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이체크, 그 속의 찜찜함 [도서/문학]

게오르크 뷔히너의 「보이체크」와 실제 범죄에 대한 정당성 부여
글 입력 2022.05.0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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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연극과 관련한 수업을 들으며 다양한 작품을 읽었다. 쉴러의 「간계와 사랑」부터 레싱의 「현자 나탄」까지. 수업은 희곡을 읽고 참여해서 교수님과 그 작품에 대한 해설과 감상평을 나누는 식으로 구성됐는데,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듣는 내내 흥미로웠다.


수업에서 다룬 작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를 꼽자면 뷔히너의 「보이체크」가 바로 떠오른다. 수업에서 다루었던 작품 중에 가장 짧아서일 수도 있고, 이 작품을 중심으로 조별 발표를 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보이체크」가 '읽는 내내 가장 찜찜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적고 싶다.

 

 

 

보이체크, 그리고 실제 이야기


  

게오르크 뷔히너의 마지막이자 미완성 작품인 「보이체크」는 군인 ‘보이체크’가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가 아내인 ‘마리’를 죽이기까지의 과정과 그가 처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 사회극, 서사극, 부조리극 등 다양한 현대적 드라마의 특성이 드러나며, 개인의 살인사건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뷔히너의 희곡 「당통의 죽음」, 소설 「렌츠」와 마찬가지로 「보이체크」 역시 실화 바탕의 작품이다. 1821년,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는 자신의 애인을 살해했는데, 이를 한 의학 전문가가 개인이 아닌 사회구조적 갈등이 낳은 문제라는 지적을 남겼다. 보이체크 역시 살인을 유도하는 목소리를 들었다며 정신이상 증세를 증언했다. 이 사건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보이체크는 살해 시점 정상적인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어 범행 후 3년 만에 처형됐다.


보이체크의 정신 상태 그 자체에 집중하여 일관성 있게 보이체크의 정신착란을 부정한 의사 클라루스 박사의 감정서와는 달리, 뷔히너는 보이체크를 정신이상자로 만들고 살인자로 만든 사회에 관심을 갖고 집필을 시작했다. 자신의 상상과 가치관을 더해 보이체크를 사회적 제도 안에 존재하는 인간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는 독일 문학 최초로 보이체크가 속한 제4계급인 하층민의 비극을 중심으로, 사회를 둘러싼 부조리와 지배 이데올로기,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계층의 모습을 그려내 작품 전체적으로 당시 사회 문제를 성공적으로 드러냈다는 의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함께하는 찜찜함


  

2022년을 살아가는 한 명의 독자로서 바라봤을 때, 뷔히너의 「보이체크」는 실존했던 범죄를 정당화하려는 여지가 보인다. 사회 구조적 영향을 받은 인간을 다룬 문학이나 연극은 「보이체크」 이외에도 많이 접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체크」를 이처럼 인식하게 된 이유는 뷔히너가 극중 보이체크가 아내인 마리를 살해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 방식에 있다.


가난한 보이체크는 돈을 벌기 위해 의사의 실험체가 되어 세 달 동안 완두콩만 먹는 등 착취당하며 결국 ‘국부적 착란 증세’에 시달린다. 이렇게 힘들게 번 돈을 아내인 마리에게 갖다주지만, 그녀는 바람을 피우고 있다. 보이체크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마리에게 이야기까지 하지만 정작 마리는 봤으면 뭘 어떻게 할 거냐는 식으로 대꾸한다. 이때 마리의 뻔뻔한 태도는 보이체크에게 그녀를 살해할 만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또한 이는 장면 순서와 배치를 통해 더욱 부각된다. 보이체크는 중대장에게 면도를 해주면서 끊임없이 그로부터 정신적으로 착취당하는데, 이 장면 바로 뒤에 마리의 밀애 장면을 배치함으로써 독자는 보이체크와 마리가 처한 대조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보이체크에게 연민을 느끼며 보이체크의 살해를 납득하게 된다. 나아가 대조 직후 이어지는 보이체크와 마리와의 대화 장면에서 보이체크가 마리의 바람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보이체크의 살인을 암시하기도 한다.


극의 후반부까지도 의사나 중대장은 보이체크에 대한 착취를 이어가고, 때문에 보이체크의 정신착란은 점점 심해진다. 결국 마리는 보이체크가 ‘국부적 착란 증세’에 시달리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소모적인 수단으로써 보이체크에게 살해당한다. 독자에게 '바람을 피우니 살해당할 만해’라는 정당성과 ‘그래도 죽기 전 장면에서는 성경을 읽으면서 반성까지 했는데 불쌍하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약간의 드라마적 동정의 여지까지 부여한 채 말이다.

 

「보이체크」에서 마리를 그려낸 방식은 엄연하게 실제 피해자가 있고, 정신착란이 부정된 소견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성할 때 사람들은 작품이 각색되었더라도 일정 부분 실제 사건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두 경우 모두 피해자가 보이체크의 연인이었기 때문에 독자는 작품 속 보이체크의 심리에 보다 몰입하여 실존 인물의 범죄까지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의식을 보다 부각하기 위해서는, 보이체크와 같은 제4계급인 마리가 아니라 차라리 의사나 중대장과 같은 상위 계급의 인물을 살해하도록 그리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결말에서는 「보이체크」가 실화 바탕이지만 작가의 상상과 가치관의 창작물이라는 인식을 제고하여 실존 인물의 범죄와 작품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정말 사회 구조 자체를 객관화하며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끝으로


 

게오르크 뷔히너의 「보이체크」는 거의 200년 전에 쓰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공연이 제작되는 독일 연극 중 하나다. 이는 이 작품이 200년이라는 시간을 관통하고도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일종의 메시지와 시사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 구조로 인한 개인의 착취 비극은 지속되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과거보다 현재의 사회문제가 보다 복잡하고 심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회적 원인과 착취로 인해 정신착란을 앓는 사람이 결국 살인을 범한다는 내용의 작품이 나왔을 때 「보이체크」와 같이 표현한다면 결코 지지받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00년의 시간동안 사람들의 윤리 의식이 발전했고, 이에 따른 예술적 표현도 발전했다. 독자를 위하여 예술은 주제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낼, 그리고 무엇보다 윤리적인 표현 방식을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한다.

 

예술작품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며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특히 실제 범죄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작품의 경우 주제의식을 드러낼 목적으로라도 정당화의 여지를 남기도록 표현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이 처했던 환경이 어땠든, 그 사람의 과거가 어떻든, 결국 범죄에는 피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류지수.jpg

 

 

참고문헌

김명희. (2004). 사회상의 반영으로서 『보이첵』의 등장인물. 뷔히너와 현대문학, 22, 27-47.

임호일. (2003).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조명해 본 뷔히너의 『보이첵』. 뷔히너와 현대문학, 20, 5-34.

 

 

[류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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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동의못함
    • 보이체크와 같은 제4계급인 마리가 아니라 차라리 의사나 중대장과 같은 상위 계급의 인물을 살해하도록 그리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 저는 피해자가 마리여서 더욱 이 주제가 부각 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에디터님이 말하신이 "찝짭함"은 동의 하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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