 돗자리들, 그 위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조금 늦은 오후에 도착했 던지라 이미 원더 랜드에 깊이 스며든 관람객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완전한 행복감으로 가득 찬 그 미소는 어디에서도 쉽게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라이브’ 공연의 묘미지!


 

[크기변환][포맷변환]전경.jpg

 

 

나의 공간에 돗자리를 펴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무렵, 그제서야 오케스트라의 감미로운 선율이 내 귀에 붙잡혔다. 같은 곡을 여러 번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리허설임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음악 감독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조율하며 그들과 나누는 의견을 가감 없이 관객 앞에 바로 보였다. 백스테이지에서나 가능했던 그 장면은 이제 스테이지와 객석의 경계 없이 풀려나 원더랜드 사방을 날아 다녔다.


나는 이 생경하고도 갈망해왔던 장면을 목도하고 그야 말로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날 것의 공연을 마주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던가, 그 경험과 시간을 함께 공유하던 이들은 빠짐없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바람과, 새 지저귀는 소리와, 또 주변 공원을 산책하던 이들의 두런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뜻밖에 마주한 불꽃 놀이 같은 찬란한 순간을 만들어 냈고, 그 순간을 함께 즐길 이름 모를 누군가 있었다.

 

 

[크기변환][포맷변환]피크닉.jpg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기 전, 너무 배가 고팠기에 푸드코트에서 음식을 사고 있었는데, 강홍석의 공연이 시작되어 버렸다. 나쁘지 않은 순간이었다.

 

평소처럼 벼르고 벼르며 자세를 고쳐 잡고, 소지품을 정돈하고 맞이한 공연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시작되어 버린 공연, 그것을 멀리서 관망하게 된 나. 사람들의 환호소리와 그들의 웃음과 기대에 찬 대화 소리에 새삼 눈이 가게 된 순간이었다. 그 장면이야말로 내가 정말 이 환상의 나라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음식과 음료까지 갖춘 돗자리 위의 나는 영락없이 피크닉을 나온 모습이었다. 2년 전, 여의도 한강 공원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놓고 버스킹 공연을 보며 함성을 지르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렇게 소중하고 애틋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새삼 2년의 기간 동안 이어져 온 감염증 상태가 아이러니하게도 소중한 것의 소중함을 얼마나 절실하게 알려주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클래식, 재즈, 뮤지컬까지, 이곳의 공연은 오첩반상 그 자체


 

2022 원더랜드 페스티벌_라인업.jpg


 

유독 이번 공연이 기대가 되었던 데에는 원더랜드라는 수식어를 빼고도 이 공연이 페스티벌이라는 점에서였다.

 

나는 익숙한 것이 좋아서, 자꾸만 그 안으로 파고들어가며 새로운 세상을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이렇게 다채로운 장르를 보여주는 종합 예술 공간은 내게 지도와 같은 존재가 되어주곤 한다. 평소 즐겨 보던 뮤지컬 장르 뿐 아니라 클래식과 재즈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초청된 이번 페스티벌은 그렇기에 더욱 뜻깊었다.


앞서 언급한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강홍석, 조형균, 민우혁 3인의 뮤지컬 배우 공연 시간에 맞추어 왔기에 내가 본 첫 공연은 강홍석의 무대였다. 그런데 내가 이전에 익숙하게 접해오던 뮤지컬과는 달랐다. 무대 위 캐릭터가 아닌 뮤지컬 배우 본인의 모습으로 선 아티스트, 핸드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온 그의 들뜬 목소리, 그에 화답하는 관객들까지. 평소 객석 안 뮤지컬에서는 상상도 못할 광경이었고, 어쩐지 해방감이 들었다.


그렇게 익숙함마저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내가 알던 뮤지컬의 절반 정도는 공연장과 관람객의 분위기가 만들어 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탁 트인 야외, 목소리를 되찾은 관객, 그리고 관객의 반응을 읽어낼 수 있게 된 배우가 함께하는 원더랜드의 뮤지컬 공연은 그 어디에서도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전율을 가져다 주었다. 이런 낯설음이라면 언제든지 부딪혀봐도 좋을 것 같다는 근거 모를 자신감이 솟아 오를 정도로.


그에 더해 뮤지컬 공연 중간에 삽입 되어 있던 최성훈 성악가의 노래는 내게 또다른 세계의 지평을 열어 주었다. 도저히 사람의 목소리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악기 그 자체의 소리를 내는 성악은 매력적이었다. 등받이를 챙기지 못해 허리가 너무 아팠던 나머지 결국 드러누워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그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정말로 천상계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크기변환][포맷변환]하늘.jpg

 

 

원더랜드 페스티벌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나 다양했다. 아름답게 저물어가는 하늘과, 자유롭게 자리를 뜨고 채우기를 반복하는 관람객들, 그들의 귀를 사로 잡는 다양한 음악의 선율들, 그리고 함성과 음악으로 전해지는 서로의 마음까지. 이곳이 환상의 공간일 수 있는 데에는 그런 마법의 법칙 같은 조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공연이 막을 내리고, 얇은 장벽을 넘어 현실의 세계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이렇게 선연히 남아 일상을 살아갈 나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또한, 이렇게 원초적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함께하는 많은 이들이 있기 때문에 원더랜드는 또다른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스티븐 존슨의 이론처럼, 원더 랜드가 있는 세상은 조금쯤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 본다.

 

 

 

컬처리스트 명함 (1).jpg

 

 

[박다온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