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 – 앤서니 브라운의 원더랜드 뮤지엄 展

미래를 그리는 ‘셰이프 게임(Shape Game)’
글 입력 2022.05.1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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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렸을 때 언젠가 한 번쯤 해봤던 놀이들이 있다. ‘셰이프게임(Shape game)’도 그 중 하나다. 이 게임은 한 사람이 먼저 추상적이고 간단한 모양을 그리면, 다른 사람이 그 모양을 이용해서 어떤 형태나 그림을 완성 하는 것이다. 비록 이 게임의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게임의 방식은 너무나 익숙하다. 친구들과 그림을 그리고 장난칠 때, 혹은 어딘가에 낙서할 때 한 번쯤은 해봤던 방식이다.

 

 

The Shape Game 2003 @ Anthony Browne.jpg

The Shape Game 2003 @ Anthony Browne

 

 

이 셰이프 게임은 어쩌면 아이들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역시 셰이프 게임의 그림처럼 각기 다른 개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성장해 나간다. 동화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앤서니 브라운’ 역시 ‘셰이프 게임’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셰이프 게임을 통해 전세계 아이들과 소통하고, 이를 작품의 중요한 소재이자 방법으로 사용한다.

 

<앤서니 브라운의 원더랜드 뮤지엄 展>에서는 이렇게 셰이프 게임을 활용한 그의 작품들을 포함한 다양한 원화(原畵)들을 볼 수 있었다. 12개의 섹션으로 구분된 전시는 다정한 시선으로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끊임 없이 말을 걸어 왔던 앤서니 브라운의 아이들을 향한 애정과 넘치는 상상력을 담고 있었다.

 

 

앤서니 브라운_공식 포스터.jpg


 

<앤서니 브라운의 원더랜드 뮤지엄 展> 섹션(Section) 구성

1. 프롤로그(Prologue)

2. 어니스트의 멋진 하루(Ernest the Elephant)

3. 가족(A Tale of the Family)

4. 윌리(Willy)

5. 어린이 눈으로 본 세상(Through a Child's Eyes)

6. 초현실주의와 셰이프 게임(Surrealism and the Shape Game)

7. 앤서니 브라운의 동반자, 한나 바르톨린(Hanne Bartholin)

8. 배경에 숨긴 디테일(Funny Little Things Hidden in the Background)

9. 고릴라와 꼬마곰(A Gorilla and Bear)

10. 앤서니 브라운의 빌리지(Anthony Browne's Village)

11. 셰이프 게임(Let's Play the Shape Game)

12. 에필로그(Epilogue)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


 

전시를 보면서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전시의 세 번째 섹션인 ‘가족(A Tale of the Family)’을 보면, <우리 아빠(My Dad)>, <우리 엄마(My Mum)>, <우리 형(My Brother)> 등과 같은 작품에는 실제 앤서니 브라운의 가족 이야기가 녹아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고, 네 번째 섹션인 ‘윌리(Willy)’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윌리’에 그의 어린 시절이 많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보고 꺼내보는 것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My Dad 2000 @Anthony Browne.jpg

My Dad 2000 @ Anthony Browne

 

 

실제로 앤서니 브라운은 작품을 통해 아이들이 가족 안에서 겪는 관계와 심리를 섬세하고 솔직하게 그려낸다. 이는 그만큼 앤서니 브라운이 어린 시절의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느꼈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마주보고, 이를 아이들의 시선에서 작품 안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되는 것을 보고 들으며 공감을 느끼고, 어른들은 마음 한 구석에 숨겨 두었던 채 자라지 못한 아이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들에는 이렇듯 그의 어린 시절이 많이 담겨 있다. 하지만 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계속 따라가다 보면, 그의 작품들이 단지 그의 어린 시절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대표 캐릭터인 ‘윌리’는 운동을 잘하고 건장한 체격이었던 형에 비해 왜소하고 소심한 편이었던 그의 어린 시절을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하지만 앤서니 브라운은 윌리가 스스로 고민에 직면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윌리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또한 단점이라고 여겨졌던 걱정 많고 소심한 성격이,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배려하고 사려 깊게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앤서니 브라운은 다양한 위치와 상황에 있는 가족과 아이들, 그리고 동물들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드러내며,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러한 시선이 잘 드러난 작품 중에 하나가 <나의 프리다>이다. 이 작품은 실제로 앤서니 브라운의 친구이기도 했던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를 모델로 한다. 특히 김 서린 창문에 문을 그려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었던 프리다의 상상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그려내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세상의 모든 프리다에게’ 라는 부제처럼 이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여자아이들의 현실과 의지, 소망을 따뜻한 시선으로 비추며, 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꾸미기][크기변환]나의 프리다.jpg

 

 

이외에도 앤서니 브라운은 <돼지 책(Piggy book)>에서 어떠한 인정도 없이 혼자 가사노동을 도맡아 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릴 때, 특유의 유머를 하나도 더하지 않고 어두운 분위기로 그려내려 노력했다고 밝히며 가사노동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끌어낸다. 또한 다양한 구성원과 형태를 지닌 가족의 모습을 그린 <넌 나의 우주야(Our Girl)> 속 원화 작품을 통해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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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Girl 2020 @ Anthony Browne

 

 

이렇듯 앤서니 브라운은 따뜻하고 공감되는 그림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끌어낸다. 이를 통해 끊임없이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말을 건네고 소통의 가능성을 확장해 간다. 실제로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속에서도 대비되는 상황에 처한 가족들이나, 대비되는 모습을 지닌 캐릭터들이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끊임 없이 소통을 시도해 온 앤서니 브라운 작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자신의 과거를 작품에 담아내고 작품을 통해 미래를 위한 이야기를 건네는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들을 보면,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꿈꾸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모두 아이들이었고,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꿈꾸어 간다. 앞서 이야기 했던 ‘셰이프 게임’으로 아이들과 어른들은 미래를 함께 그려나간다.

 

그리고 이는 단지 ‘그림’에 국한되는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음악과 문학, 그저 우연히 마주치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 건네는 말에서도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이 ‘미래를 그리는 셰이프 게임’을 함께 하고 있는지 모른다. 부디 이 셰이프 게임에서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어떤 차별이나 편견 없이 존중 받으며, 서로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함께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


 

<앤서니 브라운의 원더랜드 뮤지엄 展>의 여섯 번째 섹션 ‘초현실주의와 셰이프 게임(Surrealism and the Shape Game)’에서는 주로 초현실주의 미술작품을 앤서니 브라운의 캐릭터와 스타일로 표현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다소 어렵고 멀게 느껴질 수 있는 미술 작품들은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유머와 디테일로 재미있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특히 아이들은 미술 작품을 보고 즐기는 소비자의 위치에 쉽게 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작품들은 아이들에게 조금 더 대중적인 매체인 동화책을 통해 아이들이 미술을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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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 the Magic Mirror 1976 @ Anthony Browne

 

 

실제로 앤서니 브라운은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서 ‘시각의 길(Visual Paths)’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앤서니 브라운은 미술관의 작품들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과 함께 미술놀이를 하며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더 많은 아이들이 예술을 재미있게 접하고 예술을 통해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을 그리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특히 앤서니 브라운은 초현실주의 작품을 셰이프 게임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며 상상력과 흥미를 유발한다. 이를 통해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해석의 대상’이 되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담은 ‘질문’이 된다. 그리고 이 질문을 마주한 각각의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은 다양한 상상을 통해 나름의 답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이렇게 이미 알고 있던 작품들이라도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보면서, 개인적으로도 작품을 대하는 더 유연한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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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 the Magic Mirror 1976 @ Anthony Brow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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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y the Dreamer 1997 @ Anthony Browne

 

 

또 앤서니 브라운은 자신의 작품 안에 디테일을 숨겨 놓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시실에서 상영된 영상을 통해 그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 어른들이 글을 읽는 동안 아이들은 그림을 읽는다’고 이야기하며, 그런 아이들을 위해 동화책 속 그림을 통해서도 글과 다른 나름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고 밝힌다. 이렇게 배경 속 디테일과 관련된 작품들은 여덟 번째 섹션인 ‘배경에 숨긴 디테일(Funny Little Things Hidden in the Background)’에서 주목해 볼 수 있었다.

 

작품 < Voices in the Park > 속 엄마 캐릭터의 화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배경에 있는 나무의 잎이 불꽃으로, 쓸쓸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발자국이 낙엽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돼지 책>에서 튤립 모양이던 벽지는 돼지로 표현되었고 창문 밖의 숲 그림자는 늑대 그림자처럼 표현되었다.

 

이렇듯 앤서니 브라운은 아이들을 포함하여 작품을 보는 모든 이들을 위한 ‘암호’를 숨겨 놓는다. 이를 통해 그림만을 읽는 아이들도 다양한 상상과 생각을 하며 동화책을 읽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배경의 디테일을 찾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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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ggybook 1986 @ Anthony Browne


 

그림책은 나이가 들었다고 접어야 할 책이 아니라

나이를 불문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Picture books are for everybody at any age,

not books to be left behind as we grow older.)

 

 

전시장에는 앤서니 브라운이 했던 여러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는데, 그 중 앤서니 브라운이 그림책은 나이를 불문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전시를 보면서 모든 사람에게 그림책이 필요한 이유는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시선에서 다른 대상을 바라보고, 즐겁게 상상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배워가고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예술을 낯설지 않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다양성을 존중하고 즐겁게 소통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모두를 위한 전시 공간에 대한 고민


 

전시를 보다 보면 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의 보호자들에게도 친절한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전시의 성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엄격한 관람 규칙을 지켜야 하고, 분위기 자체도 정적이고 엄숙한 경우가 많다. 서로에게 최적의 관람 환경을 만들기 위해 배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아이들이 가지는 넘치는 에너지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성은 전시 공간 안에서 늘 긴장하고 통제해야 하는 변수가 된다.

 

그렇게 아이들은 일부 관람객들에게 그 존재 자체로 ‘불편’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며, 때로 전시의 내용 자체와는 별개로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전시는 성인의 것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앤서니 브라운의 원더랜드 뮤지엄 展>을 관람하며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아이들을 포함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함께 관람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전시의 내용이 모든 연령층이 관심을 가지고 공감을 할 만 하기도 했지만, 전시 공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특히 아이들과 전시 관람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고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들은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낮게 게시되었고, 관람 방향이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 캐릭터와 관련된 바나나 이미지로 눈에 띄게 안내 되었다. 또 작품 속의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현해 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을 만들어 전시 내용의 이해도를 높였다.

 

특히 열 번째 섹션인 ‘앤서니 브라운의 빌리지(Anthony Browne’s Village)’에는 아이들만 통과할 수 있는 통로와 놀이공간,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휴게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열 한번째 섹션인 ‘셰이프 게임(Let’s Play the Shape Game)’에서는 직접 셰이프 게임을 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기도 했다.

 

 

[꾸미기][크기변환]앤서니빌리지.jpg

 

[꾸미기][크기변환]비밀통로.jpg

 

 

물론 다소 여러 섹션으로 구성되어서, 아이들의 입장에서 많은 내용을 소화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양한 관람객들을 고려하여 전시 공간을 구성하고,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들처럼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를 즐길 수 있는 요소를 넣으려고 시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앞으로도 더 다양한 관람객들을 고려한 전시 공간이 많아졌으면 한다. 또 이와 더불어 전시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더 다양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함께할 수 있는 전시 공간과 관람 문화, 관련 교육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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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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