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니 돈이 왜 이렇게 많으신데요? [게임]

게임으로 하나된 모녀의 소통기
글 입력 2022.05.0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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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플래시 게임을 참 좋아했다. 따로 CD를 구하거나 설치하지 않아도 되었고 복잡하게 커맨드를 외우거나 단축키를 외우지 않아도 방향키와 마우스로만 조작을 할 수 있으니 5살 어린이에게는 최고의 게임이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방 꾸미기 게임을 참 좋아했다.

 

조작도 간단하고 게임마다 컨셉과 그림체도 달라서 그날그날 기분 따라 골라잡아 하는 맛이 있었다. 대가족이어서 개인 방이 없었던지라 '만약 내 방이 생긴다면 이렇게 꾸미고 싶다.'라는 상상과 함께 어린아이의 모든 집중력을 끌어올려서 방을 꾸미고 만족스럽게 게임을 끄곤 했다.

 

부모님도 어린애가 컴퓨터를 붙잡고 '폭력적인 게임을 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셨던 것 같지만 폭력도 경쟁도 싫어하던 내가 하는 아주 평화로운 게임들을 보고 안심하셨고 나의 게임 라이프를 막지 않으셨다. 유치원생, 초등학생을 지나 대학생이 된 나이까지도 플래시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나에게 너무나도 큰 시련이 찾아왔다.


어도비 플래시가 종료되었다. 더 이상 플래시 게임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는 컸다. 플래시 게임을 모아둔 블로그는 찾을 수 있었지만, 당시 인기가 좋았던 게임만 겨우 남아있었다. 그 당시에도 비주류였던 방 꾸미기 게임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나의 평화로운 게임 라이프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다른 게임을 찾자. 비슷한 게 있을 것이다. 하는 마음으로 스팀에 접속했다.

 

인기 있다는 농장경영게임 '스타듀벨리'를 샀다. 친구가 강력 추천해주며 협동 플레이를 하자고 해서 샀지만 설치하고 상자 여는 법을 몰라 그냥 주는 씨앗을 흙바닥에서 잡초 뽑으며 구하고 있으니 깊은 현타가 찾아와 그만두었다. 이번엔 유명한 시리즈의 생활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를 해보기로 했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도 할 수 있고 무려 집을 건축부터 할 수 있었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플레이했다. 하지만 나의 욕심이었을까? 문서작성용이었던 하나뿐인 노트북이 파업하겠다고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열을 올렸다. 데스크탑을 살 공간적,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심즈를 봉인했다. 모바일로 눈을 돌렸지만, 조작감도 불편하고 과금 유도가 심했다. 포기 해야 하나 싶을 때 게임이 나왔다. 새로운 동물의 숲 시리즈가 말이다.


초등학생 시절에 닌텐도가 처음 나왔다. 터치패드가 달린 디자인도 정말 신기했지만 '놀러 오세요.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이 정말 하고 싶었다. 동물 이웃들도 귀여웠고, 가구 아이템이 정말 귀여워서 꼭 플레이 하고 싶었다. 부모님은 게임을 하는 걸 막지는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게임 CD나 게임기를 지원해주시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고는 싶었지만, 꼭 필요한 게 아니었으니 당시에는 인터넷에서 플레이하는 걸 보며 참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돈이 생기자 '이제 어른인데 물건 사는 데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할까?' 하는 마음이 샘솟았다.

 

그런 나에게 좋은 중고 매물이 나왔는데 언니가 혼자서 마련하기에는 돈이 좀 모자란다며 나눠서 사자고 했다. 추석 다음 주였던지라 현금이 좀 있었던 동생과 나는 언니의 의견에 만장일치로 스위치를 사 왔다. 다양한 시리즈가 나왔지만 실제로 플레이해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상당히 떨렸다. 실제로 플레이해 보자 그래픽도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고 조작은 여전히 간단했고 시리즈를 거듭하며 상호작용과 행동이 추가되어 휴학 후 수술하고 거동이 힘들었던 나는 매일 접속해 가구를 만들고 집과 섬을 꾸몄다. 가상의 섬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고 있던 내 행동이 옆 사람 마음에도 불을 지를 줄은 몰랐다.


??? : 나는 그거 사면 절대 안 할 거야.

 

MBTI P들의 거침없는 충동으로 사 온 비싼 게임기를 엄마가 달가워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말했다. 게임기를 샀는데 조작이 간단해서 엄마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게임기를 샀다는 것에는 말을 얹지는 않으셨지만 단호하게 하지 않겠다 외치셨다.

 

하지만 막상 내가 하는 것을 보니 조작도 간단하고 재미있어 보였나 보다. 당시 엄마는 아빠와 함께 낚시를 다녀오신 후로 낚시에 관심을 보이셨다. 그래서 슥 게임기를 들려드리고 동물의 숲에서 낚시하는 법을 알려드렸다. 처음에는 버벅거리셨지만 잡을 때마다 손발 모두 동원해 손뼉 치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드리자 서서히 빠지셨다. 낚시를 뒤이어 곤충 잡는 법을 알려드리면서 직접 돈도 모으고 집도 하나 꾸미시라고 캐릭터도 새로 만들어드렸다.

 

자기 캐릭터가 생기시자 어느새 동물의 숲은 엄마의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퇴근 후 저녁 식사 후 1~2시간 정도 엄마는 물고기와 곤충을 잡아, 도감을 채우시고 일과 퀘스트를 빠짐없이 하시는가 하면 돈 나무 심는 법을 알려드렸더니 매일 매일 섬을 돌아다니며 돈을 묻으셨고 동물들이 주는 가구들로 방을 꾸몄다. 내가 접속하지 못하는 날에도 엄마는 꼭 접속하셔서 식물에 물을 주고 섬을 가꾸시더니 어느새 엄마는 모든 대출금을 다 갚으시고 우리 섬 최고의 부자가 되셨다. 대화도 바뀌었다. 어떤 물고기를 잡았는데 정말 컸다던가, 가게에 신기한 가구가 있어서 샀다던가. 대화하면서 엄마가 정말 즐거워 보이셨다. 정말 게임을 즐기고 계시고 있구나, 뿌듯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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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른들도 게임을 좋아할지 모른다.

 

어릴 적 하시던 직접 몸을 움직여 하는 놀이가 아니고 화면을 들여다보고 하다 보니 가만히 앉아서 하는 게 좋아 보이지 않으실지도 모른다. 초창기에는 컴퓨터 게임은 나쁜 것이다. 라고 미디어에서 많이 나왔기에 이러한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실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지.

 

복잡하고 낯선, 자신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을 어린 자식들이 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른다. 우리야 어릴 때부터 접해 왔다지만 그들은 아니지 않았는가. 충분히 조작이 가능할 정도로 간단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UI와 스토리의 게임은 찾아보면 꽤 많다. 부모님께 게임이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경험시켜드리면 게임으로 인한 가족 간의 충돌이 줄어들지 않을까?

 

닌텐도는 끊임없이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어필하고 있다. 일본 드라마 '빛의 아버지'처럼 어른들이 게임을 하며 삶의 활력소를 찾는 일도 종종 있다. 언제나 과하지 않게 적당히 즐겁게. 게임이라는 주제로 가족간의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경험시켜주며 소통하는 긍정적인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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